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열기가 한 풀 꺾이는 8월말부터 시원한 바람과 함께 여름 모기가 줄어들고 매미소리가 작아지면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가 있다. 바로 귀뚜라미 울음소리이다. 가을을 알리는 소리는 누가 뭐래도 귀뚜라미가 주인공이다.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나무와 풀숲이 있는 도시 한복판에서도 들을 수 있다. 다만 도시에서 할 일이 많고 바쁘게 살아가는 어른들은 그 소리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도시에서 귀뚜라미를 접해본 경험도 부족하고, 잘 알지도 못하고, 사실 ‘징그러운’ 벌레 따위에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귀뚜라미를 어떻게 생각할까?

 

 

8월말 4살짜리 쌍둥이 아들과 함께 아파트(중동역 팰리스카운티)에서 산책을 하다가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다. 아이들은 감각적으로 그 울음소리를 듣고 “개구리 잡으러 가자”고 나의 팔을 당겼다. 개구리가 아니라 귀뚜라미 울음소리라 얘기해 주며, 이때부터 귀뚜라미 잡기놀이가 시작되었다. 아빠와 삼형제는 틈만 나면 밤마다 휴대폰 후레쉬 비추며 귀뚜라미를 찾으러 나섰다. 나는 길을 인도해 주었을 뿐이다. 어려서부터 곤충잡기에 능숙한 큰 아들(10살)은 앞장서서 이리저리 톡톡 튀는 귀뚜라미를 아주 잘 잡았다. 그런 형을 엄청 부러워하고 따라 해보고 싶어 하는 동생들이었다. 귀뚜라미 보다 잡기 어려운 녀석은 등이 굽은 ‘곱등이’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아파트의 가을밤에 꿈틀거리는 생명의 새 세상을 알게 되었다. 귀뚜라미와 곱등이 말고도 놀랄 정도로 많은 공벌레, 개미, 민달팽이, 노린재, 지렁이를 만나게 되었다.

 

  어느 날 아내도 우리를 따라 나섰는데, 재밌게 보였는지 동네 어린이들 모아 귀뚜라미탐사대를 만들라고 하였다. 농담인줄 알았는데, 귀뚜라미를 잡고 싶다며 진짜 아이들이 모였다. 우리 아파트 어린이 귀뚜라미 탐사대 활동이 시작되었다. 첫날에는 비가 오는 와중에도 귀뚜라미, 곱등이, 민달팽이를 잡느라 엄청 놀라면서 신기해하고 즐거워했다. 동네 아이들끼리 난생 처음으로 후레쉬 들고 귀뚜라미 울음소리 들리는 아파트 곳곳을 찾아다니며 손으로 잡는 경험을 해보게 되었다.

 

“손가락으로 잡지 말고 손을 모아서 잽싸게 잡아야 해” 라고 말하며 모든 아이들이 귀뚜라미를 잡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아파트를 돌며 채집이 끝나면 한바탕 가지고 놀다가 집에 가져가지 않는 것으로 하고 풀숲에 다시 살려주었다. 어느 날에는 5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시작하였는데, 근처에 놀던 아이들이 합세하여 10명으로 불어난 적도 있었다. 가을밤 귀뚜라미와 놀던 아이들은 매년 가을이 되면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장소가 우리 동네였다는 사실과 함께 말이다.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노인들의 정서적 안정과 인지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농촌진흥청은 귀뚜라미를 키운 노인 그룹은 우울증 지수는 낮아진 반면 인지 기능과 정신적 삶의 질(건강) 지수는 높아졌고, 자기공명영상(MRI) 결과에서도 뇌 활성도와 임무 수행 정확도가 높아졌다고 하였다. 아이들은 호기심과 즐거운 놀이를 통해 그 생명의 소리와 그들의 꿈틀거리는 몸짓을 인지하게 된다.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잡기놀이는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매우 궁금해진다! 내년에는 이웃동네 원정대를 만들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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