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의 예술가 6

콩나물 신문은 부천시의 유네스코 문학 창의 도시 지정 3주년 및 문화체육관광부 ‘2020 문화도시’ 지정을 기념하여 <부천의 예술가>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부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각 분야의 명망 있는 예술가를 소개하는 이번 연재를 통해 부천 시민의 자긍심과 문화도시 부천의 위상이 한층 높아지기를 기대합니다.

  바야흐로 트로트 전성시대다. 얼마 전 끝난 모 종편 채널의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이 시청률 30%대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웠고, 마지막 결선 대국민 문자투표에서는 무려 770만 개의 문자 폭주로 서버가 다운되는 초대형 방송 사고가 발생할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트로트에 울고 트로트에 우는, 트로트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그간 세계 각국에서 한류열풍을 일으킨 케이팝의 인기에 밀려 영원히 가요계의 변방으로 밀려날 줄 알았던 트로트의 화려한 부활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 대중의 외면 속에서 근근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 국악의 현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우리 국악도 언젠가 저 트로트처럼 화려하게 부활할 날이 오기는 올 것인가?

경기민요와 서도소리의 대가 김혜란, 이은관 명창을 사사하다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묵묵히 우리 민요의 계승과 발전에 힘쓰는 국악인이 우리 부천에 있다. 바로 중요무형문화재 29호(서도소리) 이수자인 국악인 신영랑(신영랑 국악원 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 즉 서도 지역에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민요나 잡가 등을 말한다. 서울·경기 지방에 전승되어 오는 경기민요에 비해 서도소리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과거 육칠십년대 “왔구나 왔소이다. 왔소이다. 불쌍히 죽어 황천 갔던 배뱅이 혼이 혼신 평양 사는 박수무당의 몸을 빌고 입을 빌려 오늘에야 왔구나.”라는 배뱅이굿으로 전국민적 인기를 얻었던 이은관 명창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금방 서도소리가 무엇인지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그렇다고 서도소리에 배뱅이굿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심가 · 난봉가 · 긴아리 · 자진아리와 같은 민요, 초한가 · 공명가와 같은 잡가, 그밖에도 입창 · 송서 · 시창에 해당하는 여러 소리가 있다.

  신영랑 원장은 중요무형문화재 29호 문화재인 이은관 명창에게 서도소리를 배웠다. 물론 처음부터 서도소리를 배웠던 것은 아니다. 그녀의 고향은 ‘정선아라리’로 유명한 강원도 정선이다. 아버지는 정선아라리, 목도소리, 괭이소리 등 그 지역의 전승 민요에 특별한 재능을 가지신 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그것이 자연히 소리와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20세가 되어 경기민요를 배우게 되었고 현재 경기민요 전수조교인 김혜란 선생을 사사했다. 김혜란 선생은 유명 국악인 안비취 명창의 제자이다.

지금 50대 후반의 나이에도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신영랑 원장의 학구열은 젊은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경기민요에 더하여 서도소리에도 관심을 가진 신영랑 원장은 이은관 명창을 스승으로 모시고 맹렬한 수련을 거쳐 지난 2009년 마침내 이수자 자격을 획득했다. 국가무형문화재는 최상위에 문화재가 있고, 그 아래, 전수 조교, 이수자, 전수자의 순으로 되어 있다. 이수자와 전수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적어도 5년 이상의 교육을 받고 시험을 통과해야만 이수자가 될 수 있다. 요즘 각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국악 교실 강사는 적어도 이수자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대부분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전수자가 이수자보다 더 상위 레벨인 줄 아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잊혀져 가는 소리, 그러나 반드시 이어가야 할 소리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산 예방을 위해 벌써 한 달 이상 문을 닫고 있는 국악원에서 신영랑 원장을 만났다. 텅 빈 교실 한가운데 장고가 놓여 있고 전면 좌·우측 벽면에 김혜란, 이은관 두 명창의 사진이 걸려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상장과 상패를 보며 지난 15년간 국악원을 운영해온 그녀의 열정과 노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국악원 운영은 어렵다고 한다. 경기민요는 그나마 배우려는 사람이 좀 있지만, 서도소리는 배우기가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수강자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물론 서도소리의 매력을 아는 사람은 멀리 지방에서도 찾아오기도 한다.

▲ 대한민국 캄보디아 문화교류 콘서트 프놈펜 공연에서 열창하고 있는 신영랑 원장.

  “수강료 받아서는 솔직히 국악원 운영비도 안 나와요.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죠. 특히 지금 북한의 평안도나 함경도에서는 서도소리가 다 사라지고 없다는데 그나마 남쪽에 전해지는 소리마저 배우려는 학생들이 점점 줄고 있으니, 돈보다도 명맥이 끊길까 봐 더 걱정입니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트로트 열풍을 떠올리며 텅 빈 교실을 둘러보고 있으려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정책 당국자들도 말로는 우리 소리라고 하면서 국악 진흥을 위해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이대로 영영 우리 소리가 사라지고 말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특히 우리 부천은 겉으로는 문화도시를 표방하면서도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열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지원책에서는 오히려 타 시도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진정, 우리 소리, 우리 국악을 부흥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예를 들어 부천 한옥마을이나 각 동별 어울마당에 상설 공연장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경기민요, 서도소리, 남도창 등 시민들이 우리 소리를 접할 장소를 많이 만들어주는 것도 그 한 방법이라고 본다.

국악인 신영랑의 꿈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신영랑 원장은 서도소리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2018년부터 연 1회 ‘신영랑의 북녘 소리’라는 무대를 꾸려가고 있고 또 해마다 한두 번에 걸쳐 해외공연도 다닌다. 캄보디아 프놈펜, 중국 연변, 미국 LA, 샌디에고, 멕시코 티후아나 등 많은 지역을 누볐다.

▲ 제2회 신영랑의 북녘소리 공연후 참가자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신영랑 원장.

 

▲ 신영랑의 북녘소리 공연 장면.

“멕시코 티후아나에 갔을 때 일이에요. 공연장에 분명 한국 사람은 아닌데 한복을 입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이더라고요. 알고 보니 이민자 3세들이었어요. 아리랑을 부를 때 목청을 높여 따라 부르는 걸 보고 눈물이 났습니다. 나중에는 함께 손잡고 춤도 추었어요. 아리랑 한 곡으로 머나먼 이국땅에서 하나가 될 수 있었으니 우리 소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신영랑 원장은 홍성 가무악 전국국악경연대회 종합대상(국회의장상), 2019 한국국악대상 등 수많은 수상 실적과 함께 현재 한국국악협회 부천시 지부장, 전통소리진흥회 부이사장, 한국국악협회 서도소리분과대위원 등 주요 직책을 맡아 열정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 2019국악대상 시상식 후 수상자와 함께.

  “석사과정을 마치면 곧이어서 박사과정에 도전할 생각이에요. 또 그리고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중 ‘이북문화재’ 분들이 계시는데, 서도소리가 곧 이북소리이니까 최종적으로는 그 이북문화재 중 한 사람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해야죠.”

  부디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져서 언젠가 통일이 되는 그날, 북녘땅 곳곳에서 신영랑의 서도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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