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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선거결과는 고무적이었다.
채효정  |  kongpa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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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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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있기 얼마 전에 이런 글을 읽었다.
"정치전략으로 보자면 홍콩행정장관을 선출하는 대의원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시위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친중파를 대거 낙선시키고, 민주파 위원들을 대거 당선시키는 단기 전략과 지리멸렬한 민주파 위원들을 정당으로 묶어내어 대만의 국민당 vs 민진당 구도처럼 친중파 vs 민주파의 대립구도로 정계를 개편하여 자치의 여지를 조금씩 확장해나가는 장기 전략을 택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 달 간의 시위에서도 그런 전략은 체계적으로 수립, 시행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공공도로와 시설을 점거, 파괴하는 ‘여명 행동’으로 학생 시위대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있다." - '홍콩, 아나키 그리고 살아남는 것'

선거 결과를 보다가 다시 이글이 생각났다. 글쓴이는 '객관적 분석'으로 '광복 홍콩'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는 시위대의 '잘못된 전략'을 가슴 아파하며, 다음과 같이 글을 맺는다.

"내가 홍콩 시위의 시작 지점에서부터 함부로 지지와 응원을 보내지 못했던 이유다.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들려는 사람의 용기를 ‘노력하면 혹시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니 힘내라’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잔인한 일이다. 물론 세상의 의미있는 변화는 그런 용감한 이들이 짚불처럼 몸을 사르고 살라 재가 되어 만들어진 결과라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그저 소심한 나는, 보도블록을 아스팔트에 내리쳐 투석용 돌을 만드는 저 학생이, 우리는 모두 여기서 죽을 각오가 되어있다며 화염병에 휘발유를 정성껏 담는 저 학생이, 고무줄로 커다란 새총을 만들고 ‘투석기’라며 자랑스럽게 웃는 저 학생이 그저 살아있기만을, 무사히 살아 집으로 갈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저 살아남는 것, 그보다 더 큰 가치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저항하는 이들을 대놓고 공격하고 비판하는 것보다 저런 태도가 더 나쁘다고 생각해서 반론을 하려다가 말았는데, 선거 결과가 곧 이 글에 대한 반론이 되었다. 돌아오지 못할 강은, 시위대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건넌 것 같다.

오늘 저 글이 다시 생각난 이유는, 홍콩  시위의 과정과 지금까지 온 결과가 바로 저런 패배주의와 배후론에 맞서온 과정이기도 하고,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도 성찰할 점과 배울 점을 남겨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언제부터인가 패배할 싸움은 하지 말자는 말이 운동 안에서도 부끄럽지도 않게 떠돌았다.

그리고 그런 태도가 해야할 싸움을 시작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누구나 똑같은 수준과 방식으로 싸울 수는 없다. 좀 더 높은 결의와 각오를 한 사람도 있고, 그럴 수는 없지만 뭐라도 하겠다는 마음으로 나서는 사람도 있다. 홍콩의 시위를 보면서 가장 경이로웠던 것은 수백 개에 달한다는 그룹들이 각자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단결해서 싸웠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앞에서 외치면 응답하는 목소리들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가장 앞에서 싸우는 이들 뒤에는 지지와 엄호가 있었다. 싸우다가 잡혀가면 그 자리에 또다른 사람들이 나타났다. 투석전이 시작되니 시민들이 벽돌을 깨서 길에 쌓아주고, 대나무로 장애물을 만들어 물대포, 페퍼포그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도로를 차단했다. 수많은 그룹 중에는 마스크 보급 그룹도 있고 밤 늦게 학생들을 데려다 주는 차량 운반 그룹도 있었다. 다들 어디선가 힘을 길러 투사가 되어 거리에 나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건 새로운 돌연변이였고,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이렇게 새로운 정치적 주체가 나타나고, 재구성되고, 개입해들어가는 가운데 만들어지는 인간의 역사란 것은,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패배도 승리도 함부로 예단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보도블록을 아스팔트에 내리쳐 투석용 돌을 만드는 저 학생, 우리는 모두 여기서 죽을 각오가 되어있다며 화염병에 휘발유를 정성껏 담는 저 학생, 고무줄로 커다란 새총을 만들고 ‘투석기’라며 자랑스럽게 웃는 저 학생"은,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살아남는 것'보다 더 큰, '잘 살아남는 것'의 가치가 있음를 알게 된 사람들이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사람들이 아니라, 함께 바퀴를 굴려 없던 길을 새롭게 열어내는 새로운 주체들이다.

만약 홍콩 시위대가 먼저 선거에서 승리해서 정계 개편을 하고 그 힘으로 중국과 협상하자는 전략으로 갔더라면, 과연 저런 주체들이 나타날 수 있었을까, 오늘과 같은 선거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

"시위에 화가 난 침묵하는 다수가 선거를 통해 심판할 것이다." 라고 말했던 주영 중국대사나, 홍콩 시위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음모론을 펼치며 시위대를 '폭도'로 몰고 더 강력한 시위진압을 요구하던 환구시보와 민플러스 같은 매체들의 '비현실적 판단'을 홍콩은 멋지게 뒤엎어버렸다. 심판 받은 건 그들이다. 선거를 앞두고 중국 본토와 홍콩의 언론들은 시위에 불만을 표출하는 홍콩 시민들의 모습과 시민들이 시위대와 충돌하는 장면을 계속 노출시켰다. 그러나 홍콩 시민들은 투표를 통해 저항자들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보여주었다.

물론 선거가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많은 난관이 있을 것이다. '당선자'들이 배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판세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다. 홍콩의 지각 변동이 다른 세계에도 전파되고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어제 민주파 당선자들은 당장 구속자 전원 석방과 이공대 봉쇄 해제를 요구했다. 승리한 민주파 대표들은 제일 먼저 이공대를 찾았다. 결국 이 자리가 끝까지 투쟁의 구심이 되었다는 의미다. 투표장에 긴 줄이 늘어서기 시작하던 아침부터, 시위대가 모여들어 밤까지 이공대 앞에서 고립된 학생들에게 승리의 소식을 전하며, 우리가 반드시 구출한다, 변함없는 지지와 연대를 보여주던 어제 밤까지 참 많은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오늘 이곳에는 비보가 더 많다. 많은 사람들이 슬픔과 분노에 휩싸여있다. 참으로 더디게 변하고, 변하기는 커녕 거꾸로 가는 것 같고 참으로 꿈쩍도 않는 세상이다. 너희들이 아무리 까불어봐라, 우리가 꿈쩍이나 하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그런 세상에 지고 싶지 않아서, 이 글을 쓴다. 당신 옆에 서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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