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55 가르마를 탄 장발의 소년이 토담집 앞에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한쪽 모서리가 약간 말려 올라간 사진은 흠집이 여러 군데 나 있고, 컬러 본연의 색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빛이 바랬다. 문득 어린 시절의 추억이 영화처럼 떠올랐다.

소년은 내가 다섯 살 무렵 우리 집에 왔다. 그의 아버지가 학용품을 사라고 준 돈을 모두 군것질한 뒤 혼날까 봐 집에 가지 못하고, 버스터미널을 떠돌다 우리 집까지 오게 되었단다. 아버지는 가족을 찾아주려 애를 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할 수 없이 소년을 식구로 맞이하게 되었다. 소년의 등장은 나와 두 동생에게 너무나도 반가운 일이었다. 나는 딸만 내리 일곱을 낳은 딸부잣집의 막내딸이다. 내게는 오빠가 없었고 두 동생에게는 형이 없던 참이었다. 나와 두 동생은 그를 오빠, 형이라고 부르며 곧잘 따라다녔다.

그랬던 그가 옛날 생각이 나서 사진을 보낸다고 했다. 어찌 그만이 옛 생각이 날까. 여름밤에는 연초(담배) 건조실의 아궁이에 옥수수와 감자를 구워 먹었다. 옥수수를 먹으며 하모니카를 불수록 입 주위는 검둥이가 되었고, 장난기가 발동한 그가 우리의 얼굴에 그을음을 묻혀도 그저 좋다고만 했다. 비가 그친 날에는 그물을 척 어깨에 걸친 그를 따라 양동이를 들고 냇가로 향했다. 그가 양손으로 그물 끝을 잡고 있으면 우리는 발로 수초를 밟으며 고기몰이를 했다. 두어 번을 반복하면 그물에는 모래무지, 피라미, 붕어가 하얀 비늘을 반짝이며 파닥파닥 뛰었다. 그런 날은 저녁상이 푸짐해서 어깨가 으쓱해지는 날이었다. 함박눈이 내린 날에는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뒷산에서 함께 토끼도 잡았다. 계곡으로 놀러 갔다가 바위에 턱이 찢긴 막냇동생을 업고 읍내로 뛴 것도 그였다. 어느새 그는 우리들의 피붙이로 젖어 들고 있었다.

여러 해가 바뀌며 나에겐 가슴 멍울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진은 그즈음이었을 게다. 어딘가에 있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그는 수심이 가득 찬 얼굴에 말수도 적어졌다. 가끔씩 용수철처럼 튀어 나가 내 집이 여기일까, 저기일까?’하며 농가의 과수원을 떠돌다 돌아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머니에게 오빠 어디 갔냐며 묻기를 반복했고 주인 없는 방 앞만 서성거렸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사진 출처(다음 영화)

 

아버지는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그가 원하는 것은 거의 사주는 편이었다. 어느 날 그의 손엔 하모니카가 들려졌다. 들숨 날숨으로 각기 다른 소리를 내는 악기가 무척 신기했다. ‘오빠 생각을 연주하며 여동생이 있다고도 했다. 나는 옆에서 연주에 맞춰 흥얼흥얼 오빠 생각을 부르기도 했다. 마치 친동생이 오빠의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듯이. 사랑방에서 하모니카 소리가 흘러나오면 울타리 너머 오동나무 잎사귀도 너울너울 리듬을 탔다.

지루한 장마가 보름째 이어지던 날이었다. 창호 문을 열자 어둠이 먼저 훅 달려들었다. 사람의 숨결이 드나들지 않은 빈방엔 눅눅함과 적막함만 흘렀다. 낮은 서랍장 위에는 하모니카가 덩그러니 주인을 기다렸다. 그가 하던 대로 하모니카를 툴툴 털고 웃옷에 쓱쓱 문질렀다. 양 끝을 살며시 쥐고 두어 번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다 고장이라도 날까 슬며시 내려놓았다.

서투른 나의 하모니카 소리를 들었을까. 소낙비가 후드득 쏟아지는 저녁때 함석 대문이 열리며 그가 들어섰다. 얼굴은 수척하고 머리카락은 뻣뻣한 철 수세미를 얹은 몰골이었다. 나는 뜰로 내려가 오빠의 젖은 손을 덥석 잡았다. 심장 저 밑바닥이 파르르 떨렸고 이내 코끝이 시큰했다. 대청마루에 걸터앉더니 두툼한 손에 가려진 얼굴이 어깨와 함께 들썩였다. 그날 이후 하모니카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도회지로 나와 상급학교를 다닐 때였다. 주말을 맞아 고향에 내려가니 그가 보이지 않았다. 전국이 이산가족 찾기로 떠들썩할 때 아버지도 가족을 찾아주고자 나섰다. 그의 부모님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경찰서의 도움을 받아 친부모를 만나 돌아갔다고 했다. 언젠가는 올 일이었지만 이렇게 일찍, 하필 내가 집에 없는 사이에 일어날 줄이야. 두 다리에 힘이 빠졌다. 대청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고마웠고 행복했노라고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떠나버린 그가 야속했다. 아래 뜰 빈방엔 가을바람에 문풍지가 날리고 도금이 벗겨진 낡은 하모니카와 잔짐이 퀭하니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하모니카 첫 음을 내뱉었다. 음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내 안에 묵직한 것도 함께 날아가 버렸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탈북자들이 다시 돌아가는 이유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크다고 한다. 어릴 적 헤어진 쌍둥이도 훗날 만나보면 환경은 달라도 서로의 사고방식까지 많이 닮아 있다고 한다. 핏줄의 힘인가 보다. 학부모가 되어 준비물을 산다고 아이들에게 용돈을 줄 때마다 열두 살 소년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는 가족을 찾아 떠난 지 몇 해 되지 않아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집안 행사로 형제들이 모일 때면 우리들의 추억 속 틈바구니에 그도 늘 한 자리를 차지했다.

뒷산 새들이 짝짓기를 위해 봄볕에 모여든다. 쉼 없이 재잘거리는 소리에 내가 더 설레는 것은 어인 일인가. 이제는 가족이 그리울 때마다 쉼 없이 하모니카를 불었을 그에게 내가 오빠 생각을 멋지게 불어주고 싶다.

 

| 김혜란(한국수필등단. 포토에세이 엄마의 등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한국수필작가회. 한국문인협회 구로지부 회원. 솔샘문학회 회원)

 

김혜란 작가
김혜란 작가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