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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
콩나물신문
197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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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옷은 세상 까시랍다. 때가 잘 타는 성질머리도 그렇고, 커피 한 방울 떨어지면 난리가 나는 것도 고약스럽다. 더펄더펄한 내가 흰옷 입은 사람 옆에 있으면 조심스러운 것도 마찬가지다. 내 옷들은 거의가 검정색 아니면 회색, 무채색 계열이다. 이런 옷들은 때가 묻어도 호들갑을 떨지 않아 편리하기도 하지만, 퉁퉁한 몸을 슬림하게 보여주는 효과가 있어 굳세게 입어왔다. 어느 날 서점에서 『옷장을 열면 철학이 보여』라는 책 제목을 보고 씩 웃었다. 철학은 개뿔! 눈 씻고 봐도 개성이라고는 없을 내 옷장에서 철학이 보인다고? 알록달록 옷을
삶의 길목에서
콩나물신문 편집위원회
2024.01.29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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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 sentimento 감정을 갖고 피아노를 팔았다. 아니 버렸다는 말이 더 맞다. 거실과 주방 사이, 그토록 가까운 거리에 있었음에도 그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가 먼저 나를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사람 같기도 하고 상처 입고 웅크리고 있는 짐승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저 검고 흰 조각들이 맞물린 가구에 불과했다. 피아노를 돈으로 환산하고 난 후 어쩌면 이토록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지를 생각할 때마다 돌부리에 자꾸 걸려 넘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Capriccioso 마음
삶의 길목에서
전미란
2023.10.0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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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5 가르마를 탄 장발의 소년이 토담집 앞에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한쪽 모서리가 약간 말려 올라간 사진은 흠집이 여러 군데 나 있고, 컬러 본연의 색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빛이 바랬다. 문득 어린 시절의 추억이 영화처럼 떠올랐다.소년은 내가 다섯 살 무렵 우리 집에 왔다. 그의 아버지가 학용품을 사라고 준 돈을 모두 군것질한 뒤 혼날까 봐 집에 가지 못하고, 버스터미널을 떠돌다 우리 집까지 오게 되었단다. 아버지는 가족을 찾아주려 애를 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할 수 없이 소년을 식구로 맞이하게 되었다. 소년의 등장은
삶의 길목에서
김혜란
2022.07.20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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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 들썩거렸다.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판소리 다섯 마당(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거부 의사와는 상관없이 옆집 아저씨의 애장품인 전축은 오늘도 제 할 일을 다 하고 있었다. 쑥대머리 귀신 형용 적막 옥방의 찬 자리에 생각난 것이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을 보고지고 오리정 정별 후로 일장서를 내가 못 봤으니 춘향이 이 도령을 그리워하며 애끓는 심정으로 읊는 옥중가의 한 대목이다. 쑥대처럼 헝클어진 머리에 귀신같은 모습으로, 차디찬 옥방에 앉아 내일 당장 어찌 될지 모르는
삶의 길목에서
전해미 조합원
2022.04.25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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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주소!”2021년 1월 3일 오후 1시 45분, 울산 남구 장생포항. 어선 물양장 해상에서 선박 엔진을 수리하고 있던 607 일광호 김인학 선장은 다급한 목소리를 들었다. 육지에서 10미터가량 떨어진 바다에 사람이 빠졌다. 막대를 뻗어보고 구명조끼를 던져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지나가는 배를 향해 손짓해보아도 소용없었다. 선장은 어깨를 수술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았지만, 바다에 뛰어들었다. 아픈 어깨를 휘저으며 익수자를 향해 헤엄쳐갔다. 영하 10도 안팎의 바다에서 익수자를 건진 김인학 선장. 곧이어 해경이 도착했
삶의 길목에서
이주희 조합원
2022.01.14 1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