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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은 귀, 들을 귀도서: 아무리 얘기해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마영신 만화
남태일 조합원 (언덕위광장작은도서관 광장지기)  |  kongpap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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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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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텀블러가 망가져서 책이 다 젖어 버렸다. 아.. 진짜! 구입한 지 얼마 안 된 새 책이고, 아직 도서관에 등록도 안한 책인데, 진짜 속상하다.”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짓을 하면 탈이 난다. 냉장고에 못 보던 더치커피가 있기에 텀블러에 가득 담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언덕을 올라 도서관에 도착해서 숨을 돌리며 커피 한 모금을 마시려고 가방을 열어보니 텀블러 뚜껑이 열린 채 뒤집어져 있다.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 내 목으로 넘어갔어야 할 커피를 가방에 있던 책과 서류가 잔뜩 마셔버린 채 뒤틀리고 부푼 모습으로 나를 원망하고 있다. 괘씸한 텀블러를 분리수거함에 던져 버리고 책과 책 사이에 종이를 끼워 말린다. 허나 말라도 종이가 울고, 진한 얼룩이 생겼다.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는데 책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울고 얼룩진 책, ‘아무리 얘기해도’는 광주 민주화 항쟁을 기록한 책으로 창비 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민주화 운동의 계보를 잊는 현대사를 만화로 그린 빗창(제주4.3), 사일구(4.19혁명), 1987 그날(6.10 민주화 항쟁)과 함께 출판된 책으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이다. 올해가 광주 민주화 항쟁 40주년이기에 시기도 참 적절하다 싶다. 더구나 40주년을 기념하며 여러 행사가 기획됐으나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이 취소되고 본 행사도 축소된 상황이다. 광주의 희생이라는 터 위에서 민주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할 역사이고 제대로 지켜내고 계승할 역사이기에 정갈한 만화로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아무리 얘기해도’ 과하지 않지만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 않는 닫은 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들을 귀가 있는 분들이 있기에 ‘아무리 얘기해도’ 결코 과하지 않다. 보통의 역사 만화는 그 당시 살아낸 실존 인물이나 가상의 주인공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허나 이 만화의 주인공은 40년 전 기억을 떠올리지 않는다. 아니 떠올릴 수 없다. 40년 전 광주를 경험한 사람이 아니라 민주 사회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이후에 태어난 학생이기 때문이다. 80년의 광주를 잘 알지 못하는 친구가 아니라 오히려 왜곡된 주장에 귀를 열고, 일베 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친구다. 진실을 애써 외면하며 귀를 닫아 버린 친구가 그 주인공이다.

사실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극우 세력은 광주 민주화 항쟁을 ‘북한군이 개입하여 일으킨 폭동’이라 주장한다. 증거는 80년 광주에서 찍은 사진과 북한군의 사진을 비교하며 ‘얼굴이 비슷하다’ 주장하는 소위 ‘광수 사진’을 제시한다. 광주 시민이 자신의 사진이라고 증언함에도 불구하고 닫은 귀는 도통 열리지 않는다. 닭꼬치 파는 노점상 아저씨가 알려 준 고급 정보 ‘광수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의혹을 제기하는 학급 반장이 주인공이다. 교실에서 반장의 행동을 본 선생님께서 80년 광주를 설명하는 것으로 만화는 시작한다.

   
 

10.26 사건과 전두환의 12.12 군사 반란, 이후 신군부는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계엄령을 내리자 학생들의 시위가 일어난다. 이에 전두환 신군부는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를 간첩과 북한의 선동으로 일어난 폭동으로 선전하고 언론을 통제하면서 잔혹한 진압작전을 벌인다. 이에 시민들까지 힘을 합쳐 민주화를 요구하지만 전두환의 신군부는 무력으로 민주화 요구를 짓밟아 버린다. 전두환 신군부의 만행에 희생된 분들을 헤아릴 수 없다. 그 만행의 결과는 40년이 지난 오늘도 몸과 마음에 새겨져 고통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원흉인 전두환은 살아도 너무나 잘 살고 있는데 말이다.

   
 

현대사에서 5월은 위대한 변곡점이 있는 혁명의 달이다. 전세계적으로 현대 문화를 바꿔 놓은 68혁명이 있고, 한국의 정치 민주화를 이끈 5.18민주화항쟁 모두가 5월이다. 68혁명은 유럽의 자부심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5월, 광주도 그렇게 기억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말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진실을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는 사실이다. 명백한 증거와 증언 앞에서조차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조롱하고 비웃는 사람들을 어찌할 것인가? 진실을 듣지 않기로 결심한 분들, 진실을 보지 않기로 결단한 분들에게 광주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무엇일까? 쏟아진 커피로 울고 얼룩진 책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너무 안타깝고 무겁고 슬프다. 그리고 희생된 분들에 한없이 미안하고 죄송하다. 더 늦기 전에 광주에 용서를 구하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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