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아스라하다. 그저 촌 동네에서도 놀이 종류가 많지 않던 시절 기껏해야 자치기, 구슬치기, 팽이치기, 굴렁쇠....산딸기를 따먹으며 계양산 자락에서 시작하여 계곡을 따라 오르며 가재잡기, 싱아 꺾어먹기, 칡 캐먹기, 개구리를 잡아 구워먹고 메뚜기를 잡아 볶아먹기....등 등

가끔은 시골을 찾으며 산을 오를 때면 어린 시절의 추억잠기기에 빠지곤 한다. 다시 삶의 터전인 도시로 나오면 긴장을 동반하고 여유가 없어진다. 공기도 불편하지만 거리도 낯설다. 하늘을 볼 수 없는 상황에 갇히고 두리번거려야할 환경에 넋이 나간다.

부천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학창의’ 도시다. 문학과 문학적 환경은 밀접한 관계다. 문학은 상상력의 표출이고 가공의 무한한 현실화이다. 그 근원은 체험의 육화이고 화학적 버무림의 승화이다. 때문에 실질적인 경험을 그 먼 자본으로 삼고 기억으로 건너 추억으로의 기나긴 여정에서 만나는 오아시스다.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내고 지내는가는 내부적 환경과 외부적 상황을 거치면서 내면화해 간다. 지금은 핵가족화로 어린 시절에 친구와의 능동적 어울림은 짧고 드물다. 학교를 통한 강제적 경험이거나 수동적 체험에 한정한다. 경제적 이유로나마 조금 적극적이라야 가족과의 나들이가 고작이다.

1999년에 시작된 부천의 유일한 놀이공원이 어려움과 역경 가운데 사명감으로 견뎌오다가 결국 법적인 다툼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은 문화특별시로서는 자못 부끄럽고 참담하다. 놀이공원 일대가 ‘역세권 융복합 개발사업’의 추진이라는 미명하에 임대를 일방적으로 부천시가 중단하고 종료했기 때문이다. 보도에 의하면 주민들이 놀이공원 시설물을 철거해달라고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90만에 육박한 문화도시 부천의 시정은 과연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로서 진정한 미래와 성장 가능성이 있을까. 놀이가 사라지는 도시화는 향후 각박한 인정과 정서의 사막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건 자명하다.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놀이거리가 없다는 건 정서함양에 치명적인 결함이다. 자연에서 와서 결국 자연으로 향하는 인간의 길은 숙명적이다. 그만큼 놀이를 통한 인간성은 자연과는 필연적 인(因)과 연(緣)이다.

20여 년간을 부천시의 시민과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미래를 위해 사명감과 소명의식으로 이익을 외면한 채 문화적 함양을 위한 의무감으로 버텨온 놀이공원의 운명에 이제 부천시의 공직자와 부천시의회의 의원 그 누구도 무관심한 듯하다. 시민으로서 안타깝고 아쉽다.

문화는 인간의 능동적 관심과 필요를 넘어 챙김의 과정과 그 결과다. 부천에서 함부로 문학을 말한다는 것은, 문학을 통한 창의를 발설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은 아닐런지 문학인으로 참괴스럽고 한없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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