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 1월에 설날까지 들어 2020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느낌이다. 바야흐로 정월이다. 고려가요 <동동>에는 정월의 냇물을 소재로 다음과 같이 노래하는 구절이 나온다.

정월 나릿믈은 아으 어져 녹져 하논데 누릿 가온데 나곤 몸하 하올로 녈셔
(정월 냇물은 아아 얼었다 녹았다 하는데 이 세상에 난 몸이여 홀로 지내는구나)

이 노래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여인이 부른 것으로 추정한다. 정월의 시냇물이 얼었다 녹았다 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이와 ‘얼었던’ 기억을 떠올리고 현재 자신의 외로움을 돌이켜보며 서러워하는 노래이다.

‘얼다’라는 단어는 물이 언다는 뜻이지만 남녀가 서로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뜻도 있는 일종의 동음이의어이다.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는 정월의 냇물을 바라보며 자신과 사랑을 나누었던 사람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동동>의 이 장면은 지금 다시 읽어도 참 매력적이다. 자신의 감정을 자연물을 소재로 삼아 정직하게 드러내는 옛사람들의 표현 방식이 무척 인간적으로 다가오기에 그렇다.

현대인들은 어느덧 <동동>의 정직함이나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사랑과 이별이라는 인간사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지만 우리는 어느덧 냇물을 바라보며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는 고려인들의 자연스러움에서 너무 멀어져버렸다. 더구나 그것이 얼었다 녹는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더더욱 어렵게 되어버렸다. 현대의 사랑과 이별은 모두 자연적이기보다는 문명적이며, 여유롭고 느긋하기보다는 SNS와 휴대폰 문자 서비스 사이를 초고속으로 넘나드는 무서운 속도를 자랑한다.

시냇물을 찾기도 어려운 세상에서 그것이 얼었다 녹는 과정을 바라본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일상적인 자연을 일정한 시간동안 관조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전제로 한다. 자연을 바라보며 자신의 일상을 돌이켜보는 일 또한 쉽지 않다. 우리는 숨 막히도록 빠른 속도로 달리는 과학문명의 이기들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남들보다 더 빠르게 정보를 얻어내고 더 빠르게 그것에 적응하고 더 빠르게 능력을 익혀야만 우위에 설 수 있다고 확신하며 이 삭막한 현대의 사막 한가운데를 목마르게 달리는 이웃들에게 한 번쯤은 잠시 멈춰 서서 <동동>의 저 한 구절이라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시간이 흐르는 과정을 내 눈으로 직접 들여다보며 자신의 아름다웠던 순간을 돌이켜보고 현재를 다시 곱씹어보는 능력이야말로 인터넷이 가져다줄 수 없는, 오직 우리 인간들만이 누릴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따뜻한 특권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마음속에는 아직 얼었다 녹으며 이어가는 정월의 냇물이 가늘게나마 흐르고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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