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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
콩나물신문
197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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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부천에는 자랑할만한 문화 유산이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고강동 선사유적을 비롯하여 변종인 신도비, 청평군 한언 묘표, 한준 신도비, 이한규 묘역, 화유옹주 묘, 귀인조씨 묘, 경숙옹주 묘, 석왕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만불선원의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 등과 세시풍속으로 원종동 도당우물제, 윗소사산신제, 깊은구지도당제, 석천농기고두마리, 장말도당굿, 경기도 무형문화재 61호 ‘자리걷이’ 등 제법 많은 유무형의 문화유산이 존재한다. 우리 부천시가 시민들의 정주의식을 고취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내 고장에
내고장 부천 이야기
최의열
2023.07.05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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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mulpo(제물포), Saalijy(싸리재), Sopple(소뿔), Poopyong(부평), Sosha(소사), Oricle(오리꼴), Nodd(노들)”경인철도 개통 당시 일곱 개 정차 역의 영문 표기이다. Chemulpo(제물포)는 지금의 인천역, Saalijy(싸리재)는 동인천역, Sopple(소뿔)은 도원역 인근, Sosha(소사)는 부천역, Oricle(오리꼴)은 오류동역, Nodd(노들)은 노량진역이다.우리나라 최초의 경인철도에 투입된 기차는 모갈(Mogul)이라는 이름의 탱크형 증기기관차였다. 인천(제물포)부터 노
내고장 부천 이야기
최의열
2023.05.2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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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5월, 서울 동대문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전차 개통식이 있은 지 4개월만인 1899년 9월, 영등포와 인천을 연결하는 경인철도가 완공되면서 한반도의 동맥을 잇는 철도 건설이 본격화되었다.우리나라에 철도를 처음 소개한 사람은 김기수(1832~1894)인데, 그는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후, 수행단을 이끌고 일본 동경에 다녀온 후 일본에서 보고 듣고 체험한 새로운 문물들을 『일동기유(日東記游)』라는 책으로 남겼다. 김기수는 당시 처음 접한 화륜차[기차]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요코하마(橫濱)에서
내고장 부천 이야기
최의열
2023.04.26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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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콘크리트로 복개(1986년)되어 땅 밑으로 사라졌으나 현재의 소사대로 아래에는 흰 모래가 아름답던 옛 소사천이 흐르고 있다. 옛날에는 그 물줄기가 심곡동을 지나 굴포천에 이르렀는데 대부분 복개되었다가 심곡동 일부 구간만 31년 만에 다시 복원되어(2017년) 오늘날 많은 시민에게 사랑받는 심곡천이 된다. 흔히 심곡천을 청계천과 비교하곤 하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건설업자 출신 시장이 복원한 청계천은 역사 유물들을 팽개치고 물이 흐르는 개천 바닥을 시멘트로 복원했지만, 심곡천은 원래 흐르던 물길을 원형 복원한 것으로 청계천과는
내고장 부천 이야기
최의열
2023.04.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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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의 대명사, 복사골이라는 명칭의 유래를 살펴보자.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은 1920년대부터 복숭아나무가 지천을 이루게 되었다고 하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당시 인천역장으로 근무하던 다케하라가 일본의 최대 복숭아 주산지인 오카야마현(岡山縣) 출신이어서 예상하기를 그가 고향에 있는 복숭아나무를 가져와 심지 않았겠느냐 하는 얘기들이 많이 있으나 확인된 것은 없다.당시 소사 지역 토양이 복숭아를 재배하기 좋았던 터라 급속도로 재배지가 늘어남에 따라 복숭아 생산량이 증대되고, 여세를 몰아 우리나라 5대 과일 중 하나로 성장하였으니 소사
내고장 부천 이야기
최의열
2023.03.22 1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