부천여성의전화 활동가 디디가 생각하는 아주 간단한 도식.
평등 = 민주주의 = 더불어 돌보기 = 이것이 페미니즘.

연휴 사이사이 비가 내리기는 하였으나 휘영청 빛나는 보름달이 아름다웠던 추석이었다. 추석 연휴에 앞서 ‘성 평등한 명절 보내세요’, ‘함께 준비하고 함께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라고 인사를 나눈다.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차례상 장보기를 남편과 함께 하기로 했더니 남편이 먼저 알아서 무거운 과일들을 미리 사다놓았다. 나보다 힘이 좋으니 아예 과일을 상자째 사다 미리 쟁여놓으니 보기에도 좋았다.

남편한테는 남들 쉬는 휴일이 가장 바쁜 때라, 어차피 상차리기는 내 몫이다. 살림하는 여성들은 미리 한 달도 전부터 미리미리 제수를 장만해 놓는다.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장만해 놓을지 기획하고 수행해 놓은 일, 이러한 그림자처럼 숨어져 있는 수고를, 수고가 나눠질 수 있도록, 밖으로 드러내 보았다. ‘내가 이거, 저거 미리미리 알아서 힘들게 일하고 있었다고’ 투덜대지 않고 딱 단순하게 ‘이것만은 함께해 보자’ 단순한, 그 원하는 바를 꺼내놓았더니, 혼자 알아서 후딱 해 버리는 게 빠르다 싶기는 해도, 함께 하고 준비했다는 생각이 드는 추석을 보내게 되었다.

성 평등한 명절을 보내는 것은 이렇게 장을 함께 보거나 집안일을 함께 골고루 나누어 하는 것에서도 시작되지만 그 생각과 마음의 바탕은 성에 위계가 없다는 생각, 서로의 성으로 인해 차별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존중하는 마음이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여성이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 놓여지고, 여성이 받는 차별이 은밀하고 공고하게 구조화되어 있으며, 소중한 존재로서 그만큼의 존중을 받으며 살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법 297조에서 강간죄 구성요건의 핵심은 ‘폭행 또는 협박’이다. 가해자의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폭행 또는 협박’의 정도가 ‘상대방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피해자가 입증해내야 한다. 과거 강간죄는 여성의 정조에 대한 피해를 근거로 하였다. 형법 25장은 제목은 ‘정조에 관한 죄’였으며 이것이 강간과 추행의 죄로 개정된 것이 1995년이다. 요즈음 대법원의 판례를 보면 성폭력의 보호법익은 ‘성적자기결정권’이다. 이로써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어떻게 흘러가 왔는지를 알 수 있다.

친고죄 조항이 삭제된 것이 2013년이다. 여성이 온전히 소중한 존재로서 사회적 존중을 받기 위한 과정은 여전히 만들어가야 하는 과정이다.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 2019년 제8차 정부보고서 심의결과에서는 형법 297조에서 강간죄의 정의를 ‘폭행 또는 협박 이용’을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것, 판례만이 아니라 입법에서도 혼인 내 강간을 처벌하도록 하는 위원회의 이전 권고를 이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형법 297조를 개정하여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 결여를 정의의 핵심에 둘 것, 혼인 내 강간을 범죄화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미투(Me Too) 운동 이후 상대방의 동의 없는 성적 침해가 범죄가 된다는 것이 공론화되었다.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성폭력 문제를 드러냈다. 성폭력은 악랄하고 비열한 범죄이지만 여전히 범죄의 피해자로 인정받기도 어렵고 더 나쁜 경우 무고의 피의자로 의심되거나 처벌받는 상황까지 이르고 있다.

강간죄는 개정되어야 한다. 바꿔야 할 것은 ‘폭행 또는 협박’의 입증이 아니라 반드시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동의 여부에 초점을 둔 구성 요건으로 피의자·피고인에게 어떻게 동의를 구하였는가, 무엇을 근거로 동의 여부를 판단하였는가, 질문하도록 형법 개정이 이루어져 한다. 국제적으로도 이미 성폭력의 주요한 판단기준은 ‘동의’ 여부이다. 사회의 바탕들이 바뀌어야 살림도 함께 하고, 그렇게 함께하여 즐거울 수 있다. 강간죄 개정에 연대하자. 핵심은 아주 단순하다. '동의 여부'로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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