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가(龜旨歌)와 원미산(遠美山)

구지가(龜旨歌)와 원미산(遠美山)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한역되어 전하는 고대가요 ‘구지가(龜旨歌)’는 다음과 같다.
 
구하구하 수기현야 약불현야 번작이끽야(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임금을 보내달라고 기원하는 노래이다. 그런데 첫 구절을 ‘거북아 거북아’로 해석하게 되면 기원의 대상이 거북이가 되어버린다. 그런 이유로 거북이가 그 지역 토템이라느니 거북이가 장수하는 동물이라 신격화되었다느니 하는 어이없는 해석이 뒤를 잇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거북이와 무관하게 신을 불러 기원하는 노래이다. 따라서 첫 구절은 ‘신이시여 신이시여’하며 신을 거듭 부르는 대목이라고 보아야 옳다. 모든 종교의례는 가장 먼저 기원의 대상이 되는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구(龜)’는 거북이가 아니라 ‘신(神)’의 고유어 ‘검’을 표기하기 위한 한자차자(漢字借字) 표기로 쓰인 것이다.

‘구지가’가 신을 불러 자신들의 지도자를 내려달라고 기원하는 노래라는 사실을 알면 그와 관련하여 더 이상 거북이라는 동물과 얽힌 이상한 오해는 하지 않게 된다.

‘구지가’를 읽을 때면 문득 ‘원미산(遠美山)’을 생각하게 된다. 어디에선가 ‘원미산’이 ‘멀리서 보아 아름다운 산’이라고 해석하는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원미산’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구지가’의 ‘구’를 거북이라고 해석하는 것과 같은 오류를 반복하는 것이다.

‘원미산’은 ‘멀뫼’ 또는 ‘멀미’로 불리던 산이다. 이 때 ‘멀’은 ‘머리, 마루, ᄆᆞᄅᆞ’ 등과 같은 뜻의 단어이다. 이것은 모두 ‘중심’을 나타내는 우리말 고대어 표기이다. ‘중심’을 나타내는 우리말 지명에 ‘머리’나 ‘말’, 또는 ‘마루’나 ‘미르’ 등이 사용된 까닭에 산 이름이나 땅이름에도 ‘두(頭)’나 ‘마(馬)’, 또는 ‘종(宗)’이나 ‘용(龍)’ 등이 자주 들어가게 된 것이다.

‘원미산’은 부천 지역의 중심이 되는 산이다. 가장 중심이 되는 산이라는 뜻에서 ‘멀뫼, 멀미’ 등으로 불리다가 ‘멀미’로 굳어졌을 것이다. 그것을 한자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미’가 ‘산’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리기 위한 의미 첨기로 ‘산’을 붙여 ‘원미산’이 되었을 것이다.

‘중심이 되는 산’이라는 ‘멀미’가 ‘원미산’이라는 한자로 표기되면서 그 본래의 뜻을 잃어버리고 ‘멀리서 보아 아름다운 산’이라고 잘못 해석하는 일이 생겼다. 신을 뜻하는 ‘검’을 표기하기 위해 ‘구(龜)’를 사용했는데 이것을 글자 그대로의 의미인 ‘거북’이라고 해석하여, ‘구미(龜尾)’가 ‘신이 깃든 산’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거북이 꼬리를 닮은 산’이라고 안타깝게 해석되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인 것이다. 이것은 모두 한자를 사용하기 이전 고대어로 불리던 지명을 한자어로 옮겨 적는 과정에서 비롯된 오해이다.

금수강산(錦繡江山) 이 나라에 대체 멀리서 보아 아름답지 않은 산이 어디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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