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어머니 이야기

내 어린시절의 명절은 유쾌하지 않았다. 늘 엄마는 바빴고, 사람들은 우리집으로 몰려들었다. 함께 모여 있으면서도 대화주제가 달라서 긴장을 놓치 못했다. 그때만큼 내집이 낯설게 느껴졌던 때가 없었다. 먼 사촌들이 불편하기만 했다.
내가 투덜거리며 전을 부치고 있노라면, 엄마는 할머니 몰래 오양맛살 하나를 챙겨주셨다. 오양맛살과 꽃 어묵은 시골에서는 귀한 재료였다.
치솟는 물가, 늘 제자리 걸음인 월급. 명절 일주일 전부터 재료를 사 나르던 엄마의 그늘진 얼굴...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로 명절을 맞이한 독거노인을 위해, 따끈따끈한 전과 과일을 대접하던 엄마가 잊혀지지 않는다. 먹을 것이 풍족하진 않았지만 나누는 게 흔했던 시절이다.
이번 명절은 38년 만에 이르게 돌아온 추석이라고 한다. 이웃들은 어떤 추석을 그리고 있는지 궁금했다.


▲ 이경애씨
처음 이경애씨에게 가족을 이야기해달라고 했을 때, “가족에 대해 할 말이 없어요.”라며 이경애씨는 겸연쩍게 웃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족을 이야기하는 내내, 활짝 웃기도 하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경애씨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이경애 우리집은 저와 남편, 아들 둘이 있어요. 특별하지 않게 그냥 지켜봐주는 사람들? 제가 남편과 아들들에게 유별나게 하지 않아요. 풀어놓는 편이에요. 우리 각자 네명의 삶이 있는데, 큰 울타리로 보는 거죠. 네귀퉁이에서 네그루의 나무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렇지 않았죠.(웃음) 첫째 아들(종호)이 자랄 때만 해도 제가 생각하는데로 아이가 커야돼고, 남편도 제 생각대로 움직이려고 했었죠. 종호가 그 틈에서 자아가 커졌어요.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니고 자퇴를 했어요. 부딪히기도 많이 부딪혔죠. 자녀는 내 소유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아이만 성장하는 게 아니라 부모인 제 자신도 같이 성장하게 되더라고요.
 
‘소유물이 아니다.’라고 느끼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첫째 아들이 자퇴하고서 검정고시로 대학가는 법을 찾더라고요. 처음 다녔던 대학도 자신과 맞지 않아서 자퇴했어요. 자신이 원하는 과에 가서도 공부에 몰입하기보다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거예요. 그런 걸 보면서 ‘그게 종호에게는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공존하기 힘든 아이예요.
 
평소 이경애씨와 아들 사이의 관계는 어떤가요.
첫째 아들과 저는 서로 경쟁관계예요. 둘째 아들은 군대에 가 있잖아요. 첫째 아들은 23살이에요. 우리는 서로 지켜보고 있어요. 라이벌이라고 할까요. 첫째 아들에게 ‘너는 네가 할 일을 하는 대신, 말 한 것에 책임을 져라.’고 얘기해요.
 
군대 간 첫째 아들하고는 어떤가요.
첫째 아들과는 다르게 저한테 순종적이에요. 좋은 것 같진 않은데...(웃음) 저는 첫째 아들처럼 자아가 컸으면 좋겠어요.
 
둘째 아들이, 첫째 아들처럼 진취적이었으면 하는 건가요.
우리가 네명이잖아요. 네그루의 크키가 비슷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첫째 아들과 제가 그늘을 만들고 있는 거 같아요. 우리 자아가 더 큰 거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욕심도 많은 반면에 남편과 둘째 아들은 수동적이에요.
 
첫째 아들과 이경애씨가 닮았고, 둘째 아들과 이경애씨의 남편이 닮았나봐요.
맞아요. 첫째 아들과 제가 친구같고 둘째 아들과 남편이 친해요.

둘째 아들은 언제 군에 입대했나요.
2014년 6월 10일에 친구랑 동반입대 했어요. 의정부 306부대에서 5주간 훈련하고 파주에 자대배치를 받은 상황이에요.
 
동반입대하면 최전방으로 배치받지 않나요?
맞아요. 지원해서 가는데도 3번이나 떨어졌어요.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이것도 사회의 흐름같아요. 어른들이 그런 말 하잖아요.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방황하는 청년들을 보면 ‘군대나 다녀와.’라고. 그런데 국가에서는 포화상태인 거죠.
 
아들을 군대에 보낼 때 어떤 맘이었는지 궁금해요.
첫째 아들은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어요. 어깨 탈골이 심하기도 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흐름이 깨져버리니까 고심하더라고요. 둘째 아들이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에 눈물을 보이더라고요. 눈물을 흘리는 건 아니고 눈시울이 붉어진 정도... 둘째 아들도 걱정되니까 조그만한 수첩에 연락처를 다 적어서 저한테 주더라고요. 그걸 못보겠더라고요. ‘왜 군대를 보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고. 1주일도 안돼서 둘째 아들 개인물품이 왔어요. 훈련소에 입소할 때 아무것도 안가져갔거든요. 그때 입고 간 옷과 신발이 왔는데, 저는 울지 않았어요. 엄마가 걱정을 많이 하면 아이도 걱정을 많이 하게 되니까, 안하는 거죠. 짠하긴 했어요.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을 때는 면회가 안돼요. 5주 훈련이 끝난 뒤 면회를 갔는데 아이가 경직돼 있으니까 걱정했어요.
 
둘째 아들과 떨어져 지낸 기간 중, 가장 긴 시간이겠어요.
그렇죠. 외국여행은 보내봤어도 보름 이상은 보낸 적이 없어요. 훈련기간이 끝난 뒤 자대배치 후 연락이 와야하는데 2주일 넘게 연락이 오지 않았어요. 걱정되는 거죠. 들리는 소문으로는 전화할 때 암호를 정해야한다고 하더라고요. 혼자 못 움직여요. 꼭 3인이나 4인 조로 움직이는 거예요. 매점갈 때도, 화장실 갈 때도 그렇고.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다고 말할 수도 있잖아요. 면회가서 그 모습을 보니까 착찹하더라고요. 나라에 봉사하러 간 아이들인데 감시하고 경계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윤일병사건 이후 대대장이랑 사단장으로부터 편지가 왔었어요. 걱정하지 말라고. 부모로서는 형식적으로 느껴졌지만 어쩌겠어요, 믿어야죠. 둘째 아들은 힘들어도 주변에 힘들다고 말못하는 아이거든요. 그래서 답답하고 걱정되죠.
연락이 왔는데, 둘째 아들이 저를 다독여주더라고요. ‘엄마, 총도 잘쏘고 뭐도 잘해서 포상휴가 받았어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말 듣자마자 저는, ‘그런거 잘하지 마.’라고 말했죠. 그런거 잘하면 어디로 뽑힌다고 하니까 저는 싫은 거죠. 마음이 탁 놓이지 않아요. 사실 저는 아이들을 내려놓고 키우는데 제가 지금까지 지켜본 둘째 아들의 삶 중 가장 걱정되는 기간이에요. 제대할 때가지 그럴 거 같아요.
 
이경애씨에게 군대는 어떤 느낌인까요.
제가 느끼기에 군대는 살아남기위해 눈치를 보게하는 집단이란 생각이 들어요. 저부터도 그러잖아요. 포상휴가 받았다고 아들이 자랑하는데 잘하지 말라고 말하잖아요. 잘했다고 칭찬할 수가 없더라고요. 군대에서 잘했다고 하니까 좋게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튀지 않았으면 좋겠고. 제가 이렇게 말하면서도 이게 뭔지 싶어요.
 
윤일병 사건 등 군대 내 인권문제가 대두되고 있어요. 이런 기사를 볼 때 어떤가요.
일부러 안보려고 했어요.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팠거든요. 만연된 거잖아요, 이런 일들이. 만연돼 있는데 그런 일이 터질 때만 주먹구구식으로 마무리하고 안바뀌잖아요. 아무리 군인이라고 해도 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야 하는 건데, 도구로 생각하고 소모품으로 생각해서는 안되는 거죠. 기계 조립품처럼 취급해서는 안되는 거예요.
 
군인이라는 건 하나의 직책이지, 본질은 사람이잖아요.
맞아요. 하나하나 얼마나 귀한 목숨이에요. 그런데 어느 목숨은 귀하고, 어느 목숨은 천하다고 여긴다? 그런 권리가 있나요?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군대를 다녀온 청년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군대가 변해야하는 시기인 거 같아요.
요즘엔 그런다고 해요. 옛날엔 군대 안 갔다온게 흠이었는데, 요즘은 군대 다녀온 게 흠이라는 거예요. 군대 안갔다온 애들이 군대 다녀온 애들한테 ‘너네는 능력이 되지 않아서 군대 가는 거야.’라고 말한데요. 우리 둘째 아들이 저랑 제 남편, 첫째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형에게 그런 말을 적었대요. ‘형, 군대 안 올 수 있으면 오지마.’라고. 형하고는 맞지 않은 곳 같다면서 말이에요. 오죽하면 그런 말을 하겠어요.

이번 추석은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나요.
마음이 편치 않죠. 추석을 앞두고 훈련을 해야하기 때문에 2주간 면회금지래요. 면회는 군대 내에서 한달에 한번씩 하는 게 불문율이래요. 8월 첫째주에 연락을 하고 면회를 가겠다고 하니까, 둘째 아들 준호가 오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둘째주에 미국에 가는 친구들이 면회를 오는데 엄마가 오면 면회가 연달아 되니까 불편하다고 했어요. 저는 그런 거 무시하고 면회를 갔죠.(웃음) 그랬더니 준호가 경직돼서 저를 따라오는 거예요. 얘가 또 혼나는 건 아닌가 조마조마했어요. 준호가 하는 말이 ‘엄마, 이번 달만 나를 보러 오는 게 벌써 두 번이고 친구들까지 오면 세 번이에요. 다른 동기들에게 미안해요.’라고 하더라고요.
군대에 있는 동안 강해지는 시기라고 믿고 싶은게 부모마음이에요. 하지만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렇지 않으니까... 그런 믿음에 대한 배반을 하는 일들이 벌어지니까.

추석 때 가족들과 모이잖아요. 어떻게 보내나요.
시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요. 제가 맏며느리거든요. 전 부치고 설거지 하는 기억밖에 없어요. 예전에는 시골에 가면 기본이 20명에서 30명이 한꺼번에 식사를 했어요.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 그 가족... 그릇이 너무 많아서 설거지하다가 쓰러진 적도 있어요. 요즘은 그나마 나아졌죠. 시아버님은 형제들이 모여서 함께 보내는 걸 좋아 하시지만 제 입장에서는 힘들죠.(웃음)
둘째 아들과 명절 때 떨어져 지내는 건 처음이에요. 추석 때 뭘 먹을는지...
 
둘째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참고 인내하라는 말은 못하겠더라고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못하겠더라고요. 너무 약삭빨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군대라는 곳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을 배우는 곳이기도 하잖아요. 뭔가 빨리 하지 않으면 죽고, 도태되면 치이고 따(따돌림)를 당할 거 같고. (군대) '이게 사회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