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에서 온 샤하자드

중동 롯데백화점 근처 정류장에서 샨을 알게 되었다. 악세사리를 판매하고 있던 샨(35)은 내게 친구가 되고 싶다며 했고 한글 쓰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때부터 연락하며 지내게 됐다. 매일매일 안부를 묻는 샨에게 소홀하게 대할 때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는 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롯데백화점 근처에 볼 일이 있어 갈 때면, 샨에게 들르곤 했다.

그랬던 샨이 궁금해졌다.

샨에게 인터뷰를 부탁했더니, 샨은 “박새로미, 커리 좋아해요? 우리 인터뷰하면서 커리 먹어요.”란다. 그러면서 집에 초대했다. 나는 “우리는 친한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집에 가기 불편해요.”라고 거절했다. 그래서 만난 곳은 중앙공원이었다. 친구와 함께 샨을 만나러 갔다.

샨은 빨간 티셔츠에 노란 스쿠터를 타고 왔다. “박새로미 때문에 나 너무 힘들었어요.”라며 바리바리 싸온 짐들을 푼다. 인도식 커리, 난(밀가루로 만든 인도 전통 빵), 과일, 과자, 음료수 등등. 아침 일찍 일어나 장을 보고 준비했다면서 툴툴댄다.

샨의 본명은 샤하자드(Shahzad). 사람들이 본명을 어려워해서 영어이름 샨(Shan)을 많이 쓴다고 한다. 일하는 곳 근처 아주머니들은 샤니라는 애칭으로 부른다고 했다. 샨도 샤니라고 불리는 게 좋다고 한다.

샨이 태어난 곳은 파키스탄이다. 그는 엄마, 남동생 2명과 여동생 2명이 있다고 했다.
“아빠는 7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아빠가 돌아가실 때 저 거기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해외를 동경했고, 20살이 되자 세계 이곳저곳을 다녔다고 했다. 일본, 중국, 두바이,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폴에서 짧게는 1주일을 길게는 한달을 지냈다고 한다.

“한국 더위는 덥지 않아요. 파키스탄은 50도까지 오르는데, 죽는 사람이 많아요.”
이번 여름을 대수롭지 않게 보냈다는 샨은 1년에 한번씩 고향에 다녀온다고 했다. 11월에서 1월까지 석달을 고향에서 보낸다.

가족이 보고 싶지 않냐는 물음엔 “Skype(무료화상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얼굴을 봐요.”라고 했다. 샨에게 가족은 착하고 똑똑한 사람들이다. 낯선 사람에게 다정다감하고 친절하다고 했다.
“내가 아까, 박새로미 우리집 오라고 했잖아요. 파키스탄에서는 친구를 집에 초대하는 게 일상이에요. 명절 때도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어울려 놀아요. 이웃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그런데 한국은 가족들끼리만 놀아요. 저와 5년을 함께 일했던 한국 친구가 있어요. 추석으로 5일을 쉰다면 5일 내도록 저한테 연락을 안해요. 그럴 때 다르다는 걸 느껴요.”

혈연중심인 한국과 달리 명절에도 파키스탄은 이웃들과 어울려 지낸다고 한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나는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보다, 지방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연락하기가 어려웠을 거예요.”라고 두둔했다.

추석에 외국인 친구들과 보낼 거라고 말하는 샨을 보며, ‘뿌리’와 ‘문화’란 무엇인지 물음표가 붙었다.

 
서남아시아에 있는 나라로, 1906년 영국 통치하에서 인도무슬림연맹이 조직되어 이슬람 국가 독립을 도모하였다. 1947년 8월 영국의 지배를 벗어나, 이슬람권인 동·서 파키스탄이 힌두권인 인도와 함께 영국연방의 자치령으로 각각 분리 독립하였다. 1956년에는 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정식명칭은 파키스탄 이슬람공화국(Islamic Republic of Pakistan)이다. 서쪽으로 이란·아프가니스탄, 북쪽으로 힌두쿠시·카라코람의 양 산맥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중국, 동쪽으로 인도와 국경을 접하고, 남쪽으로는 아라비아해(海)에 면한다. 1971년에는 동(東)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분리 독립하였고, 독립 당시부터 카슈미르 지역을 둘러싸고 인도와 영토분쟁을 벌여왔다. 국명은 우르드어(語)로 '청정한 나라'라는 뜻으로, 영국 식민 시절에 이슬람교도의 이익 옹호와 이슬람교 국가 건설을 도모했던 분리독립운동의 명칭이기도 하다. 행정구역은 4개주(province), 1개 자치주(territory), 1개 수도주(capital territory)로 되어 있다. 

파키스탄의 사회

파키스탄의 농촌에는 대토지소유제도가 뿌리깊게 남아 있으며 소수의 지주를 제외하면 주민의 대부분은 소작인이다. 이와 같은 사회구조를 반영하여 공업이나 금융·상업부문에서도 22재벌로 불리는 대자본가들이 많은 경제수단을 지배하고 있다. 민족·언어구성은 크게 나누어 4종으로 구분된다. 북서 변경지방에서 쓰이는 파탄족(族)의 파슈토어(語), 그리고 펀자브 지방 신족의 펀자브어, 신드 지방의 신드어, 발루치스탄 지방의 발루치어 등이다. 전에는 영어가 공용어로서 사용되어왔으나 1972년 이후부터 우르두어가 공용어가 되었다.

국민의 97%를 차지하는 이슬람교는 국교로서 사회문화는 물론 정치, 경제, 법률에까지 크게 영향을 미치며, 대통령 하크는 1977년 집권 이래 파키스탄의 이슬람교화에 역점을 두고 정책을 펴나갔다. 파키스탄에서는 신앙고백, 희사, 예배, 금식, 성지순례의 이슬람교도 5대 의무가 모든 가치기준의 척도가 된다. 

지아 대통령은 1977년 집권 이래 회교식 신체절단 및 태형 등과 같은 형벌(Hadood) 시행, 회교 재판소 운영, 부유층이 극빈자를 위해 제공하는 자선형태의 조세(Zakat), 무이자 금융제도(Ushar) 등을 엄격히 실시하여 국가의 회교화에 역점을 두었다. 2002년 10월 총선이후 일부 지역에서 회교정당연합(MMA)의 의회진출이 확대되어 회교화정책 추진 움직임이 목격되었으나 현 무샤라프 대통령은 온건 이슬람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2006년에는 여성보호를 위한 개혁 입법 등 사회개혁을 착수했다. 그러나 하루 5회 기도시간을 준수하며 기도시간이 되면 회교사원에서 기도를 스피커로 내보내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2007년 현재 사망률은 1,000명당 8명, 출생률은 27.52명이며 문자해독률은 49.9%이다. 교육에서는 국가이념과 이슬람교 교육을 바탕으로 하여 과학기술교육에 중점을 두는 신교육정책을 채택하고 있으며, 학제는 초등학교 5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2년, 대학교 4년, 대학원 2년이다.

일반 의료수준은 상당히 낮고 빈곤층을 위한 무료 시술소가 있다. 일반 국립, 사립 병원시설은 낙후되어 있고 의사들도 개인병원 영업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파키스탄 언론은 상대적으로 자유를 누리고 있다. 식민지 시대때부터 우르두어로 된 신문이 발간되기 시작했다가 언론 규제법으로 탄압받기도 했다. 1982년 정부의 사전 검열이 완화되었고 현재는 정부 지침에 따른 자체 검열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각 지방별로 중소언론기관이 난립하고 재정상태가 어려우며 언론인의 자질문제 등으로 객관성 유지가 어려운 점 등의 문제가 있다.

방송은 국영 Pakistan Broadcasting Corporation(PBC) 라디오 방송국과 국영 PTV(3개 채널), AJK TV 등 2개의 텔레비전 방송국이 있다.

파키스탄 문화

파키스탄 주민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이슬람 문화권에 속한다. 또 많은 주민이 인도로부터 이주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이른바 인도 문화권과 중국과의 접촉점에 해당한다. 이슬람교가 전파된 10세기 이전에는 불교가 성행했으며 간다라 불교 유적도 많다.

한편 예로부터 실크로드를 통해서 중동·유럽과의 접촉도 적지 않으며 서양 문명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불교유적, 힌두 사원, 이슬람 궁전, 능과 유람할 수 있는 지하, 앙골-몽골의 주택등이 문화 자원이다. 조각품과 세라믹, 보석, 실크제품 등의 세공품과 목각 제품과 금속 조각품 등이 유명하다. 복장은 전통복장이 일반적이고 술, 돼지고기, 도박 등이 금지되고 있다. 파키스탄은 세계적으로 하키, 크리켓의 강국이며 30여 체육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파키스탄의 사회 (두산백과) 파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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