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의 예술가 1

=콩나물 신문은 유네스코 문학 창의 도시 지정 3주년을 기념하여 이번 호부터 <부천의 예술가>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부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각 분야의 명망 있는 예술가를 소개하는 이번 연재를 통해 부천 시민의 자긍심과 문화도시 부천의 위상이 한층 높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시간은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으며,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또한, 시간은 냄새를 맡을 수도, 맛으로 느낄 수도 없다. 하지만 시간은 늘 우리 곁에 있으면서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주관한다. 아무도 그 명령을 거역할 수 없고 질서에 반기를 들 수 없다. 그렇다면 시간은 우주 만물을 지배하는 신(神)인가? 하지만 그 신마저도 시간의 영역을 벗어나 존재할 수 없으니 시간은 오히려 신보다 더 높은 초월적인 무엇이다.
  시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곁에 그 흔적을 남긴다. 고생대의 화석으로부터 이제 막 피어오르는 꽃봉오리까지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시간의 흔적이 스며있다. 그 흔적으로부터 시간의 본질을 유추해내는 작업은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 또한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 휴(休). 옷걸이에 걸린 빨래처럼 우리의 시간에도 휴식이 필요하다. 당신의 시간은 안녕한가?

  오늘 ‘부천의 예술가’ 시리즈에 첫 번째로 소개할 작가는 평생 시간과 사투를 벌이며 시간의 본질에 다가서고자 노력하는 도자 조각가 김창섭이다.
  ‘도자 조각(Ceramic Sculpture)’이란 전통 도자 형식을 현대 미술의 개념으로 바꾸어 재정립한 도자 제작 경향을 뜻한다. 즉, 도자 조각은 도자로 만들어진 그릇이 아닌, 도자를 소재로 한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미국의 유명 도예가 피터볼커스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실용성보다는 심미성과 조형성을 추구한다. 김창섭은 198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 도자 조각 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해 오고 있다.

▲ 김창섭은 40여 년 전 부천에 정착하여 후진 양성과 지역 예술 문화 창달에 힘썼으며 300여 회의 각종 기획·초대·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2019년도 얼마 남지 않은 12월의 두 번째 화요일, 김창섭 작가를 만나기 위해 하우고개 너머에 있는 그의 작업실, 『시간의 성(城)』을 찾았다. 때마침 부슬부슬 내리던 겨울비가 그치고 옅은 안개가 끼어 성주산, 거마산, 소래산에 둘러싸여 있는 그의 작업실은 흡사 도원경을 방불케 했다. 여러 동의 비닐하우스로 이루어진 그의 작업실은 널찍한 야외정원을 겸비하고 있어서 어린아이들의 체험 학습장뿐만 아니라 일상에 지친 도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실 내부에는 지금껏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작품들이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평생 ‘시간’이라는 화두를 참구하며 살아온 작가이기에 그 철학적 깊이를 이해하기에는 내 그릇이 한참 모자랐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작가의 고뇌와 열정만큼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어떤 작품은 20C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기이하게 느껴지다가도 또 어떤 작품은 동양적 선(禪)의 세계에 빠져든 것 같은 깊은 울림이 있었다.

▲ 작업실. 작가 김창섭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각각 조각과 도예를 전공했다. 작가에게 작업실은 가장 친숙한 공간이면서 동시에 가장 낯선 공간이기도 하다.

  장작 난로를 사이에 두고 작가와 차 한 잔을 나누었다. 타닥타닥 튀는 난로의 불꽃과 작가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긴 담배 연기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불과 2주 전에 인사동 아트프라자 3층 특별관에서 생애 두 번째 전시회를 마쳤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 피로가 다 가시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지만 그 눈빛만은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예술가의 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전시회의 소감을 묻자, 전시회를 준비할 때는 뼈를 녹이는 듯한 고통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수없이 되뇌지만, 막상 끝나고 나면 다시 다음 전시회를 준비하는 게 작가의 삶 아닐까요? 하며 허허 웃었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 창작의 고통 속에 태어난 작품들이지만 세상의 큰 울림이 되지 못하고 다음 전시자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할 때, 예술가들은 슬프다. 칭찬은커녕, 그냥 와서 봐주기만 해도 기분이 좋으련만 예술가와 대중 사이의 괴리는 아직도 크기만 하다.

  부천시는 2017년 11월, 유네스코 문학 창의 도시로 지정되었다. 세계 각국의 창의 도시들과 교류하며 부천시의 위상을 세계에 과시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문학 창의 도시로 지정됐다고 해서 곧바로 문화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문화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음악, 미술, 건축 등 다른 예술 분야와의 동반 성장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궁금했다.

▲ 유영(遊泳). 작가는 물고기의 조직을 절단하여 이의 속 구조가 드러난 듯한 형상을 통하여 조형적으로는 물론 개념적으로도 강한 공감을 유도하고 있다.

 “정책 담당자들이 장기적인 플랜을 세워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해야 합니다. 부천이 세계적인 수준의 문화도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특히 젊은 예술가들이 많이 와서 창작 활동에 전념하도록 예술 인프라를 구축해줘야 합니다. 대다수 실력 있는 작가들이 왜 일산이나 과천 등으로 빠져나가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예술가들은 기본적으로 가난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탁월한 영감과 기발한 상상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이 부천에 와서 마음 놓고 창작 활동에 전념하도록 여건을 만들어 준다면 자연스럽게 실력 있는 예술가들이 모여들게 되고 그렇게 하다 보면 문화도시로서 부천의 위상도 올라갈 것입니다. 파리 몽마르뜨 언덕의 사례를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의 단호한 어조에서 부천을 사랑하고 부천의 미래를 걱정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그는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대학 졸업 후 40여 년을 줄곧 부천에서 살았다. 그 기간에 그는 예술가로서 어떻게 도시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지난 2003년에 완공한 상동 시민의 강이다. 그의 아이디어와 시민단체의 협력, 그리고 당시 원혜영 시장의 뚝심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그의 머릿속은 지금도 부천 발전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로 가득 차 있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참여해서 문화도시 부천을 설계하고 가꾸어 나간다면 분명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도시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부천이 한국의 몽마르뜨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물론 관계 기관과 정책 담당자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 하겠지만요.”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작업실을 나오면서 다시 한번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새의 그림자, 물고기의 내면, 소라껍데기, 달팽이의 뿔 등 그가 발견한 시간의 흔적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그중에 「쉼-여백」이라는 제목의 작품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의자 위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듯한 구겨진 양복과 넥타이, 그 안에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의 고단한 시간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문득, 마음이 무거워졌다.

▲ 쉼-여백. 작품 속의 주인공이 “너에게도 휴식이 필요해!”라고 말을 걸어올 것만 같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은 잠시도 시간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늘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의 의미도 망각한 채 쫓기듯 살아간다. 도대체 시간이란 무엇인가? 문득, 시간의 의미가 궁금해질 때, 김창섭 작가의 『시간의 성(城)』을 찾아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의 작품은 유튜브로도 볼 수 있다. 유튜브 검색창에 「김창섭 개인전」이라고 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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