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천실업고등학교 개교 25주년에 부쳐

개교 25주년입니다. 1989년. 여기가 아니라 고강동에서 건물을 임대하여 벽돌로 칸을 막아 교실을 만들고 4층 옥상에 철망을 쳐서 운동장 아닌 운동장을 만들어 부천실업고등학교 현판식을 한 날이 9월 3일입니다. 지금 1학년 학생들이 25회 졸업생이 되는 것이죠.

문화체험시간에

부천실업고등학교는 여러분이 이제까지 다녔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와 많이 다릅니다. 우리 학교는 좋은 교육, 좋은 학교를 만들어 보자고 눈물겹도록 애써서 함께 만들어 온 학교입니다.

먼저 어떻게 눈물겹도록 애써서 함께 만들어 왔는지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초창기 학교는희망보다는 막막함이 많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임대건물에 보잘 것 없는 시설을 해놓고 그야말로 학교라고 우기고 있고 돈도 없고 경험도 없으며 고등학교 학력인정도 못 받았습니다. 처음 3년은 학교를 언제쯤 문닫게 될까 하루하루를 걱정으로 보냈습니다. 갑자기 희망이 생긴 것이 아니라 한달 두달, 한해 두해 지나면서 헌신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선생님들이 참여하고 돈으로 물건으로 후원해 주고 자원봉사 강사로 참여하고 노동으로 힘을 보태는 분들이 매순간 빠지지 않고 나타나고 눈덩이가 불어나듯이 불어났습니다.

더욱 활기차고 보람있게 한 것은 재학생, 졸업생들의 학교 참여입니다. 겨울철에 일요일이면 변변한 주방, 식당도 없는 고강동 학교에서 학생들과 선생님들, 또 학교를 좋아하는 분들이 동태찌개를 끓여 같이 나누어 먹고 학생 모집 포스터를 부천은 물론이고 시흥, 인천, 구로동 등 멀리까지 붙이러 다녔습니다.

1996년 오정동 신축현장에서 졸업생, 선생님들, 재학생들이 우리 학교를 짓는다는 일념으로 서로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때 만난 설비 소장님은 지금도 20년 가까이 학교의 개축·보수·건물 유지 등에 노하우와 아이디어, 노동, 건축공구 등을 대가 없이 지원하고 있습니다. 졸업생들이 보조교사로 참여하고 1~2만원씩 후원으로 학교를 지켜주는 모습은 재정적 도움을 넘어 학교의 큰 자부심이 되고 있습니다.

2000년부터 학생들을 좀 더 실제적으로 돌보기 위해 기숙사를 운영하였습니다. 올해로 14년 째 입니다만 기숙사 이거 보통일이 아닙니다. 명절 며칠을 빼고는 24시간 돌봄체제를 만들고 운영한다는 것은 넉넉한 돈도 없지만 돈이 있어도 안 되는 오직 선생님들의 헌신과 희생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눈물겹도록 애써서 선생님, 재학생, 졸업생, 학교를 좋아하시는 많은 분들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어디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부천실업고등학교의 25년 역사입니다.

부천실업고등학교는 학교가 아니라 눈물과 애뜻함과 희생과 헌신이 있는 살아 움직이는 공동체입니다. 두 번째 좋은 학교, 좋은 교육은 무엇인가요? 훌륭한 사람 만들려고 노력하는 게 좋은 학교 좋은 교육입니다. 훌륭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는 거, 학교에서 담배 안 피우고 선생님, 어른 말씀 꼬박꼬박 잘 듣는 거. 이런 걸 훌륭한 사람이라고 보통들 말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교육 체계에서는 훌륭한 사람이 10%도 못 나옵니다. 아주 잘못 됐고 거짓이며 나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족쇄입니다.

훌륭한 사람은 남에게 강요당한 남의 기준이 아니라 자기만의 기준으로 자기의 인생, 자기의 역사, 자기 스토리를 만들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존중하기 때문에 남을 사랑하고 남의 고통에 진정으로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어려운 말로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람입니다. 자기만의 기준이란 고집스럽고 자기 밖에 모르고 자기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중 많은 분들이 어릴 적부터 공부 못하고 담배 피우고 학교 잘 안가는 학생- 말하자면 불량 학생으로 낙인찍어 지속적으로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학생과 비교하여 선도하고 관리하고 감시하는 학생으로 대우 받았습니다. 무지막지한 폭력입니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게 만드는 비극 중의 비극이고 폭력 중에 폭력입니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몰라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고 타인과 공감할 줄 모르는 무감각하고 될 대로 되라고 사는 사람이 됐거나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남에 의해 선도되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이렇게 살아야 훌륭한 사람이 되는 표준이 있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 깨달음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여러분의 지금 모습, 혹시나 될 대로 되라고 아무렇게나 살고 있다면 그 모습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나쁜 어른, 그 중에는 부모도 있고 선생님도 있습니다. 나쁜 학교, 가정, 사회도 있습니다. 그들이 당연하듯이 행사한 폭력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자각과 깨달음부터 시작하고 학교는 격려와 위로를 통해 도와주어야 합니다. 자신을 찾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의 출발입니다.

부천실업고등학교는 가난한 학교입니다. 돈도 없고 시설도 보잘 것 없습니다. 가난한 학교의 큰 자산은 사람입니다. 교사가 학생에게 교사의 잘못된 권위로 자기의 도덕적, 윤리적, 경험적 기준을 일반적으로 강요하고 학생이 학생에게 힘세다고, 열 받는다고 자기만의 기준을 일방적으로 강요해서는 정말로 가난한 학교가 됩니다. 애뜻하고 짠하고 어려운 말로 仁이라고 합니다. 사랑하고 보듬어 안고 기다릴 줄 알고 지금의 이 순간의 모습만 보지 말고 그 사람 전체의 삶을 살펴보며 호들갑 떨지 말고 지켜봐 줄 수 있는 공동체. 부천실업고등학교가 가난하지만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입니다. 부천실업고등학교는 사람으로 부자가 되는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천실고 소식지 <우리들 한무릎터 253호. 2014.10.10>에서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