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水潔余身 (강수결여신) : 강물은 내 몸을 맑게 해주고
春風吹我服 (춘풍취아복) : 봄바람은 내 옷에 불어온다.
冠童亦不隨 (관동역불수) : 따르는 제자는 없지만
花鳥渾相識 (화조혼상식) : 꽃과 새 모두 서로 잘 통한다오.

이제 겨울이 시작인데 봄 노래가 눈에 들어오는 까닭은 왜일까? 겨울 넘어의 봄을 벌써 기다리는 마음 탓인지 모르겠다.

백호 임제는 평안도 평사로 부임하는 길에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 "청초 우거진 골에...."라는 시로 술잔을 잡아 권할 이 없음을 슬퍼한 일로 파면을 당하기도 한 인물이다.

임제의 이 시는 논어 선진편에 나오는 '늦은 봄 봄옷을 떨쳐입고 제자 대여섯과 동자 예닐곱을 딸려 기수물에 목욕하고 무우언덕에 바람을 쏘이다가 시를 읊으며 돌아오리라'는 공자 물음에 대한 증자의 대답을 떠올리게 하는 시이다. 바로 한 선비의 하루 상쾌한 봄놀이를 읊은 것이다. 하기야 따르는 제자야 없지만 제자 대신 작자가 모든 꽃이나 새와 서로 소통하고 지낸다니 오히려 증자의 봄놀이의 격을 뛰어넘는다.

손종섭은 이 시의 묘처가 화조혼상식에 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이며 풍성한 멋이랴? 꽃들끼리, 새들끼리야 물론 친할 테지만 나와 꽃들 사이, 나와 새들 사이도 면면이 다들 서로 알고 지내는 터수란 것이다. 내가 하나하나의 꽃 이름이나 새 이름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저들의 생태, 습성, 성격, 희로애락의 감정까지도 알고 있어, 저들을 애정으로 대해 주면, 저들 하나하나의 꽃들과 새들도 나를 알아보고 반색하며, 꽃은 향기로 인사를 걸어오고, 미소로 정을 건네주며, 새들은 온 몸으로 흔희작약하며, 온갖 노래로 환호해 준다.

제자 대신 화조를 동반한 봄놀이의 멋도 증점의 봄놀이보다 못 지 않음을 뽐내고 있는 것이다. 이 진정 같은 시대 같은 지구촌에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과의 아름다운 사랑의 대화합이 아니고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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