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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藝)의 경지에서 노닐다 – 서예가 전윤성
이종헌 조합원 (작가)  |  h2on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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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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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문학 창의 도시 지정 3주년 및 ‘2020 문화도시’ 지정 기념 특집
  부천의 예술가 2
콩나물 신문은 부천시의 유네스코 문학 창의 도시 지정 3주년 및 문화체육관광부 ‘2020 문화도시’ 지정을 기념하여 <부천의 예술가>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부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각 분야의 명망 있는 예술가를 소개하는 이번 연재를 통해 부천 시민의 자긍심과 문화도시 부천의 위상이 한층 높아지기를 기대합니다.

 

『논어』 「옹야편」에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는 구절이 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아무리 많은 부와 명예가 주어진다 해도 그 일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면 그것은 한갓 고된 노동에 지나지 않으니,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그것이 생활이든 예술이든 간에, 그 일을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최고의 경지로 여겨왔다. 오늘 ‘부천의 예술가’ 코너에 소개할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단지 글씨 쓰는 게 좋아서 붓과 먹을 가까이했다가 어느덧 한국 서예계의 중진으로 우뚝 선 소정(蘇亭) 전윤성(全允成)이다.

   
작업실에서 만난 소정 전윤성 선생. 단지 좋아서 시작한 서예가 평생의 업이 되었다.

  오는 8월, 재직 중인 대전대학교 디자인아트대학 서예디자인학과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는 소정 전윤성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신전동의 소정 마을에서 태어나 청주에서 초중고와 대학을 모두 마쳤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글씨를 잘 써 선생님들의 칭찬을 듬뿍 받곤 했던 소정은 중고등학교 때에는 동아리 활동을 통하여 서예를 익혔고, 군 제대 후에는 청주와 서울을 오가며 본격적인 서예 공부에 매진했다. 오로지 글씨를 잘 써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당시 서울에서 활동하던 명필 김사달 박사를 찾아간 일화는 서예에 대한 그의 열정과 집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사달 박사는 충청북도 괴산 출신으로 고학으로 의사가 되고 서예가, 문필가로서도 일가를 이룬 입지전적 인물이다. 김사달 박사의 소개로 당대의 명필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선생을 사사한 소정은 주말마다 서울과 청주를 오가며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일중 선생의 가르침을 소화하기에는 자신의 그릇이 턱없이 부족함을 느꼈다. 그리하여 다시 일중 선생의 제자인 초정(艸丁) 권창륜(權昌倫) 선생의 문하에서 부지런히 서예의 기틀을 닦았다. 이 과정에서 일중 선생의 승낙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소정’이라는 그의 호는 한자를 ‘소정(蘇亭)’, 또는 ‘소정(蘇丁)’으로 쓰는데, ‘소정(蘇亭)’은 그가 태어난 고향 마을의 이름이요, ‘소정(蘇丁)’은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서예에도 뛰어난 실력을 보인 ‘소동파(蘇東坡)’와, 권창륜 선생의 호 ‘초정(艸丁)’에서 한 글자씩을 취한 것으로 서예가로서 그의 지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2019년이 다 저물어가는 성탄절 아침, 소정 선생을 만나기 위해 송내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작업실 입구에는 ‘유예(遊藝)’라고 쓴 커다란 붓글씨가 걸려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유예’의 뜻부터 물으니, 『논어』 「술이편」의 “도에 뜻을 두고(志於道), 덕에 의거하며(據於德), 인에 기대고(依於仁), 예에 노닐다(遊於藝)”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소정 선생이 따끈한 차 한잔을 준비하는 사이 ‘예에 노닐다(遊於藝)’라는 말의 뜻을 곰곰이 헤아려 보니, 예란 곧 세속의 규범과 욕망, 질서 등을 초월한 정신적 자유, 높은 도덕적 경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실 입구에 걸려있는 글씨 ‘유예’. 다소 익살스러운 글씨체에서 서예를 대하는 그의 취향이 느껴진다.

  대학 졸업 후 서울에 있는 신광여자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한 소정은 1987년 한국미술협회 부천지부 회원 입회 후, 현재 자문위원과 부천서예문인화협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경인미술대전 운영위원장 및 심사위원을 지냈고, 부천미술제, 새로운 지평전, 부천서예문인화협회전, 한일교류전, 부천미협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2000년 3월부터 대전대학교 디자인아트대학 서예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제5대 국새(國璽)심사위원을 비롯해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 등을 통해 활발하게 서예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석고문(石鼓文)』, 『서주금문선(西周金文選)』, 『갑골문자 선해와 소자전(甲骨文字 選解와 小字典)』 등의 서예 관련 편저와 『서예와 인장예술의 허실 조형에 관한 고찰』, 『전통 서예의 결구 변화 형식 고찰』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1997년, 2007년, 2017년 등 10년 주기로 개인전을 열어오고 있다.

 

   
▲ 소정 전윤성의 글씨. 물 맑으니 물고기 셀 수 있고, 산 가까우니 새들도 잘 따르네. 모두 속세의 일 잊으니 한가로워 세상 밖의 몸 되었네. (수청어가수, 산근조능순, 등시망기사, 혼한물외신)

소정이 이처럼 꾸준한 작품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문영오 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는 소정의 작품 세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동기창(董其昌)은 훌륭한 서화가가 되려거든,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의 여행을 떠나라.’라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소정의 예서 작품에는 저 많은 법첩(法帖)의 자기화 과정이 녹아있다. 목간이 되었건 마애각석의 필의가 되었건 소정은 이 모든 것들을 빠짐없이 소화하고 자기화했기에 이 경지의 작품을 이룩하기에 이르렀으리라. 그러니 그의 예서 작품의 경지는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그 ‘신(新)’에 나름대로의 또 다른 ‘신(新)’을 가미한 그만의 예서 경지를 창조해 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소정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영위해올 수 있었던 근간은 다름 아닌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유행하는 캘리그라피(Calligraphy)에 대한 그의 생각도 확고하다. 서예에 대한 탄탄한 기본기 없이 바로 캘리그라피에 입문하는 것은 자칫 모래 위에 지은 집,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는 작품을 만드는 일에도 힘쓰지만 가끔은 작품을 버리는 일에도 골몰한다. 작업실 한쪽에 수북히 쌓여있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펼쳐보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이 나타나면 마치 감추고 싶은 치부가 드러난 듯하여 황급히 불태워 없애 버린다고 한다. 보잘것없는 작품을 갖고도 예술이라는 미명으로 포장하기에 급급한 세상에 멀쩡한 제 작품을 태워 없애버리니 이는 예술가로서의 치열한 구도 정신을 갖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부천이 명실상부한 문화도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담당 공무원들과 각 예술 분야 전문가들의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고언(苦言)도 있었다. 공원의 조형물이나 길거리의 작은 표지판 하나하나에서 예술가의 숨결이 느껴질 때 진정한 문화도시로서의 발전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소정 전윤성의 신년 휘호 ‘무사위복’. 일이 많으면 근심 걱정이 많으니 불필요한 일을 줄여서 마음의 평안을 얻으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경자년 새해를 맞이하여 부천 시민과 콩나물신문 가족들을 위한 신년 휘호를 부탁했다. 일 없는 것이 복이라는 뜻의 ‘무사위복(無事爲福)’을 써 내려가는 그의 붓끝은 무심한 듯 거침이 없는데, 성명인(姓名印)과 호인(號印), 두인(頭印)을 찍는 손끝에서 어느덧 한 편의 작품이 완성되었다. 소박하고 고졸하면서도 보면 볼수록 기품이 느껴지는 필체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내공이 깃들어있다. 작업실을 나오는데 문득 ‘글씨는 그 사람과 같다[書如其人]’라고 한 손과정(孫過庭)의 말이 떠오른다. 여기서 ‘사람[人]’이란 작가의 인격, 인품을 뜻하나 한편으로는 작가의 개성, 즉, 높은 예술적 성취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 서예에만 국한되는 말이랴? 자칭 문학에 종사한다는 나는 얼마나 개성 있는 글을 쓰고 있는지 소정 선생을 생각하면 스스로 얼굴이 붉어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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