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시화공단을 중심으로

 직업계(특성화 고등학교)는 현장실습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며 2016년부터 도제형 일학습병행제도의 도입으로 또 다른 형태의 현장실습도 운영되고 있다. 현장실습생들의 잇따른 죽음으로 현장실습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하고 있으며, 다양한 연구 결과 직업계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노동자들은 노동권의 사각지대에서 일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천시에 소재한 4개교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확인할 수가 없다. 이에 경기도 안산시와 시흥시에 소재한 반월시화공단을 대상으로 진행된 실태조사 결과를 발췌하면서 현장실습생 출신 노동자들의 노동세계, ‘노동자로서의’ 경험, 다시 말해 현장실습생으로 ‘조기취업’한 노동자들이 어떤 기대와 꿈을 가지고 노동현장에 진입했는지, 노동현장에서 이들은 어떤 노동경험과 인식을 갖게 되었는지를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하려고 한다. ( 본 자료는 2018 직업계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노동환경 및 노동세계진입실태조사 자료집- 발간 전국금속노조, 전국불완전노동철폐연대, 현장실습대응회의 –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

(2) 노동자들을 옥죄는 산업기능요원제도

산업기능요원제도란 기술 자격이나 기술 면허를 가진 청년들을 군 복무 대신 국내 중소기업에 근무토록 하는 병역대체 복무제도이다. 중소기업 인력난을 덜어주자는 취지로1973년 시작됐다. 산업기능요원들은 4주간의 군사교육을 받은 뒤 지정 중소기업에서   최소 34개월(보충역은 26개월) 이상 근무해야 한다 (한경 경제용어사전 http://dic.hankyung.com).

2010년대 들어 이 제도는 폐지될 운명이었으나 고교 졸업생의 취업 지원이라는 차원에서 그 의의를 인정받아 유지되었다. 그러면서 2011년부터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위주로 운영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편이 이뤄졌다. 특성화고, 마이스터고와 산학협약을 맺은 업체들을 우선적으로 산업기능요원제도 지정업체로 선정될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졸업생을 우선적으로 산업기능요원으로 배정하도록 한 것이다.

<표> 산업기능요원제도 시행 현황

 
제도개선 이후 직업계고 출신들의 산업기능요원 편입이 대폭 확대되었다. 2016년의 경우 특성화고 등의 배정율이 무려 85.7%에 달해, 이제 산업기능요원제도는 직업계고 출신들이 주로 활용하는 병역특례제도가 되었다(<표> 참조).
이러다보니 직업계고에서 남학생들을 현장실습에 보내는 경우 산업기능요원제도 적용 여부가 중요한 업체선정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학생들도 현장실습을 시작할 때부터 산업기능요원제도를 고려하여 조기취업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

“일단은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필터링하잖아요. 이제 산업기능요원이 되는 회사가 있으니까 그 회사 안에서 일단 명단을 뽑아서 줘요. 저희한테. 그러면 이제 거기서 저희가 선택을 하는거죠”(면접참여자 H)
“이게 (현장실습을) 먼저 나가야 산업기능요원이 돼요. 안나가면 아예 기회조차 주어지질 않아요”(면접참여자 H)

산업기능요원제도는 직업계고 출신 노동자들이 병역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매력적인 대안이다. 실제로 이 제도의 혜택을 입는 경우 함께 조기취업에 나섰던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제도는 한편으로 조기취업한 직업계고 출신 노동자들로 하여금 졸업으로 현장실습이 종료된 이후에도 상당 기간 저임금노동력으로 지속적으로 공급되도록 해주는 중요한 기제가 된다. 사실 고교시절 조기취업에 나선 노동자들 중에서 다수는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일을 떠난다. 그러나 산업기능요원제도의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경우 졸업 이후에도 자신의 일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는 경향이 있다.

“(계속 일하시는 이유는 어쨌든 여기서 3년을 채워야 하니까?) 예, 어쩔 수 없이 계속 있는 거고. (그게 아니면 여기 있으실 생각은?) 없죠”(면접참여자 H)
병역특례가 아니면 월급도 적고 아마 안다닐 거예요... 제가 듣기로는 병역특례하면서 월급이 오르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요”(면접참여자 C)

그러면서 산업기능요원제도는 기업들로 하여금 그 혜택을 받는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인 헌신과 차별을 강요할 수 있는 기제가 된다. 부당한 대우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떠날 수 없는 산업기능요원들은 그러한 부당한 현실에 저항할 수 없다. 고졸 청년 취업활성화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제도가 이제 대상 노동자들로 하여금 열악한 노동현실에 저항하지 말고 그것을 감내하고 순응하도록 하는 제도적 굴레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임금 액수가 최저임금에 미달되는 액수라서... 일단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병무청이든 노동청이든 신고를 해야 되잖아요. 회사를 다니는 상태에서 신고한다는 거 자체가 이거 좀 불가능하지 않나, 그게 좀 제일 문제가 큰 거 같아요”(면접참여자 H)
“제가 (병역특례로) 당장 못나가는거 아니까 할말 못할말 다 하는거죠”(면접참여자 H)
“산업체(산업기능요원)에서는 최저임금을 받고 했어요... 피곤할 때가 있고 안하고 싶기는 한데 거의 강제로 했죠. 안한다고 하면 군대가고 싶냐고 이야기하고, 그래서 어쩔 수없이 할 수밖에 없었죠. 8시부터 5시반까지인데 항상 9시까지 했어요. 그런데 병특들은 11시, 1시까지 하곤 했어요”(면접참여자 O)
“저희 회사가 화재가 났었어요... 그 다음주에 작업을 시작하라고 해요. 화재 찌그러기가 떨어지고 하느데 당연히 몸에 안 좋죠, 냄새도 그렇고 눈에 안보이는 화재 찌끄러기도 있고 불도 안들어오고. 전기도 위험했어요. 그런데 회사에서 일을 안할거면 나가라고 해서 아주머니들은 나가고, 저희는 특례생이어서 가서 일하고”(면접참여자 G)

(3) 전직을 불가능한 일·학습병행제도

일․학습병행제는 ‘기업이 취업을 희망하는 청년을 학습근로자로 채용해 현장 훈련을 하면서 동시에 특성화고 전문대 등에서 이론 교육을 받게 하는 교육 훈련 제도’를 말한다. (한경 경제용어사전 http://dic. hankyung.com). 이 제도의 형태는 고교시절부터 현재 산학일체형 도제학교라는 형태로 일학습병행제가 시행되고 있고, 또한 고등학교와 전문대 통합교육과정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도 있으며, 마지막으로 장기현장실습형으로 4년제 대학과정을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일학습병행제에 참여하는 노동자는 6개월~4년 동안 직장에 다니면서 동시에 학교 교육을 받는다. 회사와 학교 간 협약을 통해 운영되며 비용은 고용보험 기금에서 지출된다.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는 일반 노동자가 아니라 ‘학습 근로자’라는 특수한 신분이 된다.
앞의 산업기능요원제도는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제도를 운영하는 다른 회사로 전직하는 것이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가능하다. 그러나 일․학습병행제도는 다른 회사로 전직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지금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옮기면 그간 수료한 학습과정은 무용지물이 되고 새로운 회사가 운영하는 훈련직무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들의 전직을 금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학습병행제도도 (그리고 실질적으로 산업기능요원제도도) 대상노동자들의 전직을 금지함으로써 이들을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그대로 기업에 묶어두는 제도로 기능하고 있다.

“이직을 하면 가능한 곳은 있는데 대학교를 포기해야 되요. 이직(전직)은 못한다고 봐야죠. (병역특례로) 2020년 4월 제대였는데 (산재사고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9월(제대)로 늘어났어요.... 대학에서도 다친 것을 이야기하니까 책임 전가를 나에게 해요. 저보고 알아서 하라고 해요. 누구도 책임져줄 사람이 없어요”(면접참여자 G)
“우리는 부당함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입지도 아니고, 학교는 특례생이고 (일학습병행제로) 대학교까지 다니니까. 우리에게 배려를 많이 해주고 있다고 하면서 많이 부려먹거나 많이 얕잡아보는 경우가 많아요”(면접참여자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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