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에 맞지 않는 회사에 다니며 하루하루를 견디던 시절이 있었다. 화학회사의 단순 반복되는 업무는 성과도 보람도 없이 나를 기계부품처럼 만들었다. 온종일 복잡한 서류와 싸우다 보면 오후에는 머리가 무지근하게 핑 도는 듯했다.

의미가 필요했다.

 

호프집에서 친구들과 샐러드와 수다를 안주 삼아 마시던 생맥주의 거품 속에서도, 퇴근 후 테니스 코트를 뛰어다니던 운동화 바닥의 푹신한 감촉 속에서도, 유행하던 지점토 공예로 만든 화려한 거울에 비친 쓸쓸한 내 얼굴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나를 흥분 시킬만한, 인생을 걸만한 무엇이 필요했다.
남들은 어떻게 살까?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까? 어떤 것에서 재미를 느낄까? 궁금했고 이유를 찾아야 했다. 이른 아침 부대끼는 버스에 몸을 싣고 힘겹게 출근해야 하는 이유를…

서점에 가서 수필집을 읽어 보았다. 우리 사회에서 작가라는 타이틀이면 어느정도 성공했다고 믿었다. 그들이 보내는 24시간을 알고 싶었다.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과 머무는 공간들이 궁금했다.
나의 독서는 염증나게 반복되는 나의 일상의 변화를 위해 시작되었다. 변하고 싶은 나, 또 다른 나를 찾고 싶은 갈증이었다. 그렇다고 책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었고 드문드문 책을 아예 놓고 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가끔 멀미가 나듯 가슴이 울렁일 때, 누군가 던진 의미 없는 말이 가시가 되어 가슴에 박힌 날, 나는 책 속으로 숨어 버린다.
살면서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의문이 생길 때 , 엉킨 실타래처럼  꼬인 생각들을 하나하나 백지에 적어 본다.  쓰다 보면 맥락이 잡히고, 시야가 조금씩 선명해진다. 그럴 수 있다고  괜찮다고 나를 일으켜  세운다.
‘햇빛과 앉을 의자와 읽을 책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유토피아’라고 장석주 시인은 말한다. 나도 그 유토피아에 가고 싶다.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