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월시화공단을 중심으로

직업계(특성화 고등학교)는 현장실습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며 2016년부터 도제형 일학습병행제도의 도입으로 또 다른 형태의 현장실습도 운영되고 있다. 현장실습생들의 잇따른 죽음으로 현장실습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하고 있으며, 다양한 연구 결과 직업계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노동자들은 노동권의 사각지대에서 일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천시에 소재한 4개교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확인할 수가 없다. 이에 경기도 안산시와 시흥시에 소재한 반월시화공단을 대상으로 진행된 실태조사 결과를 발췌하면서 현장실습생 출신 노동자들의 노동세계, ‘노동자로서의’ 경험, 다시 말해 현장실습생으로 ‘조기취업’한 노동자들이 어떤 기대와 꿈을 가지고 노동현장에 진입했는지, 노동현장에서 이들은 어떤 노동경험과 인식을 갖게 되었는지를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하려고 한다. ( 본 자료는 2018 직업계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노동환경 및 노동세계진입실태조사 자료집- 발간 전국금속노조, 전국불완전노동철폐연대, 현장실습대응회의 –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

3. 대안적 목소리의 부재: 침묵과 순응을 강요하는 제도
힘들고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부당한 대우를 경험하면서도 조기취업 노동자들은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 자신에게 강요되는 상황에 맞설 수 있는 대안적 목소리를
내는 것에 관해서는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다. 친구나 동료들을 만나 자조 섞인 한탄을
하거나, 장기적으로 이곳을 떠나는 것을 꿈꾸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어려웠을 때는 친구들끼리 만나서 이야기했어요. 서로 회사를 시궁창이라고 하고 누가 더 불행한지 내기하고. 어느 회사는 3개월치 임금이 밀리기도 했어요. 다행히도 저희 회사 사장님 회장님이 따로 있어서 우리 회사가 못해도 자금은 좋고 월급은 안밀렸어요. 제 주변에 월급 밀리는 경우는 한명, 작은 문제는 상여급 등, 자잘하게 연차문제..”(면접참여자 G)
이들 조기취업 노동자들은 왜 대안적 목소리를 낼 생각을 못할까? 이들로 하여금 주어진 상황을 감내하고 침묵하도록 만드는 기제는 무엇일까?

1) 자발적 순응을 강요하는 제도적 굴레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들 조기취업 노동자들을 둘러싼 여러 제도들이 이들의 침묵과
순응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기취업을 강요하는 학교와 현장실습제도, 졸업 이후
에도 병역특례를 대가로 노동자들을 묶어두는 산업기능요원제도, 지금 있는 사업장을 떠
나지 못하도록 하는 일학습병행제도 등이 그것이다.

(1) 저임금 조기취업을 강제하는 학교와 현장실습제도
직업계고의 경우 학생들의 취업률을 높이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취업률이 높아야 학교의 평판을 높이고 신입생을 확보하는데도 유리하다. 따라서 취업에 대한 선생님들의 실적압박이 심하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을 기업과 연결시키려 하고 졸업이전에 취업을 강요하게 된다.
현장실습제도는 이른 시기부터 학생들을 취업현장에 내보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제도이다. 따라서 직업계고에서는 대학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아니면 대부분 현장실습을 나갈 것을 권장한다. 현장실습 기간 중에는 사실상 학교수업 기능이 정지된다. 학내에는 취업지상주의 분위기가 조성된다.

“현장실습을 하는 것이 이 학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학교를 위해서 하는 것 같아요.
우리학교에서 몇백명이 이런 좋은 회사를 갔다고 하니까 중학생들이 이 학교에 올테니까 학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학교를 위해서 하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일하기 싫은데 억지로... 선생님들은 애를 빨리 보내서 실적을 쌓으려고 해요”(면접참여자 N)

“ 특성화고가 공통적으로 취업을 안하면 압박을 해요”(면접참여자 A)

“선생님들이 실적을 따지니까, 4대보험 되고 취업만 되면 실적이 되니까, 학교에서
배운 거하고 연관이 없는 곳에 가는 경우가 많아요”(면접참여자 D)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학교의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실습중간에 학교로 돌아오게 되면 기껏 구축해놓은 학교-기업 간 연결망이 끊어질 수도 있고, 또 취업률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중도에 포기하고 학교로 돌아오는 학생들에게 유무형의 비난과 압박이 가해지고 많은 경우 학생들은 다시 현장실습에 나서게 된다. 이런 조건에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되면 일이 힘들고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을 포기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것 자체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된다.

“일이 안맞다거나 회사와 마찰이 있어서 성격상 문제로 돌아오는 경우 저희는 일주일 이주일 정도를 청소를 했어요. 청소하는 것보다 더 문제는 선생님들의 압박이 컸어요...그리고 약간 그런 것도 있었어요. 너희가 회사가서 잘해야 너희 후배들이가지 않겠냐는 것도 많았던거 같아요”(면접참여자 F)

“현장실습을 안나가면 청소시키거나 껌 떼거나 그런 것을 시켜요. 그러니 어디든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요. 갔다가 돌아오면, 4월에 나간 애들 중에 몇 명 돌아왔는데 돌아오면 징계를 먹어요. 그리고 학교에서 소개해주는 것으로 다시 가요.정신교육을 시켜요... 졸업할 때까지는 버티다가 바로 퇴사하기도 해요”(면접참여자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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