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시작하는 절기는 입동(立冬)이다. 이 시기는 김장과 밀접하다. 예로부터 입동 전후에 김장을 해야 제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 조상들의 경험의 결과이다. 아마도 입동이 지나면 김장 재료인 각종 채소가 시들고 싱싱함이 사라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상들의 경험에 의해 입동에 추우면 그 해 겨울이 춥다고도 했다, 지방에서의 입동은 각별한 의미가 있어, 밀양에서는 철새인 갈가마귀 배에 흰색이 보이면 다음 해에 목화가 풍년이 되고, 제주도에서는 날씨 점으로 입동에 따뜻하지 않으면 그 해 바람이 독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계절에 대한 대비와 그에 대한 오래 전 이야기들은 경험에 의한 결과다.

요즈음 거리에서 자주 보이는 현수막에는 각 지역마다 홍보용으로 ‘예산 확보/확정’이라는 현수막이 자주 보이곤 한다. 확보와 확정에는 거리가 멀고 차이가 깊다. 확보는, (사람이 무엇을) 확실하게 마련하거나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마련하고 갖추는 것은 미래적이고, 불확정성이 강하다. 이에 반해 확정은, 일이나 사안이 확실하고 틀림없이 정해진 과거적인 것을 일컫는다.

더 쉽게 예를 들자면 ‘지역 예산 확보/확정’이라는 홍보성 현수막을 자주 대하게 되는데,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때로 혼란을 야기할 수 있고, 홍보하는 입장에서는 치적을 과시하는 전시성 효과를 볼 수도 있는 양면성이 있다. 상반된 사실에 대해 오독에 의한 오판을 초래할 수 있어 주의를 요한다.

더 정확히 말해보자면 확보는 확정을 위한 사전 과정일 수 있지만, 확정은 확보 없이는 불가능한 결과적 정함이다. 때문에 확보는 확정은 전혀 아닌 것이다. 혼란과 오판의 결과를 초래하는 수사적(레토릭) 의미로 읽히는 이유이다. 더 세부적으로 보(保)는 그 의미로도 ‘지키다, 편안하게 하다. 돕다’의 뜻으로, 정(定)은, ‘반드시, 정하다, 정해지다’의 뜻이 있다.

더 나아가 지킬 수 있어야 ‘확보’도 그 의미에 합당하다는 것이고, ‘확정’은 마지막으로 반드시 정해지거나 정한 결과라야 하는 의미가 있다. 특히 정치나 공무적인 입장에서 확보를 함부로 쓸 수 없는 막중하고 신중한 의무적인 책임도 숨겨진 약속일 것이다.

계절의 순환은 거짓이 없어 조상들은 대비를 위해 예측과 준비를 한다. 유비무환은 확정보다 앞선 무탈을 위한 확보의 의미가 강하다. 그 위에 직접 경험은 생활의 지침으로서의 현실화이다. 때문에 얼음이 얼기 전 서리가 내리는 것(상강霜降)을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입동(立冬)을 대비한 ‘확보’라고 감히 말해도 될는지....

옛 추억 가운데 입동 즈음엔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빚고 고사를 지내며 이웃과 나누던 어린 시절이 한없이 그립고 돌아갈 수 없어 그 역시 아쉽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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