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는 물을 먹고 자란다. 한 주 동안 장마비도 내렸었고 적당히 스며들거나 증발도 하면서 다행히도 아주 적정한 수위를 하고 있었다. 우렁이들도 건강하게 사랑하면서 뒹굴고, 알 낳고, 먹이를 찾아 다니고 있었다.

물은 벼에게 치명적 성장조건임과 동시에 농부도 벼도 원치 않는 풀 문제와도 연관이 깊다. 모를 내고 물이 없거나 모자라면 풀이 극성을 부리기 때문이다. 새로 나는 풀싹을 우렁이가 먹어 치워야 하는데, 물이 닿지 않는 곳에는 우렁이가 발걸음을 하지 않게 된다. 논바닥을 물이 고르게 덮고 있는 한, 새 풀싹은 우렁이의 밥이 되고 농부도 벼도 풀의 방해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논마다 지하수를 뽑아내는 관정과 전기양수기를 활용하므로써 지하수가 고갈되지 않는 한 물 공급은 어렵지 않다. 그래도 양수기 스위치를 올리고 내리는 일은 농부 저마다의 책임이어서 누구에게 부탁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 날이 모를 낸 지 한 달 하고 나흘째다. 새벽 논둑에 서서 저 쪽 끝까지 눈길이 오가면서 한 가지 거슬리는 게 보인다. 대부분의 벼와는 다른 색깔과 키높이를 한 존재들이 여기저기 있는 것이다. 피인가? 아니면 잡벼인가? 잘 모르겠다. 피라면 가운데 잎맥이 흰색을 띠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걸 보면 피는 아닌가 보다. 오늘은 이 정체불명의 유사 벼포기를 뽑기로 했다. 그러나 어쩌랴. 이들은 벼포기 속에 끼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가지치기를 두세 번 했고, 뿌리도 튼튼히 내린 상태여서 분리제거가 쉽지 않다. 일을 하다 보니 다행히 요령이 생긴다.

놔둬야 할 벼포기까지 싸잡아서 움켜 쥐고 아랫 쪽 45도 방향으로 밀당겨 뿌리를 찢은 다음 뽑아 올리되, 남은 벼포기는 왼손으로 잡아 같이 뽑히지 않게 하는 것이다.

주당 포기 수가 많을수록 벼포기를 줄여 건강성을 높일 수 있어 일거양득의 동작이 돼 주었다. 이렇게 뽑아든 유사 벼포기는 휘감아 바닥에 쑤셔 넣는다. 이들은 퇴비 자산이 되어 두고두고 땅심을 돋우어 주면서 퇴비와 탄수화물로 돌고 돌 터이다.

세 시간 여만에 이 일을 마쳤다. 양수기를 올려 손발을 닦고 세수도 한다. 이 때의 시원함이야말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시원함이다. 이앙기가 마무리 하고 나오던 나들목의 모는 거의 손으로 다시 심되 한 포기씩만 심었었다. 이 한 포기가 마치 부채살 모양의 가지치기를 해 나가는 모습이 여간 대견해 보이는 게 아니다. 이 포기를 뽑아 볼라치면 그 뿌리가 정말 건강하고 강력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벼포기를 찍은 사진을 거꾸로 돌려보니 볏잎의 그림자가 붓으로 친 난초의 모습이다. 내년엔 어떻게 해서든지 한 포기씩만 심어야겠다. 충전식 예초기를 돌려 논둑풀을 정리하고 나서 막걸리 한 잔으로 일정을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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