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헛어른  글. 그림: BOTA 출판사: 가나출판사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애써 살아온 2019년을 돌아본다. 개인적으로 쉽지 않은 일 년이었고, 한국 사회도 풍랑이 이는 밤바다 같은 시간을 지금도 보내고 있다. 계획대로 살아지는 인생이 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도 깊이 쉬어지는 한숨의 무게는 가벼워지지 않는다. 허나 온통 잿빛 같아도 이런저런 모양의 장밋빛 조각이 팍팍한 삶에 작은 틈을 내며 들어왔으니 여전히 우리의 인생은 살만하다 싶다. 아니 살만해야 하지 않겠나? 2019년을 떠나보내기 전에 나에게 격려와 칭찬의 말을 하고 싶다. ‘브라보, 수고했다. 너 충분히 잘 살아낸 거야!’

 

‘HUDLT’, 처음 보는 말이다. 무슨 뜻이지? 어려운 단어는 아닌 것 같은데 도무지 모르겠다. 사전을 찾아봤지만 없는 말이다. 작가가 창조한 말이 아닌가 싶다. 어른(adult)이 아니라 ‘헛어른’이라는 의미로 말이다. 헛어른, 얄궂은 제목에 가슴이 뜨끔하다. 지구별에 불시착하여 시작한 여행이지만 어느덧 광장지기도 ‘어른’이라 불리는 나이가 되도록 여행을 하고 있다. 여행의 시간이 얼마 더 남았는지는 오직 신만 아시겠다. 신께서 급하게 여행 중단을 선언하지 않으시다면 적잖은 여행 시간이 남았다. 날마다 낯선 하루, 경험한 적 없는 지구별 여행을 하면서 ‘어른’을 만나기도 한다. 인생의 지혜와 품위가 느껴지는 분들을 뵙는다. 광장지기도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4컷 만화로 구성된 ‘헛어른’은 꽤나 어설픈 어른(?) 청춘들이 살아가는 일상이다. 왼편에는 서른 즈음의 혜선 씨가, 오른 편에는 서른 언저리의 상규 씨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던져준다. 광장지기는 가끔 혼자 뒷산을 오른다. 혼자 산속을 걷다 보면 후드득하며 열매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안녕, 너 혼자 왔구나, 괜찮아 내가 여기 있어!’하며 반갑게 맞아주는 산님의 인사 같아 무척 반갑다. 만화 헛어른이 뒷산을 오를 때 툭툭 떨어지는 소리로 ‘우리 여기 있어요!’하는 딱 그런 책이다. 우리 주인공인 혜선 씨, 상규 씨의 이야기는 오십 근방에 와 있지만 여전히 ‘어른’이 낯선 내 일상이라 위로가 된다. 삼십 근처에 있는 친구들이라면 더욱 폭풍 공감하며 웃고 울고 하겠다.

 

‘어렸을 때만 해도 서른 즈음 되었을 때 난 충분히 멋지게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프롤로그가 가슴을 훅 치고 들어온다. 광장지기도 그랬다. 물론 서른이 되었을 때 마흔 때쯤이면, 마흔에는 아마 오십에는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오십 언저리에 도착하니 여전히 ‘충분히 멋짐’과의 거리는 별로 좁혀지지 않았다. 어쩌면 신은 우리가 꿈꾸는 ‘충분히 멋짐’을 언제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적당한 거리‘에 두고 있는 것 같다. 지구별 여행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장치쯤으로... 그런데 말이다, 더 이상 슬프지 않다. 그것은 광장지기가 ’충분히 멋짐‘을 포기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돌아보니 이미 ’적당히‘ 멋진 삶을 살아왔기에,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은 ’충분히‘ 멋지기 때문이다.

 


사실 ‘헛어른’은 서른 즈음에 도착한 친구들의 고단한 일상 생존기다. 세상은 ‘워라밸’을 말하지만 애당초 불가능한 사회가 아니던가? 충분히 멋질 줄 알았지만 빡센 현실에서 생존하려니 작은 여유와 쉼이 사치처럼 느껴진다는 청춘들의 보고서다. 공감하며 웃으며 페이지를 넘기지만 공감하는 것만으로는 미안하고 속 쓰리다. 광장지기가 오십에 도착해 보니 여전히 ‘내 코가 석자’인 인생이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멋질 수’ 있다는 꼰대의 어설픈 위로를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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