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업체와 용역업체 사이에 끼인 그들

▲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전경
“2013년을 제쳐두고서도 올해 2014년 1월부터 2월까지, 2개월 근로계약을 했어요.”
조원석(가명.51세)씨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부천시 원미구 소재)에서 시설관리 소장으로 2년 5개월을 근무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조원석씨가 소속된 용역회사는 여러 차례 바뀌었다.

“3월부터는 8월까지 6개월 계약했습니다. 제가 잘 나질 못해서... 용역으로 근무한 지 18년이에요. 2개월, 3개월 단위로 계약하는 곳은 저도 처음입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시설관리 용역회사와 평균 3개월 단위로 계약했다. 용역회사 소속 시설관리 근로자 20명은 고용승계 되지만, 회사가 바뀔 때마다 근로계약서와 사직서를 번갈아가며 써야 했다. 1년에 네 번, 근로계약서와 사직서를 쓴 적도 있다고 한다.

“용역회사에서 근로계약을 이렇게 하냐며 직원들이 저한테 따졌어요. 저도 답답한 마음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계약담당자 과장을 찾아갔어요. 과장은 예산이 없는데 어떻게 하냐며 오히려 화를 냈어요.”
조원석씨는 “불안해요. 하지만 이것도 반복하다보니 내성이 생기더군요.”라고 말했다.
2개월, 3개월, 6개월. 이제는 단기간 계약에 익숙해졌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짤리지만 않으면 되지.’라는 말을 종종 하곤 했다.

조원석씨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설치한 출퇴근용 지문인식기도 문제라고 말했다.
“출퇴근용 지문인식기는 직원들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얻은 뒤 설치할 수 있다고 해요. 그런데 그런 과정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는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용역회사 소속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용역회사 사장 의 권한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매달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기성 청구할 때 출근부도 제출하게 돼있어요. 하지만 사장, 또는 현장대리인 관리소장이 출퇴근부를 정리해서 본사에 제출하면 본사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으로 전달하는 형식이에요. 원청(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지문인식기를 설치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문인식기에 주민등록번호까지 입력하는 건 엄연한 불법 아닌가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측은 인권침해라고 판단해서, 9월 1일 지문인식기를 철거한 상태다.

사라진 3개월분 4대 보험료
“2013년 1월에서 3월까지 계약했어요. 그 기간 동안 4대 보험료가 납부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3월 초에 알았어요. 1월 달에 퇴사한 사람이 미납 고지서를 받으면서 드러났어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용역회사에서 제출하는 증빙서류를 확인한 다음, 기성 청구서를 받아야 한다. 4대 보험료 미납은 용역회사 관리를 허술하게 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 회사를 조사해보니 4대 보험만 1억 2천만 원이 밀려있는 거예요. 밀린 4대 보험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3월 기성청구금액을 묶어 놓는 거 밖에 없더라고요.”
기성청구금액 4천 800여만 원에서, 시설관리 근로자들의 월급으로 2천 800여만 원이 차감되었고 나머지 2천여만 원은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용역회사는 4대 보험을 내주겠다며 800만원을 요구했다.
“800만원으로 4대 보험을 낼 수 없어요. 1억 2천만 원을 온전히 가져와야만 차압이 풀리는 상황인 거예요. 그런데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용역회사에 800만원을 건넸어요.”
결국 용역회사는 폐업 신고를 했으며, 시설관리 근로자들의 3개월분 4대 보험은 미납된 상황이다.
“하도 답답해서 시청에 쫓아갔거든요. 감사관실에 갔는데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문화산업과로 가래요. 문화산업과에 가서 이야기했지만 묵묵부답이었어요.”

갑갑한 ‘갑’
현재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시설관리를 맡은 용역업체는 2014년 9월 1일부터 11월 31일까지 계약된 상황이다. 하지만 조원석씨는 이번에 재계약 할 수 없었다.
“올해 2월 말에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계약담당자가 저에게 그만두라고 말했어요. 제가 그만둬야하는 이유를 하나라도 말해달라고 요청했더니 말을 못하더라고요. 흐지부지 되는가 싶더니 8월 25일쯤 새로운 직원이 왔어요. 제 후임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8월 31일까지가 계약기간이었어요. 재계약을 거부당한 거죠.”

“퇴직금 문제도 있어요. 그래도 2개월이면 2개월분 퇴직금을, 3개월이면 3개월분 퇴직금을 받았어요. 용역회사 사장을 붙들고 달라고 요청했죠. 주지 않으면 본사로 찾아가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도 했고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잖아요.”
퇴직금은 근속연수 1년 이상, 365일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다. 직원들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근무하더라도 용역회사 소속이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퇴직금 미지급을 문제삼을 수 없다.
이번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 계약한 용역회사는 퇴직금을 두고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하지만, 시설관리 직원들은 “늘 불안감을 안고 삽니다. 적어도 계약기간이 1년 단위로 이뤄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계약담당자는 “지방재정법상 예산 범위 내 계약이 가능합니다. 예산을 1년 단위가 아닌 개월 단위로 주기 때문에 그에 맞춰 용역회사와 계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는 2015년 예산 확보에 노력해, 1년 단위 계약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문인식기와 관련해, 미화원들이 관리실에 보고도 없이 개인적으로 조기 출근 및 조기 퇴근을 한다는 민원이 발생했습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시설표준규격서 제24조(근태 및 업무관리)에 따라, 관리차원에서 지문인식기를 설치 운영하다가 현재는 용역사 직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없앴습니다. 또한 향후 근태 및 업무관리에 대해 시설표준규격서에 전적으로 관리소장에게 일임하도록 반영하겠습니다.”라고 전했다.

▲ 시설관리사무소 '귀하신 손님들이시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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