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의 예술가3

콩나물 신문은 부천시의 유네스코 문학 창의 도시 지정 3주년 및 문화체육관광부 ‘2020 문화도시’ 지정을 기념하여 <부천의 예술가>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부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각 분야의 명망 있는 예술가를 소개하는 이번 연재를 통해 부천 시민의 자긍심과 문화도시 부천의 위상이 한층 높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유네스코 문학 창의 도시 지정 3주년 및 ‘2020 문화도시’ 지정 기념 특집
  부천의 예술가 3

사진에 감성을 더하다 - 사진작가 이영숙

 

처음 이영숙 작가를 만났을 때, 문득 소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가 생각났다. 런던 증권거래소 주식 중개인으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스트릭랜드는 마흔 살의 나이에 가족과 직장, 친구 등 모든 것을 버리고 훌쩍 파리로 떠나버린다. 이유는 단 하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파리에서의 삶은 혹독했다. 그는 가난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어에도 익숙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스트릭랜드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그림 세계를 추구해나갔고 멀리 태평양 한가운데의 섬, 타히티에 가서 마침내 활짝 그 꽃을 피운다. 파리에서 생활한 지 5년쯤 지났을 때 스트릭랜드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는다. “파리에 오신 뒤로 연애 같은 걸 해보신 적은 없나요?” 스트릭랜드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시간이 어디 있소? 연애도 하고 예술도 할 만큼 인생이 길진 않소.”

  이영숙 작가 역시 3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사진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또한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그 열정과 집념만큼은 찰스 스트릭랜드를 꼭 빼닮았다. 「화양연화(花樣年華)」, 「윤회(SAMSARA)」, 「신(神)들의 정원」, 「푸른 소멸」 등 4번의 개인전과 수십 회의 단체전에 참여한 이영숙 작가는 부천을 대표하는 중견 작가다. 경기도 사진대전 특선, 신형상 전국사진공모전 금상, 복사골 전국사진공모전 금상 등 그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대부분 작가가 사진학과를 졸업한 후 자연스럽게 작가의 길을 걷는 데 반해, 이영숙 작가는 사진을 찍다가 스스로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늦깎이로 사진학과에 진학했다. “사진을 시작한 지 15년에서 16년쯤 됐을 때 비로소 눈을 뜨게 된 것 같아요.” 그녀에게 있어 사진은 흡사 수행자의 구도 과정과도 같다. “너무 서두르다 보면 병이 나서 몸이 상하게 되고 또 너무 느슨하게 하면 중간에 길을 잃고 포기하기 쉬우니 그냥 묵묵히 앞만 보고 가는 거죠. 끝이 보일 때까지….”

이영숙 작 「신들의 정원 1」

인스타그램의 스타

   이영숙 작가는 인스타그램의 스타다. 그녀의 2.5초 핸드헬드(handheld) 감성 사진은 그 뛰어난 작품성으로 인해 인스타그램에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명성 때문에 주중에는 서울 경기 일원에서, 주말에는 멀리 광주에서까지 그녀에게 사진을 배우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온다. “처음 핸드헬드 사진을 접하고 나서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죠. 하지만 지금의 2.5초 핸드헬드 감성 사진을 완성하기까지 약 2년 동안은 단 한 개의 작품도 완성하지 못했어요.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었죠.” 사진이 아니라 얼핏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하는 그녀의 사진 속에는 최고의 경지를 향해 나아가는 한 예술가의 지난한 몸짓이 들어있다.

이영숙 작 「신들의 정원 2」

해인사와의 인연

   이영숙 작가는 학창시절부터 불교학생회 활동을 했을 정도로 불교와 인연이 깊다. 젊은 시절, 사진에 한창 심취했을 때의 이야기다. “4박 5일 해인사 수련회를 갔을 때였어요. 같이 간 일행들은 다들 열심히 수행에 참여하고 있는데 웬일인지 제 눈에는 온통 사진 찍을 거리만 보이는 거예요. 염불보다 잿밥에 더 마음이 있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당시 홍보국장 스님을 찾아가 말씀드렸죠. 수행 대신 사진을 찍으면 안 되겠냐고? 그랬더니 홍보국장 스님이, 사진 찍는 것도 수행이니 그렇게 하라며 흔쾌히 허락해주시더군요.” 수련회 마지막 날 회향 자리에서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발표하여 큰 호응을 얻게 되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월간 『해인(海印)』의 사진 기자로 무려 15년 동안이나 표지사진과 각종 행사 사진을 담당했다. “2007년일 거예요. 해인사 대비로전 낙성법회 때 노무현 대통령 내외분이 참석하셨는데 그때 제가 해인사 대표 사진 기자로 대통령 내외분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납니다.” 자칭 시인이자 소설가인 내가 이 대목에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니발의 아침」이라고, 해인사를 배경으로 한 제 소설인데 혹시 읽어보셨나요?” 당연히 안 읽어봤을 거다. 아니, 못 읽어봤을 거다. 왜냐면 그 작품은 여태 발표도 안 된 채 컴퓨터 속에 잠들어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내 이야기에 동정심을 느꼈는지 이영숙 작가가 갑자기 귤을 내와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영숙 작 「신들의 정원 3」

불광불급(不狂不及)

  이영숙 작가의 사진에 대한 열정은, 앞에서 찰스 스트릭랜드의 경우에 비견한 것처럼, 정말 대단하다. 그녀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2.5초 핸드헬드 감성 사진 분야도 수많은 작가의 도전 덕분에 이제는 거의 평범한 분야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다시 새로운 분야의 개척이 절실한 때다. 앞으로 10년, 그녀는 자신의 예술적 성취를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미치지 않으면[不狂] 도달할 수 없다[不及]는 마음가짐으로 그녀는 오늘도 사소한 잡념 하나도 허락하지 않은 채 온 신경을 창작 활동에만 집중하고 있다. “남들 다 하는 평범한 사진으로는 어디 가서 명함 한 장 내밀기 힘들어요. 누가 봐도 아! 하는 감탄사가 나올 만큼 독특한 작품을 만드는데, 노력을 집중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예술가로서의 책무이자 보람이겠죠.”

푸른 소멸(消滅)

  이영숙 작가의 네 번째 개인전 제목이기도 한 ‘푸른 소멸’은 그녀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이다. 그녀는 소멸을 죽음의 동의어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새로운 탄생을 위한 시작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소멸 앞에 ‘푸른’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다소 모순된 표현이지만 그 안에는 삶을 바라보는 그녀의 따뜻한 시선이 녹아있다. 그러므로 그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시들어가는 연꽃에는 음습한 죽음의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에 대한 기대와 환희가 일렁이는 것이다. “제 작품은 모두 삶의 은유이자 의인화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설 때쯤 그녀가 건넨 마지막 한마디에서 예술가로서의 남다른 깊이와 풍격이 느껴졌다. 부천시청 1층 로비 좌측에 이영숙 작가의 작품이 걸려있다. 언젠가는 로비 우측에 마련된 ‘부천을 빛낸 인물’ 코너에서도 그녀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1] 사진작가 이영숙. 그녀의 사진 속에는 언제나 밝음, 따뜻함, 희망, 긍정과 같은 언어들이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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