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청년들을 삼포세대라고 부른다. 연애, 결혼, 출산 이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아우르는 말이다. 이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청년들은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녹록치 않은 사회적 구조를 탓한다. 세 가지를 성취하기 위한 기준은 높아진 반면 그 비용을 감당할 만한 경제활동은 매우 제한적으로 허락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성세대는 열심히 노력할 생각은 않고 사회 탓만 하는 청년들이 한심할 뿐이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일보다 자신의 삶이 우선인 태도도 탐탁지 않다. 어느 쪽이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결혼을 “쉽지 않은 일”로 보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그 원인이 사회적 기준과 비용에 대한 부담에 있든, 자신의 삶을 희생해야 하는 부담에 있든 말이다.

그런데 지난 7월 6일 부천시 소사구 송내 2동의 한 놀이터에서는 이런 부담에 얽매이지 않겠노라 선언하는 결혼식이 열렸다. 용기를 낸 주인공들은 이제 갓 서른에 접어든 청년들. 변변한 적금통장 하나 없었다는 그들은 어떻게 만나, 어떻게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이르게 됐을까. 속내가 궁금했다.
 
▲ 김영욱, 함화정 부부

어떻게 만나셨는지 궁금해요.
김영욱(이하 슬리퍼) 우연히 만나게 됐는데요. (다같이 웃음)
함화정(이하 함박) 작년 6월 말쯤, 서울에서 마을활동을 하는 청년들이 모여 현실적인 고민을 나누는 열린포럼에서 만났어요. 그때 같은 테이블에 앉았었죠.
슬리퍼 사실은 마을활동이라는 게 협력을 유발하거나 시도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마을활동 하는 청년들이 모인 그 포럼은 게걸스럽게 명함을 주고받아도 매우 자연스러운 자리였어요. 제가 활동을 너무 열심히 했는지 남은 명함이 2장밖에 없었어요. 함박은 지금이나 그때나 명함을 안 가지고 다니는 성격이었고요. 고민하다가 포럼이 끝나고 헤어질 때쯤 남은 2장을 테이블 위에 놓았는데 엉뚱한 사람들이 다 가져가더라고요. 틀렸구나 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데, 문 밖으로 함박이 지나가는 게 보였어요. 그래서 촬영이 끝나기 무섭게 그쪽으로 동행한 일행을 이끌었죠. 문을 나가니 저 앞에서 함박이 모퉁이를 도는 게 보였어요. 나도 모르게 조금씩 빨리 걸었는데, 동행한 두 명이 둘 다 장신이라 다행히 별 티가 안 났어요. 그러다 함박이 마침 바뀐 신호를 보고 길을 건너는 걸 봤고, 전 일행에게 뛰자며 무작정 뛰기 시작했죠. 애매한 거리였기 때문에 뛰어도 이상할 게 없었어요. 그리고 우연히 또 만난 것처럼 인사하며 동행한 대표 형에게 함박을 인사 시켰죠. 실제로 공동체 생활을 실천하는 사람이니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면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표와 함박이 연락처를 교환하게 하고 나중에 차차 우리가 만드는 행사에 초청하면서 연락처를 알아야겠지 했어요. 그런데 함박이 헤어지고 나서 바로 다른 여러 공동체 정보를 담은 문자를 대표에게 보내왔어요. 근데 그 말투가 너무 특이하다며 대표가 그 문자를 보여줬죠. 요즘 세상에도 이런 말투를 쓰는 사람이 있다고, 너도 한 번 보고 웃으라고. 그때 저는 문자를 보면서 밑의 발신번호를 외워서 제 전화기에 저장했어요. 그 덕에 함박의 메신저에 자동 친구 추가가 됐고, 후에 그걸 본 함박이 저에게 연락을 할 수 있었죠.
함박 저는 그때 당시 이런 상황을 몰랐어요. 저 나름대로 슬에게 호감이 있어서 헤어지고 바로 인터넷을 검색했어요. “맥놀이”라는 단어 하나를 가지고 온갖 정보를 다 캤죠. 별명과 이름, 하는 일, 그리고 인터뷰한 기사도 보게 되었어요. 인권과 관련된 기사였는데 그 글을 읽고 슬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 동네 주민이 결혼식을 구경하고 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한 거네요.
이 질문에 둘은 손사레를 친다. 슬리퍼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고 한다. 눈에 하트뿅뿅이 그려지진 않았다. 오히려 담담했다고 말한다.
“처음 연애 시작하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가고 그러잖아요. 전화도 자주 하고. 근데 그러면서도 옛날 연애할 때처럼 너무 좋아서 설레고 그런 느낌은 아니었어요. 그냥 무덤덤한 확신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딱히 결혼을 결심한 순간도 없었어요. 별 고민도 없었고요. 그냥 이 사람이랑 살겠거니- 이런 느낌.”

팜플렛을 보니 함화정씨는 “결혼 꼭 해야돼?”라는 문구를 쓰셨더라고요.
함박 거창하진 않은데….
슬리퍼 사실 그 문구는 제가 쓰긴 했어요.
함박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어찌 보면 현실도피적인 마음도 있었어요. 이전에 교제했던 분과 교제를 끝내면서 마음이 복잡했거든요. 제가 몸 담은 우리 공동체의 삶의 방식도 그렇고, 지체장애라는 제 몸도 그렇고,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더라고요. 내 존재나 삶의 방식을 한 사람도 아니고,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설명하고 설득해야만 하는 현실이 감당하기 힘들었어요. 마치 잘못한 것처럼요. 그런 과정에서 가족과 가족의 결합, 개인과 개인의 결합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커져 버렸고 자포자기하는 마음도 생겼어요. 사실 제가 지금 이 공동체에서 살기까지 부모님의 허락을 받기가 쉽지 않았어요. 몇 년을 버텨 겨우 제 주관을 지켜냈는데, 다시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이런저런 관계와 어려움이 많더라고요. 꼭 그런 절차에 나를 맞춰야할까 싶었어요. 상처도 많았지만 결혼에 대한 불편함과 귀찮았던 마음이 컸어요.
 
▲ 결혼식 오프닝 박 터트리기. 주민들이 박보다 박을 잡고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이 던졌다는 후일담.

그렇다면 이번에 결혼을 한 건, 큰 용기였겠어요.
함박 슬을 만나면서 살고자 하는 삶의 방향성, 가치관, 신념 이런 것들을 나누다 보니까 잘 맞는 거예요. 내가 굳이 ‘이 사람과 이런 삶을 살고 싶어!’라는 걸 설득하거나, 내 쪽으로 끌어당기지 않아도 나보다 앞서 그런 삶에 대해 바라고 추구하고 있었으니까요. 자연스럽게 ‘괜찮겠다.’라고 마음먹었죠. 그럼에도 결혼은 생각하지 않았어요. ‘연애만 평생하고 살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었죠.
슬리퍼 결혼에 대해서는 서로 호감이 없었어요. 우리 사회에서의 결혼과 관련된 통념들이나, 그것들을 반영한 제도나, 타당한 것보다는 사실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그런 부당한 면이 더 많아 보였거든요. 그럼에도 결혼을 했으니 큰 결심을 했구나- 뭐 이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한 결혼이 그런 일반적인 가치관들을 수용하자고 하는 결혼은 아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결혼을 다른 의미로 해석해보자며 한 결혼이었죠. 당면한 현실로 미루어 볼 때 앞으로는 혈연 너머의 가족공동체를 지향하는 게 옳다- 는 전제 하에 시도한 결혼이었습니다. 혈연으로 엮인 가족을 경시하거나, 혈연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나라는 혈연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가 유례없이 높은 수준으로 발달했던 나라예요. 그것도 상당히 완성도 높은 철학을 바탕으로요. 당연히 그 가치관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그 가치관의 영향 아래에서 자라온 사람이 아직 많습니다. 그런 현실을 함부로 무시하는 건 경솔한 짓이라 생각해요. 놀이터에서 한 결혼식은 무작정 무시하자는 게 아니라, “제 생각은 이렇다.”하는 일종의 제안이나 선언 같은 것이었죠. 그리고 안 믿으시겠지만, 제 나름대로는 결혼의 전통을 지키는 방식이기도 했어요. 제가 사실 좀 보수적이거든요. 대학에서 한국학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전공을 공부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충분한 비판이나 반성을 거치지 않고 옛 것들을 무조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전통을 망치는 행위가 없다고 봐요.

▲ 신랑 신부가 함께 입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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