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할머니께서 암 투병 끝에 2020년 6월 27일 토요일 오후 9시 44분 대성병원 중환자실에서 향년 79세로 눈을 감으셨습니다. 제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할머니가 제 곁을 떠났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연봉리에는 독립운동가 남궁 억 선생을 기념하는 무궁화공원이 있습니다. 공원 앞 도로 건너편, 한눈에 들어오는 주황색 지붕의 할머니 집이 있습니다. 할머니는 슬하에 제 아버지 한 명만 두셨습니다. 손이 귀한 탓인지 방학이나 주말에 놀러 가면 무척 이뻐하셨습니다. 덕분에 할머니에 대한 포근한 기억이 많습니다.

할아버지는 4년 전에 먼저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첫 만남에서 포도 하나를 사주며 청혼하셨고 할머니는 그 청혼을 흔쾌히 받아 결혼하셨다고 합니다. 요즘 사랑 이야기에 비하면 참 싱거운 느낌입니다.

할머니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두메산골 장전평리 먹실골에 친지분들과 함께 모여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읍내로 내려와 논농사를 짓다가, 할아버지께서 농사짓기가 싫으시다고. 논을 다 팔고 임대할 건물을 짓고는 이곳저곳 놀러 다니며 여유롭게 사셨습니다.

할머니께서 들려주신 농사 이야기 중에 흥미로웠던 것은 맥아 재배였습니다. 한때는 맥주의 원료가 되는 맥아를 할머니께서 키우셨다고 합니다. 홍천에 맥주 공장이 세워진 초기에는 주변 농가에서 키운 맥아를 킬로 단위로 수매했답니다. 그런데 맥아는 키도 큰데 농약을 많이 쳐야 해서 결국 그 농약을 다 사람이 다 맞는다고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맥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맥아는커녕 맥주도 외산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요즘과는 격세지감입니다.

어렸을 때 할머니 댁에 가면 정해진 코스가 있습니다. 일단 할머니께서 해놓으신 연두부를 먹고 겨울에는 항상 뜨겁던 방바닥에 누워 한숨 자고 일어납니다. 그리고 할머니 손을 꼭 잡고 근처의 슈퍼로 과자를 사러 갔습니다. 지금까지 할머니께서 사주신 과자를 합치면 슈퍼마켓 하나는 거뜬히 채울 듯합니다.

여름에는 홍천강에서 물놀이와 낚시를 하고 겨울에는 그 강 위에서 얼음 썰매를 탔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KBS 홍천중계소 언덕에서 비료 포대로 눈썰매를 타기도 했습니다. 고2 때는 방학 동안 내려가 살았습니다. 할머니가 해주시는 음식도 먹고 저녁에는 근처 맛집을 찾아다녔습니다. 중화요리, 송어, 막국수, 오리고기, 화로구이 등등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돕니다.

그 모든 기억의 순간엔 할머니가 함께 계셨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기억만으로도 배가 부르고 따듯해지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기쁨입니다. 물론 부모님도 그렇지만 그래도 할머니와는 다른 느낌입니다. 할머니께서 ‘안된다’고 말씀하신 걸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무엇을 물어보든지 ‘좋다’고만 하셨습니다. 항상 남에게 맞추며 살아오신 할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1년 전, 군 복무 중 부모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할머니 몸에 암세포가 발견되었다고 하셨습니다. 할머니가 암을 잘 이겨내고 다시 홍천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거라고 애써 믿으며 태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제대 후에는 대성병원에 입원하신 할머니를 자주 찾아뵈었습니다. 다른 건 잘 안 드셔도 도가니탕이나 설렁탕, 갈비탕을 포장해가면 그렇게 잘 드셨는데…….

말씀은 안 했지만, 할머니는 홍천으로 다시 돌아가길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이틀 전 꿈을 꾸셨습니다. 깜깜한 밤중에 옆집 살던 친구와 마당에 수북이 쌓인 눈을 치우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 이야기를 간병인에게 말하면서 엉엉 우셨다고 합니다. 생전에 홍천을 다시 가보지 못 할 거라 예감하셨었나 봅니다. 상황이 안 좋아져서 이모할머니를 비롯한 친척분들이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뵈러 왔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할머니는 눈을 감으셨습니다. 아마 친언니를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증조부, 증조모, 조부가 계신 홍천 장전평리 먹실골 선산에 모셨습니다. 결혼하고 처음 신혼살림을 꾸렸던 곳으로 꽃상여를 타고 돌아가셨습니다. 함께 모시고 살던 시아버지·시어머니와 남편까지 그리운 사람이 있는 곳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죽음이란 슬프긴 하지만 비극인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아직 경험이 없어 모르지만 때가 되어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러 그리운 곳에 가게 되는 것, 그것이 죽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할머니께서 정성 들여 가꾸시던 접시꽃이 만발한 뜰은 여전히 눈부십니다. 어렸을 땐 생김새를 보고 안테나라고 부르던 꽃입니다. 이제는 제가 홍천에 종종 내려가 가꿔야겠습니다. 도시에서 자란 제가 자연과 시골이 익숙했던 것은 순전히 할머니, 할아버지 덕분이었습니다. 각박한 도시의 삶에 시달리면서도 언제든지 마음 편하게 찾아갈 수 있는 익숙한 시골이 있다는 건 축복받은 일입니다. 마지막까지 아낌없이 주고 가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정말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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