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거의 절반을 소위 말해 ‘개점휴업’ 상태로 지냈다. 원래대로라면 2월 말부터 새학기를 준비하느라 분주했을 것이고 3,4월에는 꽃샘추위와 황사,미세먼지를 걱정하며 조심스레 나들이를 다녀왔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2주 간격으로 미뤄지는 개학에 맞춰 교육계획을 수정하고, 긴급 돌봄으로 학교에 나오는 몇몇 아이들을 보면서 개나리와 진달래가 흐드러지던 그 좋은 시절을 하릴없이 보냈다. 만나고, 모이고, 대화하고, 의논하고, 같이 밥먹는 - 우리가 평소에 권장하고 지향하던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지양하고 멈춰야 할 금기로 변해 버렸다.

어느 시점부터 공교육에서는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면서 소위 ‘진도’를 나가기 시작했는데, 산학교의 교육과정에서는 그렇게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았다. 숙제를 내 주고, 교사가 아이들에게 연락해서 안부를 묻고 일상을 점검하는 것 외에 원래 산학교가 해왔던 대부분의 활동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 못하면서 일순간에 멈춰 버렸다. 온라인으로 몸활동을 할 수는 없었고 비대면으로 연극과 합창을 할 수 없었다.

전국의 모든 학교들이 순차적으로 등교를 시작하고, 산학교도 오매불망 기다렸던 개학을 5월 20일에 드디어 했다. 원래대로라면 매일같이 학교에서 뛰놀아 까무잡잡하고 날렵했을 아이들이 오랜 칩거 생활로 허옇고 퉁퉁해져서 나왔지만, 비록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하면서 서로의 표정을 느끼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학교에 사람의 기가 가득한 그 충만함은 막혔던 혈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환희도 잠시. 부천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했고 부천의 모든 공교육이 고 3을 제외하고는 등교를 중지했다. 일주일 동안 되찾았던 일상을 다시 멈춰야 하는지 정말 많은 고민이 되었지만, 사실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 시국에 우리만 등교를 강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결국 일주일만에 다시 학교는 등교를 중지해야만 했다.

일주일간 느낀 일상의 맛은 너무나도 달콤했고 그것을 놓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잠시나마 생동감이 돌았던 학교가 다시 고즈넉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조금 무력감까지 들었고, 앞으로 무언가 계획을 짠들 그것이 과연 소용이 있을까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그리고 내심 불안했다. 이 상황은 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2주간의 등교 중지 기간에 변화가 없진 않았다. 중등과정은 드디어 ZOOM을 이용해서 아침 미팅과 연극 수업을 진행했다. 초등과정에서는 개인 목표를 세우고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기도 했고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아이들의 생활을 파악하고 다시 생활리듬이 깨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6월 11일. 드디어 다시 등교를 재개했다. 마스크를 쓰고, 입구에서 발열체크를 하고, 교실에서도 책상 간격을 최대한 벌려놓고. 평범한 일상 곳곳에 긴장감이 배어 있다. 왁자지껄 마주보며 떠들던 식사 시간도 교사들의 통제 속에 묵언(默言)식사로 바뀌었다. 모름지기 밥이란 시끌벅적하게 웃고 떠들고 침 튀겨가며 같이 먹는 것인데...아이들도 밥 먹는 재미가 덜한지 밥을 적게 먹는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등교한지 열흘이 지났다. 아이건 어른이건 이제 다시 공동체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다. 비록 전체 학생이 한 자리에 모이지도 않고, 서로 가까이 접촉하는 활동을 할 수도 없으며, 외부활동은 가급적 자제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같이 있으니 에너지가 발생한다.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그걸 느낀다. 쉴 새 없이 같이 얘기하려 하고, 같이 놀려고 한다. 그동안 얼마나 관계가 고팠을까. 게임과 유튜브, SNS 등등 혼자 놀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고 산학교 아이들이라고 그런 미디어에서 자유롭지는 않지만, 결국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코로나는 일상과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었다. 어쩌면 다시는 코로나 이전의 생활방식을 되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가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은 무엇을 놓지 말아야 하는지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산학교가 그간 소중하게 가꿔왔던 민주적 공동체의 가치가 더욱 더 소중해지는 시기, 물리적 거리는 있어도 정서적 거리는 멀어지지 않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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