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결혼식을 생각하신 건가요.
슬리퍼 얼렁뚱땅, 그렇게 된 건데…. 결혼식이 갑자기 잡혔어요. 제 기억으로는 5월 26일인가 27일인가에 결혼식 날짜가 잡혔어요. 그때쯤 제가 집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이 결혼에 대해 굉장히 완고한 반대의사를 전해 들었을 때였는데, 결혼에 대한 의지는 확고하지만 가족은 결혼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어찌할 것이냐-를 두고 회의가 벌어졌죠. 내용을 정리하자면, 가족이 반대하면 결혼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다.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안다. 그렇다면, 어차피 할 결혼이라면, 지금 내부공사중인 집 고쳐지는 김에 날짜 맞춰서 간단히 언약식 같은 거라도 올리고, 일단 거기서 신혼살림을 시작하자. 그렇게 결정됐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7월에 한 게 아니라, 그냥 어차피 가족은 대화를 거부하니 일단 너희들끼리라도 어깨를 기대어라. 그런 의미였죠. 그렇게 뜬금없이 결정되다보니 결혼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사실 별 계획이 없었어요. 처음엔 그냥, 다른 사람 초대할 것 없이 우리끼리 정한수 떠놓고 하는 식으로 하고 말자- 정도의 의견이 나왔죠. 그런데 공동체 입장에서는 그게 안쓰러웠는지 장소를 빌려서 간단하게라도 결혼식처럼 옷이라도 입고 신혼여행도 갔다 오라고 권유하시더군요. 십시일반으로 돕겠다고요. 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그게 아무 의미 없는 일이잖아요. 고작 그렇게 남들 하는 대로 흉내 내자고 이 사단을 내면서 동정 받듯이 결혼을 할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렇게 숨어 하듯이 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무엇보다, 우리가 그런 상황에서 공동체에 대한 의지를 바탕으로 결혼을 한다면 공동체에서 우리를 위로하고 지원해주는 형식이 아니라, 공동체의 주체적인 행사가 되어야 옳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6월 2째 주부턴가 준비해서, 기존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결혼식이 아니라, 곁에서 함께 사는 이들이 함께 축하하고 격려하는 마을잔치 형식의 결혼식을 기획하게 된 거죠.

 
공동체 행사로 결혼식을 진행하신 거군요.
슬리퍼 제 의도는 그랬는데, 얼마나 받아들여졌는지는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한번도 상의를 한 적이 없거든요.
함박 슬의 부모님이 많이 반대하셨죠…. 슬은 공동체적인 삶을 지향했기 때문에 올해 4월부터 여기에 들어왔었어요. 자원봉사 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7월에 3개월 과정이 끝나기도 했고 그후 3년 동안 교육훈련을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때였어요. 그래서 그 시기가 맞아들기도 했고 이 공간(집)도 만들어졌고, 제 어머니는 딸 가진 입장에서 ‘너희가 따로 살고 있긴 하지만 공동체에서 생활한다고 하면 같이 사는 것처럼 본다. 슬의 부모님을 설득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두 사람의 마음이 확고하다면 언약식 정도 하고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슬도 말했지만 저도 돈이 아예 없었어요. 공동체에서는 공동재정으로 살거든요. 돈을 벌어서 혼자 쓰는 게 아니라, 서로 나누고 공유하는 방식으로 돈을 사용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모아 둔 돈이 없었죠.
슬리퍼 과장이 아니라 정말. 통장이 없어요.
함박 네, 아무것도 없어요.
슬리퍼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함박 기존 방식으로 결혼을 끌고 가는 건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 일상적으로 슬과 만나면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웨딩촬영 필요없다, 결혼식장에서 안하고 싶다, 소비적인 결혼은 싫다, 그렇게 툭툭 던졌던 이야기를 이참에 벌려보자는 마음도 있었고. 그런 마음들과 결합해서 돈이 없어서(웃음). 꼭 돈이 있어야만 결혼 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해주는 지인들의 마음, 사람들로 채워지는 결혼식을 바랐던 거예요.
슬리퍼 결혼식하면 웨딩업체에 주로 돈을 많이 쓰잖아요. 그 돈이 너무 아까워서 우리가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함박 마을활동을 하면서 만난 좋은 인연들이 결혼을 하는데 밑바탕이 되었던 거 같아요. 보광0을살이에서 일하고 있는데, 재개발 지역이라서 주인은 나가고 세입자들만 들어와서 살고 있거든요. 마을에 대한 애착심이 없죠. 집값도 싸고 허름해요. 이런 공간을 프리랜서나 작가들이 개인공방을 싸게 얻을 수 있으니까 이곳으로 들어와요. 사진작가, 도예가, PD,예술가가 어우러져 사는 곳이에요. 그 분들이 우리 결혼식을 꾸며준 거죠.
슬리퍼 저도 맥놀이에서 했던 활동이 연극이었어요. 연극에서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이 결혼식에서 처음에 전통혼례식을 연기하잖아요. 그런 기획을 맥놀이에서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하나부터 열까지 친구들을 부려먹었어요.
함박 오해하는 분들도 있긴 했어요. 동영상 촬영하러 오신 PD님이 들고 있던 카메라가 3000만원을 넘는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본 다른 분들은 ‘이게 무슨 소소한 결혼식이냐.’고 말하셨어요. 뭔가 다 돈을 들여서 했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사진도 대단한 사진작가가 아니라 아는 분들이나 친구들이 찍어 준건데….
슬리퍼 돈으로 환산한다면 많이 들어가긴 했을 거 같아요.
 
 
준비기간은 어느 정도 걸렸나요
슬리퍼 실질적으론 3주 정도 걸렸어요. 이왕 하는 거, 분명 엉망이 되겠지만 그래도 일을 벌려보자, 모두 하고 싶은 대로 즐기는 장을 만들자고 시작했는데, 정말 다 자기 마음대로 하더라고요. (웃음) 말하자면 우리를 축하는 것엔 관심 없고 ‘이 기회에 사진 한번 찍어봐야지, 이 기회에 나도 노래 한번 해봐야지.’그런 식이더라고요.
함박 각자가 놀다 갔어요. 다들 각자가 만족하고 떠났죠. 이를테면 앞에 오프닝공연으로 전통혼례극을 준비한 맥놀이는, 맥놀이와 세상과연애하기 멤버들이 모아준 축의금에서 비용을 쓰고 남는 돈을 후원하기로 했는데, 의상 빌리고 남는 돈으로 결혼식 전날 모여 자기들끼리 모여 알아서 술 마시고 놀고 그랬다더군요. 덕분에 따로 인사치레 하는 수고를 덜었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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