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숲 이야기 [고강 선사유적공원]

고강 선사유적공원을 거닐었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길이 아닌, 잘 알지는 못하지만 가봄직한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작은 오솔길로 올라갑니다.

고강 선사유적공원은 조림지도 있고 천연지도 있는 좋은 숲이라고 합니다.
“여긴 숲이 참 좋아요. 숲이 너무 우거져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상당히 좋은 숲입니다.”
오늘은 긴 바지에 반팔을 입고 산책에 나섰습니다. 유영식대표와 김재성 선생님이 걱정하셨죠. 유영식대표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주셨습니다. 벌레 물린데 바르는 약입니다.
곳곳에 키가 훌쩍 큰 나무들이 쓰러져 있습니다. 아까시나무입니다.

“아까시나무는 바람에 취약해요. 엊그제 바람이 세게 불더니 이렇게 넘어졌네요. 예전에 이곳은 공동묘지였어요.”
쓰러진 나무가 길을 막아섰습니다.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이고 나무 밑으로 기어갔습니다.

▲ 바람에 쓰러진 나무. 산책로를 막고 있다.

“이건 고사리 아니에요?”
김재성 선생님이 묻습니다. “고비랍니다. 고사리목이죠. 고사리는 묘지 같은 음지에서 많이 나죠.”라고 유영식대표가 말합니다.

예전에는 무당들이 많이 찾던 숲이기도 하답니다.

묘지를 벗어나자 오른편엔 인공림으로 벚나무와 잣나무가, 왼편은 천연림으로 팥배나무가 우거져있습니다. 팥배나무는 가을에 빨간 열매를 맺어 새들에게 내준다고 합니다. 잎사귀가 동글동글하고 나무도 쭉쭉 곧게 뻗어 있어요.

“봄에는 여기가 벚꽃으로 장관을 이뤄요.”
주변에 칡넝쿨이 많았습니다. 유적을 발굴한 곳이라고 합니다.

“제거해줘야 하는데 그대로 방치된 거예요.”
전에 역사수업을 들을 때 지역유물을 중앙박물관으로 가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교수님이 계셨어요. 우리 사람도 뿌리를 중요하게 여기듯, 유물도 출생지가 중요해요. 유적지를 잃은 유물은 주민번호를 말소당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이 돌들이 선사시대 때 사용됐던 돌들이에요. 이 산 전체가 유적지인데도 관리가 소홀하죠.”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돌입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산에 돌이 없습니다. 돌산이 아니에요.

▲ 유적으로 추정되는 돌들.
▲ 유적으로 추정되는 돌

신갈나무도 보입니다. 신갈나무는 알아서도 좋게 잘 자란답니다. 1.5m남짓 자란 소나무가 있습니다. 잎이 바짝 말라있었습니다. 벚나무 밑에 심어둬서 죽은 거라고 해요.

굴참나무도 있습니다. 강원도에서 너와집을 지을 때 지붕을 이 굴참나무 껍질로 해요.
“여기가 유적을 발굴한 곳입니다. 여기만 발굴한 건 아닌데…. 유물은 가져가고 이곳은 다시 묻었죠.”
풀이 무성합니다. 이곳이 유적이라는 흔적은 경계 띠와 간판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사방에서 발굴됐는데, 여기가 제일 많이 나온 거죠.”
부천시 측에 의하면 1995년 홍수로 등산로에서 유물 일부분이 드러났다고 합니다. 이듬해 1996년부터 2005년까지 한양대학교에서 발굴했습니다.
 
 
“5분 정도 가면 와아- 소리가 나올 거예요.”
시야가 탁 트입니다. 전망대입니다. 부천시는 도시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 드물어요. 김포공항도 보이고 고양시, 그리고 서울 강서구도 볼 수 있었습니다.

 
▲ 고강동 선사유적지 공원에서 볼 수 있는 전경, 멀리 김포공항이 보인다.
 
 
고강동 선사유적공원이 높아서 볼 수 있는 거냐고 물으니, 유영식대표는 저쪽이 낮은 거라며 빙그레 웃으십니다.
김재성 선생님도 부천에 살면서 이런 풍경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유영식대표는 이 숲을 무척 좋아한다고 합니다. 1999년 공동체에서 이곳에 들어와 의자도 만들고 쉼터도 만들고 나무다리도 만들었습니다. 장승도 만들었고요. 곳곳에 손이 가지 않은 데가 없대요. 애정이 생길 수밖에 없겠죠.

▲ 유영식대표와 장승. 한울타리 공동체에서 세운 장승들이다.

차 소리가 시끄러웠습니다. 아래가 경인고속도로라고 합니다. 환삼덩쿨 사이로 단풍잎돼지풀이 눈에 띕니다. 돼지풀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은 곳에서 평소보다 3~4배 많은 꽃가루를 생산한다고 해요. 그래서 시골보다 도시에서 단풍잎돼지풀은 독합니다. 아토피, 비염, 호흡기질환을 유발합니다. 생태계도 교란하고요.

보리수나무가 보입니다. 불교의 창시자 고타마 싯다르타가 보리수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일화가 있지만 그 나무와는 상관이 없답니다. 가끔 시장에서 빨갛고 길쭉한 손톱크기의 열매를 늦봄에 파는데요. 그건 뜰보리수나무의 열매랍니다. 보리수나무 열매는 가을에 익는대요. 산자락에서 주로 만나는 보리수나무 열매는 팥알만 합니다. 그리고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나무는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신성시 하고 있는 보리수라 불리는 보리자나무라고 해요. 열매는 염주를 만듭니다.

▲ 왼쪽부터)뜰보리수나무열매, 보리수나무열매, 보리자나무열매

“고사목(죽은 나무)들을 제거하면 어린나무들이 자라잖아요. 미래목이라고 해요. 얘들이 자라서 숲을 이루는 거죠. 나무가 쓰러진 것을 방치하면 미래목이 자랄 수 있는 공간을 없애는 거예요.”
사람이나 나무나 ‘미래’는 중요해요.

김재성 선생님이 “연리지”라며 가리킵니다. 나무가 자라면서 가지가 붙어 생기는 현상을 연리지라고 하는데요. 정확하게 말하면 이것도 ‘연리지’라고 합니다. “어릴 때 나무가 자라면서 서로 붙는 게 연리지지, 커서 가지만 붙는 게 연리지인가요.” 김재성 선생님은 “어릴 적에 붙어야 연리지, 나이 들어서 붙으면 불륜이지.”라고 말했습니다.

▲ 연리지.

리끼다 소나무는 추운 지방에서 서식합니다. 밀집해서 자라면서 서로 지탱이 돼야 곧고 굵게 자랍니다. 자생력도 강해요. 방풍림처럼 붙어 자라야 힘을 냅니다. 칡넝쿨이 타고 올라가도 죽지 않아요. 하지만 여기는 기후가 맞지 않은 거죠.

▲ 리기다 소나무. 생명력이 강한 리기다 소나무는 종자를 번식시기키 위해 줄기에서도 솔잎을 내보낸다.

“우리 다 왔거든요? 신월동 방면으로 내려 가보죠.”
황토 길입니다. 모기도 거의 없었는데 흙이 이래서였나 봐요. 황토는 점성이 강하기 때문에 빗물을 머금지 못하죠.

▲ 신월동으로 내려가는 황톳길

“토기를 만들 때 사용하죠. 이 흙을 침전해서 마시기도 해요. 황톳길을 조성한다면 참 좋겠어요.”
커다란 나무줄기에 세로 선이 보입니다. “여기는 바람이 셉니다. 나무줄기를 갈라놓을 정도로요. 이런 곳에 크게 자라는 나무를 심으면 안 되는 거죠.”

▲ 바람 때문에 갈라진 나무. 다시 붙어 자라고 있다.

유영식대표는 자연조건이나 기후를 살피고 숲을 조성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숲 언저리에 폭우로 인해 흙이 쓸려간 자국이 상당히 컸습니다. 거센 물살이 그대로 약 1m깊이로 흔적을 남겼는데요. 사방공사를 해놨지만 많은 비가 내린다면 그대로 휩쓸려 갈 것만 같았습니다. 500m 떨어진 곳이 빌라 촌이었고요. 빌라 촌 근처에 미루나무와 메타세콰이어가 우뚝 솟아 있습니다. 미루나무는 2010년 태풍 곤파스의 피해로 넘어졌다고 합니다.

▲ 마을근처에 미루나무가 있다. 미루나무는 비바람에 약하다.
▲ 지난 2010년 태풍으로 토사가 쓸려나간 흔적. 다른 곳에 비해 유독 서늘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던 곳.
▲ 지난 2010년 태풍으로 토사가 쓸려나간 흔적.

갑자기 서늘한 공기가 느껴집니다.
“경인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기류가 이쪽으로 몰려오다가 아파트나 빌라에 가로막혀 나가지를 못하는 거죠. 그게 돌아서 이 숲 언저리를 치는 겁니다. 그래서 위험하다고요.”

▲ 측백나무는 방풍림으로 좋다. 놀이터 주변에 측백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놀이터가 있습니다. 도시 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놀이터가 아닙니다. 잔디같이 작은 풀들이 자라있고 측백나무 울타리가 있습니다. 아스팔트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자연과 어우러진 놀이터는 편안함을 주었습니다.

▲ 칡넝쿨이 많은 곳엔 말벌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숲길을 다시 올라와 반대방향으로 내려왔습니다. 칡넝쿨이 굉장히 많았는데요. 칡넝쿨의 보라색 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말벌들이 왕성하게 활동한다고 합니다.

▲ 산끝 언저리에서 자라는 미루나무, 비가 들이붓는다면 위험할 수 있다.

약 1시간 30분가량 숲길을 걸었지만 피곤하지 않았어요. 그건 아마도 숲이 주는 치유력과 유영식대표의 재밌는 입담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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