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어느 가을 날 원미동 건강카페꿈땀에 친구들을 초대했다. 부천여성의전화에서 지역 활동하는 여성들 만남 시리즈에서 이번에는 원미동에서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하고 있는 나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 준 덕분이다.

    <마로 활동가 이야기>라고 막상 자리를 마련해 주었지만 쑥스러웠다. 초대장을 만들어 주시고 배포해 보라고 하셨지만,  결국에는 매일 붙들고 사는 페이스북에도 올리지 못했다. 오랫동안 서로 지지하며 살아온 ‘틈제작쏘’ 친구들께 얼굴 붉히며 겨우 초대장 한 장 내밀었다.

  10월 25일 바로 그 날. 꽃처럼 환한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앉았다. 여러 다양한 색과 크기의 꽃 사이에서 향긋하고 따뜻한 온기가 만들어졌다. 나는 마음이 따뜻해졌고, 안전한 평온을 느꼈다. 평소 잘 이야기하지 않았던 내 삶을 용기 있게 나눌 수 있었다. 20대 중반, 역사의식을 세우고 비로소 이제 앞으로는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며 살아야 다짐했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20년 동안 내 신념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일들을 찾아왔다. 진보적인 학자들이 많은 대학의 비영리 기관에서 일한 것, 인권교육 활동을 한 것, 아동문학을 공부하며 어린이 청소년 인권 이야기들을  쓰고 나누었던 일. 그 모든 일들이 나를 키워 왔지만, 그 안에는 한 가지가 계속 빠져 있는 것만 같았다. 무엇일까 고민하였고, 그것은 ‘지역성’. 내가 살고 있는 ‘마을’ 중심성 이지 않을까...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활동을 한 것은 ‘지역’을 기반으로 공공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하게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에너지를 빼앗겼다. 그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이 너무나 비슷한 사람들이었나... 여러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관계를 겪는 것, 그것이 ‘마을’, ‘지역’의 시작일까...

  내가 이 지역에서 떠나지 않는 한, 많은 사람들을 계속 만나게 된다. 한때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힘들었는데, 그 고비를 넘기고, 그 순간 마침 내가 원미동에 있었다. 매일 아침 시장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과 2년 동안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 일. 그리고 방긋 웃으며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 서로를 따뜻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만남과 거리.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언젠가, 어떤 지역 활동가가 한 말이 떠오른다. “느슨한 연대도 좋은 것이다.” 마을, 공공성, 연대, 거리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달라이 라마가 여러 학자와 대답한 내용을 담은 책 <보살핌의 경제학>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지금보다 서로를 좀 더 보살피는, 그러니까 지속 가능하고 공정한 경제 시스템에 대한 요구는 전 세계적 흐름입니다. 소수 엘리트들의 욕구에만 부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와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세계 공동체를 이롭게 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 세대와 생태계를 보살피는 그런 경제 시스템을 원합니다.”
 
 “지금보다 서로를 좀 더 보살피는 공동체, 마을, 지역이 가능할까?” 그런 마을, 지역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의 연대, 거리, 만남이 필요할까. 이 날 서로 모인 만남처럼 서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따뜻하게 서로를 데워 줄 수 있는 것, 그런 것이 바로 보살핌의 시작이 아닐까. 내가 만난 한 명 한 명에게 “정말 잘 태어났어”라고 따뜻한 마음, 말을 건넬 수 있는 공동체. 이 작은 원미동에서 그보다 더 작은 건강카페꿈땀. 이 곳의 따뜻한 경험을 꼭 기억하고 싶다.  우리의 지역과 마을을 지켜 줄 수 있는 그런 따뜻함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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