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됐다. 아니... 아침이 된건가? 모르겠다.

핸드폰을 보니 학교 갈 시간이다. 아침이군. 이 비행기는 새벽에 출발해 네덜란드 새벽에 도착하기까지 가는 내내 한 번도 해를 보지 못했다. 내가 지금 아침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유다. 껌껌한 곳에 불만 띵 켜주고 12시간을 갇혀지네니 호랑이가 왜 동굴에서 쑥,마늘 던지고 도망갔는지 알 것 같다. 심히 뛰어내리고 싶다.
 
 나는 깼는데.. 나만 깼나 보다. 여기서 저렇게 자는 게 가능한가? 자고 있는 엄마 얼굴을 괴롭히다 한 소리 듣고 멍하게 있는다. 할 일이 없다. 진심이다 아무것도 할 게 없다. 와이파이만 있었어도…. 비행기에서 안내해주는 모니터 화면만 뚫어지라 쳐다본다. 그리곤 하나도 안 궁금해 보이는 엄마에게 생방송을 해준다. 지금 한국은 몇 시인지, 네덜란드는 몇 시인지, 도착시각은 몇 시고 몇 시간 남았는지 말이다. 나한테 있어서는 정말 중요한 것들이었다.

 착륙까지 2시간 정도를 남겨두고 기내식이 나왔다. 아침은 선택지가 없다. 빵과 버터, 치즈와 간단한 음료. 그리고 달걀과 야채가 치즈와 같이 나오는 게 매인이다. 다행히도 열은 다 내려간 상태였지만 기침이 늘어서 목에서 피맛이 나고 잠도 잘 못 잔 나는 컨디션이 최악이다. 음...그렇다. 이 기내식도 다 먹지 못했다. 절대 다 먹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속만 더부룩한 상태에서 1시간 정도를 남겨두고 비행기는 계속해서 날았다. 지금까지 보내온 11시간보다 남은 1시간이 더욱더 길게 느껴진다. 슬슬 내릴 준비를 하기 위해 짐들을 주섬주섬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쿠궁쿠구구웅’ 하는 소리와 함께 비행기가 지상으로 내려왔다. ‘아, 드디어 내릴 수 있는 건가? 날 빨리 뱉어냈으면 좋겠다.’ 이 생각은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자의 어리석은 생각이다.

 ‘음? 왜 안 내리지? 왜 계속 달리기만 하지?’ 지상으로 내려온 비행기는 덜컹거리는 버스 뒷자리만 못하다. 적어도 난 그랬다. 진심으로 그 상태 그대로라면 별로 먹지도 않은 모든 걸 토해낼 수 있었다. 비행기는 지상에서 그렇게 10분 정도를 미친듯이 달리다 겨우 멈췄다.
 '하.. 살았다.' 나는 몰랐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을 말이다. 엄마와 나는 영어를 아예 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어를 못한다. 여행 가는데 왜 영어 공부를 안했냐고? 그게.. 그러게나 말이다. 왜 하지 않았을까? 음. 그때그때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물론 말 안 해도 안다. 핑계였다. 영어를 너무 하기 싫은 나의 몸부림 정도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다시 돌아오자면 영어를 읽고 말하질 못하니 짐 하나 찾는데도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우리 둘은 공항을 돌아다니다 겨우 입국 심사를 하는 곳을 찾았고, 긴장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통과했다. 다시 짐을 찾기 시작했는데 무리를 놓친 탓에 이미 대부분 사람들은 짐을 찾고 떠난 뒤였다. 남은 건 넓고 텅 빈 공항에 우리 둘. 다리도 아프고 급한대로 의자에 앉아서 유심칩을 먼저 넣기로 했다. 이후 후일담이지만 엄마의 데이터는 한 달 내내 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그렇게 어찌저찌 짐을 찾고 엄마의 지인분을 만나기 위해 공항을 나와 암스테르담 역으로 갔다.

 그 역에서 해마라는 곳을 처음 가봤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다이소 같은 곳이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귀걸이를 샀다. 사실 유럽에서 귀걸이를 많이 살 예정이었지만 유럽에서 산 귀걸이는 이때 산 귀걸이 빼곤 없었다. 한참을 구경하고 있다가 선생님(엄마의 지인)을 만났다.

 우리는 기차를 기다리며 스타벅스에서 잠시 있기로 했다. 나는 한국에서 즐겨 먹던 말차라떼를 시켰고 엄마와 선생님은 커피를 마셨다. 난 한국에서 먹던 말차라떼를 상상하며 한 치의 의심 없이 한 입 호로록 들이켰다. 음..아니었다. 내가 생각한 맛은 이게 아니었다. 나는 한국에서 먹던 달달한 말차라떼를 상상했는데 이곳 말차라떼는 내가 알던 것보다 씁쓸한 맛이 강해 좀 당황스럽다.

 

 가볍게 인증샷을 찍고 선생님이 살고 계신 텍셀섬으로 출발. 텍셀은 네덜란드의 제주도 같은 곳인데 현지인들은 휴가지로 자주 오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아직 잘 알려지지는 않은 곳이라고 한다. 가보니 정말 소소하게 예쁜 가게들이 많고 편안한 느낌이 좋아 꼭 추천해주고 싶다.

 어쨌든 처음 타는 기차에 커다란 짐을 들고 가느라 피곤하고 힘들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처음 보는 외국인들이 하나같이 키가 큰 모습이 신기하고도 부러웠다. 외국인들이 키가 큰 건 한 달을 지내도 익숙해지지 않더라. 다시 열차를 타고 예쁜 풍경을 보며 한참을 달렸다. 약간의 멀미와 함께 겨우 내렸는데 배를 타야 한다는 사실에 힘이 더 빠졌다. 난 이미 지칠 대로 지쳤는데 말이다. 바람이 거세고 비가 오고 커다란 짐을 들고 다니니 힘이 모두 빠져버린 내 모습은 안 봐도 가관이었을 것이다. 평소 운동 부족에 저질 체력인 내가 오죽했으랴. 다행히 배는 20분 만에 금방 도착했고 내려서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려보니 선생님의 남편인 요한이 버스 역까지 마중을 나왔더라. 선생님과 요한은 몇 년 전에 한국에서 본 적이 있었지만, 그 후론 처음이었다. 선생님은 한국 사람이지만 요한은 외국 사람이라 긴장되기도 했다. 그치만 요한이 친절해서 그런 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고 요한은 나와 엄마에게 우산을 선물해줬다. 그런데 내 우산이 피자마자 뒤집혀서 망가져 버린 게 아닌가. 결국, 모자를 뒤집어쓰고 집에 도착했는데 뒤늦게 요한이 우산을 쿨하게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는 얘기를 듣고 엄마와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조금 걷다 보니 집이 나왔는데 실제로 집이 이층으로 된 건 처음 봐서 너무 신기했다. 우리는 2층에서 지내기로 했는데 짐을 놓고 나서는 긴장이 풀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시차 적응이 아직 안 돼서 버티다 버티다 8시에 잔 것 빼곤 말이다.
 엄마 말로는 그 날 내가 코를 골며 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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