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의 ‘명화로 보는 색채 심리’ 4

선배에게 요즘 어떤 색이 마음에 끌리는지 물어봤다. 진한 파란색이 생각난다면 머리가 복잡해서 뇌가 쉬고 싶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80여 년 전, 코로나19를 예견이라도 하듯 미스터리한 작품이 있었다.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이다. 여기에 사용된 프러시안 블루(prussian blue)는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지친 심신을 회복하여 충전해주는 배터리다.

미국의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Art Institute of Chicago)’는 대표 작품으로 에드워드 호퍼(1882~1967)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시인 보들레르를 사랑했던 뉴욕 토박이 호퍼는 화가를 꿈꾸었으나 영화와 광고의 포스터를 제작하고 일러스트레이터와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1913아모리 쇼전시회에서 첫 작품을 팔았지만, 이후 10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42세에 만난 아내 조세핀 니비슨은 작품 속의 모델을 하면서 남편을 위해 미술계의 인맥을 관리하는데 올인했다. 호퍼는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두 번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겪은 도시인의 공허함을 화폭 위에 잘 표현하여 미국의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다. 1942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후, 도시 사람들이 느끼는 상실과 군중 속의 고독을 즐겨 그렸다. 그의 대표작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21세기에도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dward Hopper,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Nighthawks', 1942, oil on canvas, 84.1 x 152.4cm, Art Institute of Chicago
Edward Hopper,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Nighthawks', 1942, oil on canvas, 84.1 x 152.4cm, Art Institute of Chicago

미술 심리에서 문과 창문은 세상과 소통하는 중요한 통로를 상징한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커다란 유리창과 노란빛은 어둡고 고독한 현실에서 빠져나와 따뜻한 인간관계와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것을 나타낸다.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의 술집 풍경은 소름 돋을 정도로 쓸쓸하다. 마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는 것처럼 황량한 구도다. 등을 보이고 혼자 앉아있는 중년 남자의 뒷모습이 외로워 보인다. 암울한 현실에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것은 아닐까. 빈약한 안주로 배고픔을 달래는 빨간 옷을 입은 여인의 표정이 어두워 보인다. 그 옆에 앉은 남색 양복의 남자는 막막함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고민하느라 머리가 복잡한 듯 손에 담배를 쥐고 심각하게 굳어있다. 눈부실 정도로 환한 실내의 빛이 밤을 지새우는 손님들을 비추고 있다. 작품에서는 문과 열린 창문이 보이지 않는다. 원하는 곳으로 나가는 길이 막혀있음을 뜻한다. 2m가 넘는 장신으로 알려진 에드워드 호퍼는 극심한 낯가림과 우울증에 가로막혀 갈등하는 모습을 그림에 담아냈다.

프러시안 블루(prussian blue)는 진한 파란색으로 남색과 감청색, 군청색과 감색 또는 곤색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곤색은 일본어식 발음이다. 프러시안 블루는 1706년경 독일의 페인트 제조업자 요한 제이콥 디스바흐가 처음 만들었다. 화학자 쉴레가 프러시안 블루 염료에 산(, acid)을 넣은 후 가열하여 청산가리의 독성인 사이안화 수소산을 만들었다. 히틀러의 나치는 청산가리로 사이안화 수소 가스를 제조하여 아우슈비츠 학살에 사용했다.

프러시안 블루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움을 풍긴다. 이 색상을 좋아하는 사람은 스마트하고 이성적이다. 뛰어난 직관력으로 사물의 특성을 잘 파악하는 눈썰미가 있으며, 지식에 대한 욕구가 높고 좋아하는 한 가지에 꽂히면 완전히 몰입한다. 책임감 있는 위치에 보람을 느끼고 신뢰를 한 몸에 받지만, 자존심이 세고 잘난 척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편안하게 느끼는 소수의 사람하고만 어울리며 대인 관계에 관심이 없는 편이어서 다가가는 것이 조금 어렵게 느껴진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에 가면 피곤해하고 되도록 시끌벅적한 자리를 피하려고 한다.

감정을 담는 그릇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감정의 소용돌이가 치면 견디지 못하고 깨져버린다. ‘감정이 상하면 천국도 안 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원초적이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정도로 복잡해서 일손이 안 잡히고 잠도 오지 않은 적이 있을 것이다. 많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할 때 생각을 정리하려고 애를 쓰다가 잠을 이루지 못한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이런 경우, 생각을 억지로 정리하거나 애쓰지 말자. 내 감정이 너무 힘들어 감추려고 할수록, 정리하려고 할수록 눌린 감정은 마음속에 산더미처럼 쌓인다. 프러시안 블루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좋지 않은 이미지를 숨기고 우아하게 보이려고 애쓴다. 맷돌로 꾹꾹 눌러 납작보리처럼 압착해서 아예 느끼지 못하는 지경에 까지 이른다. 이런 사람을 상담했던 적이 있다.

오래전 필자는 아프리카 한인촌의 선교단체에서 봉사하는 분을 대상으로 미술 심리 상담을 했던 적이 있다. A는 상담하면서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종이에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보라고 했더니 의자에 앉은 자신의 옆모습을 그렸다. 그림 속의 그녀는 살고 싶은 의욕이 전혀 없어 보여 깜짝 놀랐다. “반드시 쉬어야 해요. 안 그러면 큰일 나요.”라고 간곡히 말했다. 그녀는 충격을 받았는지 현재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니고, 절대로 쉴 수 없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필자는 반드시 쉬어야 한다는 것을 재차 당부하였다.

몇 개월 후, 그녀가 귀국하여 서너 달 머무르던 중 필자를 찾아왔다. 반나절 넘게 상담하는 동안 기적이 일어났는지 귀국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라면서 어깨를 들썩이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영국 유학 중에 엘리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고 한다. 남편을 따라 아프리카에서 선교사업을 시작했지만, 자신과 맞지 않는 봉사활동과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죽을 만큼 괴로웠다고 했다. 효자인 남편이 홀로 계신 시어머니까지 모셔오면서 그녀의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망가졌다.

자존심 강하고 냉철했던 그녀는 감정보다 이성을 중요시했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감정을 무시하면서 이성적으로 우아한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삶을 포기하려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쉬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당부했던 필자의 한마디가 청천벽력같이 들렸다고 하였다. 상담을 통하여 감정도 이성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앙금을 토해냈다. 상담을 통해 충분히 위로받았다고 느꼈는지 A의 얼굴이 편안해졌다.

SSG,com의 ' 광고 제1편',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밤의 사무실' 오마주
SSG,com의 ' 쓱 광고 제1편',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밤의 사무실' 오마주
Edward Hopper, '밤의 사무실, Night at Office', 1940, oil on canvas, 56.4 x 63.8cm, Walker Art Center /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Washington DC
Edward Hopper, '밤의 사무실, Night at Office', 1940, oil on canvas, 56.4 x 63.8cm, Walker Art Center /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Washington DC

명화를 이용한 아트 마케팅이 대세다. 호퍼의 작품을 현대 감각에 맞게 강렬한 색채로 바꾼 실내에서, 연기자 공유와 공효진이 쓱 하세요.’라고 알쏭달쏭하게 말하는 광고가 있다. 신세계그룹의 SSG닷컴이 호퍼의 명화와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을 오마주한 온라인 쇼핑몰 광고로 전년 대비 매출이 32% 늘었다고 한다. 쓱 광고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2017년 에피 어워드 코리아에서 호평을 받아 대상 및 총 7개 부문에서 상을 휩쓸었다.

SSG,com의 '쓱 광고 제3편',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철로 옆 호텔' 오마주
SSG,com의 '쓱 광고 제3편',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철로 옆 호텔' 오마주
Edward Hopper, '철로 옆 호텔, Hotel by a Railroad', 1952, oil on canvas, 79.4 x 101.9cm, 개인 소장품
Edward Hopper, '철로 옆 호텔, Hotel by a Railroad', 1952, oil on canvas, 79.4 x 101.9cm, 개인 소장품

로고의 컬러는 기업의 첫인상을 결정한다. 프러시안 블루의 현대자동차 로고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진취적인 첨단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주고, 파리바게뜨의 로고 색상은 고품격 베이커리라는 신뢰를 심어준다. 프러시안 블루는 권위와 강인함을 상징하는 제복의 색상으로 사랑받고 있다. 202012월부터 대한민국 전자여권 표지 색상이 32년 만에 녹색에서 짙은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의 전통과도 잘 어울리고 세련된 멋스러움이 담겨있다.

현대인들은 도시에 살지만 공허함과 고독으로 힘들어한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서 현대인의 복잡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매력적인 프러시안 블루는 상한 마음을 풀어주며 머리가 복잡한 당신을 쉬게 하고, 이유 없이 화가 날 때 진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프러시안 블루를 자주 보자. 얽히고 맺힌 묵은 감정이 풀어지고 상한 마음이 녹아내릴 것이다.

 

| 김애란(화가, 미술 심리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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