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의 예술가4

콩나물 신문은 부천시의 유네스코 문학 창의 도시 지정 3주년 및 문화체육관광부 ‘2020 문화도시’ 지정을 기념하여 <부천의 예술가>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부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각 분야의 명망 있는 예술가를 소개하는 이번 연재를 통해 부천 시민의 자긍심과 문화도시 부천의 위상이 한층 높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유네스코 문학 창의 도시 지정 3주년 및 ‘2020 문화도시’ 지정 기념 특집
  부천의 예술가 4

  음악은 나의 행복 – 지휘자 윤교생

 

▲ 슈토팽 윤교생. 작곡가 겸 지휘자로 부천콘서트콰이어(온새미로 합창단)’와 예폼앙상블을 이끌고 있다.

 

  입춘이 엊그제였으니 겨울도 다 끝나가는 모양새다. 창문을 열자 상쾌한 아침 공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방안으로 밀려든다. 키 큰 대나무가 가로등 높이까지 닿은, 길 건너편 2층 양옥집 앞마당에 햇볕이 따스하게 내려앉았다. 출입문 양쪽의 전나무에는 아직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이 남아있는데, 부지런한 참새들은 여기저기 마당 위를 날며 다가올 봄을 준비하고 있다. 라디오를 켜자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가 흘러나온다. 푸른 하늘처럼 투명한 피아노 선율과 함께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의 애절한 목소리가 심금을 울린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어서일까? 어느덧 나도 노래 속의 주인공을 따라 정처 없는 방랑의 길을 떠나고 있다.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는 독일의 낭만파 서정시인 빌헬름 뮐러의 연작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사랑에 실패하고 삶에도 실패한 물레방앗간 직공의 처량한 신세를 읊은 24편의 시는 슈베르트에 의해 노래로 만들어졌다. 슈베르트가 아니었으면 뮐러의 시가 지금과 같은 영광을 누리지 못했을 테고, 반대로 뮐러의 시가 없었으면 슈베르트의 음악 또한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니 그런 측면에서 보면 시와 음악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본래부터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지휘자 윤교생은 누구?

  사설이 길었다. 이번 회에 소개할 부천의 예술가는 작곡가 겸 지휘자 윤교생이다. 슈토팽이라는 예명으로도 잘 알려진 지휘자 윤교생은 동편제(東便制) 소리의 본고장인 전라북도 남원이 고향이다. 아주 어려서 가족 모두 서울로 이사했기 때문에 고향이라는 표현 자체가 어색할 수도 있지만, 그는 자신의 몸속에 우리나라 최고의 소릿고을인 남원의 기(氣)가 흐르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교회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배웠고 중학교 때 이미 성가대를 지휘했다. 고등학교 때는 유명가곡 ‘가고파’의 작곡가인 김동진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가 지휘자로 부천과 인연을 맺은 것은 추계예술대학 작곡과 재학 중이던 스무 살 때였다. 당시 부천 시민의 날 기념 합창 경연대회에서 지휘를 맡은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껏 30년 이상 부천과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현재 ‘부천콘서트콰이어(온새미로 합창단)’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예폼앙상블, 한국가곡합창단, 경기여고 동문합창단 등의 지휘도 맡고 있다. ‘부천콘서트콰이어’는 올해로 창립 21주년을 맞는 부천 최고의 순수 민간 합창 동호회로 1999년 창단한 ‘부천 여성합창단’을 모태로 하고 있다.

▲ 부천콘서트콰이어 창립 20주년 기념 공연

 

  모든 음악은 즐거워야 한다

  윤교생 지휘자는 대학 시절 작곡과에 다니면서, 부전공으로 지휘를 공부했다. 작곡가뿐만 아니라 지휘자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그의 지휘 철학은 한마디로 “모든 음악은 즐거워야 한다.”이다. 그는 합창단과 연주단을 이끌면서 철저한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한다. 그리고 그 아마추어리즘의 핵심은, “보는 사람도 즐겁고, 듣는 사람도 즐겁고, 하는 사람도 즐거워야 한다.”이다. 그래서 그는 단원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는 각종 경연대회 참가보다는 위문 공연이나 자선 공연, 발표회 등과 같이 단원들의 긍지와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행사를 더 선호한다. 곡 선택도 최대한 단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한다. 어려운 곡보다는 쉬운 곡으로, 누구나 다 참여해서 소화할 수 있는 곡으로 한다. 연습은 즐겁게 한다. 단원들 대부분이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연습이 자칫 스트레스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즐겁게 한다. 어떤 지휘자들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단원들을 이끈다. 하지만 윤교생 지휘자는 오히려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주 무기로 내세운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란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를 통해 조직을 이끄는 능력이다. 연주회와 발표회의 모습도 조금은 남다르다. 될 수 있는 대로 그는 객석에 앉아있는 청중들과 함께 호흡하려고 노력한다. 가끔은 무대에 선 할머니의 이름을 부르는 어린아이도 있고 객석을 뛰어다니거나 우는 아이도 있다. 그렇더라도 그와 단원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나친 엄숙주의야말로 무대와 관객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드는 주범이죠. 아이가 공연장에 와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닙니까? 공연장에서 혼났던 기억보다 공연장에서 즐거웠던 기억이 훗날 그 아이를 무대로 이끄는 원동력이 될 테니까요. 지나치게 높은 수준과 엄숙주의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프로들의 공연 무대로 가라고 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음악을 즐기고 사랑하는, 평범한 아마추어일 뿐이니까요.”

▲ 예폼앙상블 2019정기공연. 예폼앙상블은 부천지역 음악학원 원장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챔버오케스트라이다.

 

  생활 속의 음악, 음악 속의 생활

  ‘부천콘서트콰이어(온새미로 합창단)’, 예폼앙상블 등, 오랫동안 부천에서 순수 민간 음악 동호회를 이끌어온 윤교생 지휘자에게 운영상의 어려움과 함께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물었다.
“아무래도 민간 동호회다 보니 함께 모여서 연습할 공간도 그렇고, 또 공연장 잡는 문제나 홍보 등에 있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물론 우리끼리는 위문 공연도 하고 어려운 아이들에게 장학금도 주면서 나름대로 보람 있는 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그러나 더 많은 시민이 음악 활동을 즐기고 음악을 생활화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제기한 것과 같은 여러 문제에 대해 좀 더 정밀한 진단과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민간단체를 모두 다 지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저희와 같이 20년 이상 활동하면서 나름, 부천의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생각되는 단체에는 어느 정도 그에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제 개인적으로는 누구든 찾아와서 함께 웃고 즐기며 노래도 부르고 차도 마시는 그런 공간을 하나 만들었으면 합니다. 오다가다 아무 때나 편한 시간에 들러도 음악을 매개로 서로 소통하고 정을 나눌 수 있는 그런 곳 말입니다.”

  까치울역 근처 카페에서 윤교생 지휘자를 만났을 때 받은 첫인상은 겸손함과 소탈함이었다. 그는 결코 자신을 과시하거나 내세우려 하지 않았고, 돈이나 명예와 같은 것들에 대한 욕심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음악을 통해 소통하고 공감하며 봉사하는 삶에만 관심이 있었다.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과 노력이 더욱 확산하여, 모든 시민이 음악을 통해 서로 하나가 되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그날이 어서 빨리 오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 제11회 국제시니어합창제 골든웨이브 인 요코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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