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우두커니 심우도 만화 출판사:심우도서

뒤죽박죽 온통 머리가 혼란스럽다. 아니다. 정직하게는 마음이 요동을 친다. 무슨 말을 하고는 싶은데 말을 하기 위해 숨을 내쉬면 눈물부터 터질 것 같아 못하겠다. 대신 가슴이 견디지 못할 만큼 숨을 들이 마시고 풍선이 터지듯 하늘을 향해 토해낸다. 세상이 흐려지고 목뒤로 뜨거운 뭔가가 넘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책을 열고 10쪽에서 딱 걸렸다. ‘혼자 사시기에 아버지는 너무 늙어 버렸다’라는 10쪽 두 컷을 보고 먹먹해진다. 괜히 읽기 시작했다 싶다. 게다가 딸과 아빠의 이야기다. 내게 있어 가장 민감한 부분이 두 딸이 아니던가? 그렇지 않아도 요즘 들어 부쩍 늙어가는구나 하고 느끼는 터에 제대로 감정이 이입됐다.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묵직한 돌이 얹힌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3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비슷한 상황들이 떠오른다. 치매가 아닌 뇌졸중으로(아기 치매가 있으셨을지도 모른다. 살짝 의심이 되기도 했었지만 솔직히 검사해서 확인하기 두려웠다.) 투병을 하시다 떠나셨지만 생명의 빛이 흐려지는 과정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일은 마음이 무너지는 일이다. 주인공 승아처럼 아버지와의 좋은 기억이 많지 않아도 그럴진대 ‘언제나 좋은’ 아빠였던 승아는 오죽했을까? ‘언제나 좋은’ 아빠, 화내는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던 승아, 항상 자신의 편이었던 아빠가 막무가내로 화를 내고, 무서운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고 욕하는 아버지, 치매 때문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무섭도록 낯설게 변한 아버지와 감정적으로 부딪히고, 밀려오는 자책감에 누워 눈물을 흘릴 수밖에 현실. 이 현실 앞에 승아가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2016년 5월의 어느 수요일 밤, 의학적으로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했음에도 진행되는 뇌졸중에 “운이 나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에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에 그저 아버지 곁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기나긴 밤처럼 승아, 치매 걸린 아버지도 우두커니 있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우두커니는 ‘넋이 나간 듯이 가만히 한자리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모양’(표준국어 대사전-네이버 검색)이라고 한다. 사전적 정의와 상관없이 우리 인생에서 우두커니를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포자기하고 포기하는 우두커니가 아니라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새롭게 품어내는 방식의 우두커니로 말이다. 그러기에 이제 우두커니는 정중동(靜中動)의 우두커니다. 안타까움과 슬픔을 애써 외면하지 않고 창조적으로 품어내어 추억과 그리움, 감사와 사랑을 영롱하게 빚어내는 결정화의 과정이 우두커니다. 맞다. 그런 과정을 어떻게 한자리에 가만히 서 있지 않고 빚어낼 수 있겠는가?

‘늙은 아버지와 사는 집, 우두커니’는 올해로 17회를 맞는 부천만화대상의 대상 작품이다. 좋은 작품과 작가를 알리는 부천만화대상이 있어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참 고맙다. ‘우두커니’가 코로나를 염두에 두고 선정된 것은 아니겠지만 코로나19의 상황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억, 추억, 관계, 가족 등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일상의 반경을 좁혀야 하는 상황은 관계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게 한다. 허나 추리고 추려도 그 핵심에 가족(또는 가족 같은 분)이 있고, 서로의 사랑이 있다. 치매 걸린 늙은 아버지와 승아의 이야기는 여러 이유로 덮여져 보이진 않던 우리의 본심을 살려낸다. 마치 숯불에 입김을 불어 살려내듯. 그래서 하는 말인데 빌려보지 말고 꼭 사서 읽으시라. 재난기금 다 사용하시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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