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여행 당일 날이 되었다.

사실 새벽 비행기라 정확히 말하면 전날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열이 펄펄 끓는 목감기에 걸렸다. 하... 왜 하필 여행 날 아픈거지? 기가 막힌다.

 아침엔 기어서 학교에 갔다. 그리고 한 달 동안 빠진다는 걸 잊어먹은 건지 양심도 버리고 1교시에 조퇴를 했다. 사실 조퇴할 때는 약을 먹은 직후라 괜찮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상태가 조금 괜찮을 때 빨리 집에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가기도 전에 아파 죽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미친 듯이 아팠다. 너무 완벽한 타이밍에 아파버리니 ‘내가 너무 자랑하고 다녀서 벌 받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겸손하게 있다 갈 걸’하고 말이다. 그래도 첫 여행인데 좀 자랑하는 맛도 있어야 되지 않나?

 7시쯤 옷을 정말 두껍게 껴입고 인천공항에 갔다.

도착하니 8시. 처음 가보는 거였는데 공항이 생각보다 넓고 잘 되어 있어서 놀랐다. 엄마랑 한 발자국씩 앞으로 갈 때마다 ‘우와아, 이게 뭐야? 저게 뭐야?’ 물으니 엄마가 촌스럽다고 웃었다. 아이 뭐 네덜란드 가는데 그깟 조금 촌스러워 보이는 게 대수인가? 마음껏 놀라야지. 첫 번째 경험은 다신 오지 않으니까.

 

 공항에서 캐리어를 올리고 끄는 카트(?)를 끌고 화장실에 갔는데, 이 카트 때문인지 화장실도 장난 아니게 넓다. 아직 놀랄 일이 많다는 걸 알지만 입이 먼저 벌어지는 걸 막을 순 없다.
 그렇게 정신없이 여러 절차를 걸치고 겨우겨우 수화물까지 부쳤다. 뒤늦게 밥을 먹으러 갔는데 식당이 이렇게 빨리 문을 닫아버릴 줄 몰랐다. 사실 식욕이 떨어진 상태라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배가 고플 나를 위해 미리 아쉬워 해주기로 했다.
 
 

 

비행기를 타기까지 3시간 정도 남았다. 엄마는 간단히 샌드위치를 사러 나갔고 난 지친 다리를 달래러 의자에 앉기로 했다. 음.. 와이파이가 돼서 참 다행이다.
 조금 있어서 엄마가 샐러드와 샌드위치, 물을 사 들고 왔다. 아까도 말했듯이 배가 고픈 상태는 아니라 엄마가 먹는 걸 옆에서 조금 뺏어 먹었다. 그리곤 사진도 찍고 수다도 떨고 약 먹고 있으니 벌써 비행기 시간이 되었다.

 순서대로 여권을 검사하고 드디어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했던 건 드라마에서 본 것만큼 좋은 좌석은 아니더라도 장시간 비행이니 편하고 넓은 좌석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냥 좁은 통로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좌석이었다. 한 줄에 세 명씩 앉았는데 우리는 바깥쪽이었고 안쪽엔 노랑머리에

 

백인 언니가 앉았다.

 곧 들뜬 마음으로 비행기가 출발했고

제주도에 간 것만 빼면 비행기는 처음이었기에 하늘로 슝 올라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한 시간쯤 뒤에 승무원이 기내식을 나눠줬다. 승무원들은 네덜란드 사람인 것 같았는데 주로 우리 줄을 담당했던 승무원은 키가 정말 컸다. 다시 돌아와 기내식에 대해 말해보자면 치킨과 비빔밥이 있었는데 나와 엄마는 비빔밥을 먹었다. 평상시였다면 정말 맛있게 먹었을 텐데 비행기는 덜컹거리고 안 좋은 컨디션에 밥이 잘 넘어갈 리 없다. 결국 밥을 거의 다 남기고 영화나 봐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화질이 이렇게 안 좋을 줄 몰랐다. 음 자막이 잘 안 보이는 수준? 뭐 미련은 없다. 딱히 볼만한 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이정도 하고 나니 정말 할 일이 없어졌다. 와이파이의 소중함이란..

 대충 시간을 보내다 보니 비행기의 불이 꺼졌다. 졸린 시간이라 잠을 청했는데 비행기 안이 너무 건조한 게 문제였다. 목은 아프고 코는 막히고 물을 마셔도 삼키는 순간 다시 건조해졌다. 앉아서 자야 하니 허리도 아프고 불편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게 한참을 뒤척거리니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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