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만든 배추로 김장을 하자!

농가월령가 11월령
11월은 초겨울 되니 입동, 소설 절기로다.
나뭇잎 떨어지고 고니소리 높이 난다.
듣거라 아이들아 농사일 다했구나.
남은 일 생각하여 집안일 먼저 하세.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깨끗이 씻어 소금 간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 3학년 상자텃밭의 배추들과 아이들

산학교 3학년 친구들은 농사수업을 하며 매 월 농가월령가를 통해 절기와 세시풍속을 배웁니다. 11월령에는 김장이야기가 나오죠. 드디어 학교 텃밭에 키운 무, 배추를 수확해 김장할 때가 된 겁니다. 11월 29일 금요일에는 산학교 김장이 있었습니다. 김장은 장터, 수업발표회, 해보내기잔치와 더불어 산학교의 중요한 행사 중 하나입니다. 1년 동안 먹을 김치를 아이들이 직접 농사 짓고 수확하고 다듬고 버무려 만듭니다.

 김장을 위해 3학년 친구들은 9월 2일에 배추 모종을 심었습니다. 다른 학년들도 비슷한 시기에 배추와 무 모종을 심었죠. 그리고 매주 월요일은 배추에 물주는 날! 모두들 파란 물조리개를 들고 배추밭으로 향합니다. 배추밭에 물도 주고 벌레도 잡아주고 잡초도 뽑아주며 세 달을 보냈습니다. 배추가 벌레에게 점령당해 슬픈 날도 있었고, 어느새 무럭무럭 자란 배추를 보며 뿌듯한 날도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태풍에 배추가 모두 날아가버려 그 자리에는 배추 대신 갓을 심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갓은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습니다. 그리고 11월 25일, 배추를 수확했습니다.

▲ 배추밭에 마지막으로 물 주던 날

 
 김장 전날인 11월 28일 목요일에는 모든 학년이 김장 재료 준비로 바빴습니다. 1-2학년 친구들은 고사리 손으로 배추를 씻고 소금물에 절이는 일을 해주었습니다. 3학년은 쪽파를 다듬고 씻는 일을 맡았고, 4-5학년 통합반은 마늘과 생강을 까고 다듬었습니다. 6학년은 갓과 대파를 손질하고 썰어주는 일을 했고, 7-9학년은 무채를 썰고 무를 갈아 무즙을 만들었습니다.

 김장 당일에는 학년으로 모이지 않고 전 학년이 섞인 모둠으로 모여 김치소를 만들고 김치를 버무렸습니다. 모둠장 역할을 맡은 중등 아이들은 산학교에서 다년간 김장을 해온터라 교사들만큼이나 김장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많습니다. 저와 같은 모둠이 된 9학년 친구는 동생들에게 “김장은 엄청 중요한 거야. 우리가 1년 동안 먹을 김치를 만드는 거잖아. 형은 이제 1달 정도밖에 못 먹고 떠나지만, 너희들은 1년간 먹을 거니까 더 열심히 해야 돼, 알았지?”하고 말해줍니다. 동생들이 형의 마음을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생들도 9학년이 되면 알게 되겠죠. 형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해주었는지.

▲ 달님께 김장에 대한 이야기 듣기

 전날 미리 김치 속 재료들을 손질해두었기에 당일에는 김치소를 만들고 버무리는 일만 하면 되어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전교생이 함께하는 김장이라 아이들 손 하나 하나가 모여 일이 빠르게 끝나기도 합니다. 김치를 김치통에 차곡 차곡 넣는 일, 김치통을 나르고 정리하는 일 등 아이들이 하기 힘든 일도 있기에 시간이 되시는 부모님들도 김장을 도와주시러 와주십니다.

 모둠장 형의 지도 아래 아이들은 열심히 김치 양념을 만들고, 김치 양념을 배추에 버무립니다. 아이들은 앞치마에 고무장갑에 중무장을 했지만 결국은 온몸에 김치 양념이 범벅이 되어버리고 말죠. 그치만 그것도 김장의 재미! 다들 이렇게 될 것을 알기에 여벌옷을 챙겨오는 아이들도 있고, 교사들도 아이들에게 김치 양념이 묻어도 괜찮을 어두운 옷이나 버려도 되는 옷으로 입고 오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 김치 버무리기

 산학교 김장은 점심 먹기 전에 모두 끝나고 점심에는 맛있는 김장김치를 먹을 수 있습니다. 작년까지는 김장날 수육을 먹었는데, 올해는 수육 대신 불고기를 먹었습니다. 수육을 기대했던 터라 조금은 아쉬웠지만 갓 만든 김장김치는 역시 너무나 맛있었습니다. 평소 김치를 잘 먹지 않는 저학년 아이들도 김장을 하고난 뒤에는 김치를 맛있게 잘 먹습니다. 매년 모둠마다 김치 맛이 약간씩 다른데, 올해도 김장날 김치를 먹으며 어떤 아이는 “어, 이거 우리 모둠이 만든 것 같아. 딱 이 맛이었어.”하고 반가워하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우리 김치는 이것보다 매웠어. 우리 김치가 더 맛있는데.”하며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김장을 끝으로 1년의 농사가 모두 마무리 되었습니다. 1년 동안 열심히 꽃과 농작물을 키워내던 학교 텃밭도, 열심히 물을 주고 잡초를 뽑던 꼬마 농부들도 잠깐의 쉼을 갖게 되었네요. 이제 곧 방학이기도 하니 텃밭도 아이들도 교사들도 겨울동안 푹 쉬고 내년 봄에 더 밝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다시 만나면 좋겠습니다. 다시 만난 산학교의 봄은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다들 긴긴 겨울 맛있는 김장 김치와 함께 따뜻하고 행복하게 보내시고 봄이 되면 산학교에 놀러오세요. 내년에도 산학교에는 아이들이 열심히 키우는 꽃들도 가득, 농작물들도 가득,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한가득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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