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지기가 일ㄱ은 만화책>

도서: 내 아버지의 집   파코 로카 지음 / 강미란 옮김. 출판사: 우리나비

 

깊어가는 가을이다. 아직 한낮의 기온은 20도 가볍게 넘기도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가을이 짙어져 간다. 10월 말쯤 북한산의 단풍이 절정을 찍고 나면 곧 겨울바람이 그 뒤를 쫓아오겠다. 환경의 변화로 봄, 가을이 우리 곁에 머물지 못하고 그저 스쳐가는 것 같다. 가을과 겨울을 좋아하는 광장지기는 짧게 지나가는 가을이 더욱 아쉽다.

가을 하면 떠오르는 말들과 그림이 있다.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가을은 ‘추억’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광장지기를 아는 어떤 분들은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명색에 도서관 관장인데 책이나 독서가 아니고 그냥 ‘추억’이라니 하고 말이다. 거기에 가을 하면 ‘빨간 벽돌로 된 집’이 생각난다. 한 번도 빨간 벽돌집에 살았던 기억은 없지만 이상하게 빨간 벽돌의 담벼락이 그려진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진기가 흔치 않던 어린 시절 소위 우리 동네 ‘포토존’ 역할을 하던 배경이 구멍가게 옆 빨간 벽돌집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어린 시절 지금의 신촌이라는 동네에 살았다. 실제 동명(洞名)은 노고산동이다. 태어나서 초등 1학년, 아니 국민학교 1학년 말까지 살았다. 거기에 세상을 떠나신지 곧 3년이 되는 ‘아버지의 집’이 있었다. 정확히는 ‘아버지 명의’의 집이다. 대문에 걸린 문패에 아버지 성함이 떡하니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아버지는 그 후 돌아가실 때까지 당신의 이름으로 집을 갖지 못하셨다. 몇 번의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오 남매를 건사하시기도 쉽지 않으셨을 것이다. 노년에 당신 이름 대신 막내아들 이름으로 된 집에 계신 것으로 만족해하셨다. 비록 돌아가실 때까지 당신의 이름이 새겨진 집은 없으셨지만 그보다 수백 배는 더 멋지고 좋은 서울 국립 현충원을 안식처로 삼으셨으니 자식으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깊어가는 가을의 끝자락에서 ‘추억’과 ‘빨간 벽돌집’에 잘 어우러지는 그래픽 노블이 도서관 서가에 꽂혀있다. 의미 있고, 울림 있는 도서를 출판하는, 부천이 자랑해야 할 출판사 ‘우리나비’의 <내 아버지의 집>이다. 아마 작년 부천만화축제에서 구입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 아버지의 집>은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일 년이 지난 후에 삼 남매가 아버지의 집에 모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일 년 동안 방치된 집을 정리하고 매물로 내놓으려는 계획으로 자녀들이 모였다. 집을 살피면서 자녀들은 따로 또 같이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동일한 사건이라도 자녀들이 가슴에 담아둔 추억과 기억이 모두 같지는 않다. 그래서 삼 남매의 아버지는 한 분이지만 동시에 자신들만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광장지기도 가족들과 가끔씩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나눌 때면, “아버지가 진짜 그러셨어?”하며 생전에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이나 마음을 알게 되면서 애틋함과 그리움이 커진다. 가족들과 아버지와의 추억 조각을 맞추다 보면 아버지의 일기장을 보는 느낌이 든다.

 

추억을 나누며 며칠 동안 웃고 우는 사이에 <내 아버지의 집>은 정리가 되었다. 이제 집을 내놓고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면 된다. 마침 빠르게 집 구매 의사를 보이는 사람이 있다. ‘아, 안 팔면 좋겠다.’하는 마음에 마지막 장을 넘긴다. 과연 삼 남매는 ‘아버지의 집‘을 어떻게 할까? 추억은 기억에 남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아버지의 집을 관리하기 쉽지 않으니 매매하는 것이 나은 방법일 수도 있다. 또 아버지와의 추억을 담고 있는 집이니 자녀들이 짬을 내어 돌보는 것으로 하고 팔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무엇을 선택하든 우리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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