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위험의 외주화금지

수십개의 우주가 사라졌습니다.

예고도 없이. 수십명의 노동자가 퇴근하지 못하고 고통속에 떠났습니다. 다녀올께 짧은 인사가 다시는 들을 수 없는 마지막이 될 줄이야, 남겨진 가족에게 세상은 끔찍한 고통으로 남았습니다.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 원통하고 원통합니다.

지난 4월 29일 경기도 이천의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건설현장에서 벌어진 산재참사로 38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시커먼 연기로 뒤덮인 사고현장,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대피할 여유도 없었다는 현장의 증언, 너무나 끔찍합니다. 뉴스 속보로 전해진 참사 소식에 전국민은 가슴아파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일이 또 일어났을까? 관계당국은 원인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고의 원인을 되짚어가니 분노가 치밀어 올라옵니다.

이번 사건은 전형적인 인재입니다.

노동자의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시 하는 한국의 후진적인 경제구조가 사건의 범인입니다. 데자뷰인 듯. 1998년 27명이 죽임을 당했던 부산 냉동 창고 사고, 2008년 1월 이천에서 40명의 노동자들이 죽어갔던 ㈜코리아2000의 냉동 창고 산재사고와 쌍둥이 사고입니다. 사고의 원인도 판박이입니다. 인화성 물질이 가득한 밀폐된 공간에서 발생한 화재로 순식간에 벌어졌습니다. 지켜져야 할 안전 규정은 지켜지지 않았고, 무분별한 하도급으로 절대 동시에 이뤄지면 안되는 작업들이 아무런 통제없이 동시에 이루어졌습니다. 유증기가 발생하여 화재위험이 높은 작업과 불꽃이 튀는 용접작업이 어찌 동시에 이루어 진다는 말입니까?

공기를 단축해서 이윤을 남기기 위해 벌어진 일입니다.

위험을 안고서, 법을 어기면서 일을 해서 얻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설사 무슨일이 일어나도 처벌이 미약합니다. 40명이 사망했던 2008년 코리아2000 사고때 벌금이 고작 2,000만원 밖에 안되었다고 합니다. 어쩌다 재수없이 사고가 발생하고 손해도 생겼지만 회사는 끄떡없습니다. 말도 안되는 이런 모습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모습입니다. 게다가 이런 끔찍한 사고가 아니었으면 감추어진 채 누구도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또 넘어갔을 수도 있는 그런 문제입니다.
 
사고가 벌어지고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으니 언론도 열심히 기사를 써 댑니다.

다만 얼마나 관심이 이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사건의 원인도 어떻게든 찾아낼 것이고 누군가는 처벌을 받을것 입니다. 그러나 앞선 사건들을 살펴보면 몇명의 책임자와 실무자가 책임을 뒤집어쓰고 또 그렇게 최대한 조용히 마무리 하려고 하지 않을까 걱정 스럽습니다. 본질은 그대로 둔 채, 꼬리부분만 잘라내듯이.
 
그러나 이번사건은 그렇게 끝나서는 안 될 것 입니다.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이 자본의 이익보다 뒤로 밀리는 근본 원인에 대한 문제제기와 제도의 개선이 뒤따라야 할 것 입니다. 사건은 단순히 안전규정을 지키지않은 관리자, 작업자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싼값에 하청으로, 또 다시 하청으로 떠넘기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안전에 대한 책임은 아주 쉽게 제껴지고, 아래로 전가되어 버립니다. 실제로 최근에 벌어진 산재 사고의 피해자들을 추적해 보면 정규직은 별로 없고, 거의 대부분이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위험은 방지 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것이 아니라 떠넘겨집니다.

위험이 손쉽게 외주화 되는 이런 현실도 다단계 하도급이 만연한 구조의 문제입니다. 진정으로 재발을 방지 하려면 이런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중층으로 쌓고, 그 안에서 승승장구 하고있는 건설회사에 형사적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노동계에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안전을 소홀이 해 사고가 발생하면 회사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불이익도 지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런 사고는 또다시 반복될 것입니다.
   
더이상 안전은 후순위로 밀려나서는 안됩니다.

안전이 무시된다면 생명은 단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비용을 어떻게 할 거냐?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제는 변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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