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꿀 같은 안식년을 보내고 올해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7-9학년 생활교사(담임)를 맡게 됐다. 산학교는 1학년부터 9학년까지의 학생들이 있는데, 7-9학년은 공교육에서 중등과정 연령의 학생들이다. 올해 산학교 7-9학년은 모두 11명으로 한 반에서 통합하여 생활한다. 교사생활 올해 9년차이지만 청소년 연령의 학생들과 생활하는 건 처음이다. 누구나 어느 정도쯤은 흑화한다는 청소년 시기라는데, 연령도 다르고 그만큼 욕구도 제각각일 아이들과 생활하는 것이 걱정도 됐지만 기대도 컸다. 몸도 마음도 빠르게 성장하는 시기인 만큼 함께 공부하고 도전해볼 수 있는 게 많으리라. 동아리 활동도 하고, 역사 공부도 하고, 도보 여행도 가고 싶었는데.

위기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코로나19 사태가 이토록 파급력이 세고 장기화될 줄이야. 계획과 기대가 여러 차례 무산되며 학생들도 나도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함께 사는 것이 가장 큰 배움이라 믿는 산학교에서, 만남 자체가 제한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온라인 강의와 과제 등으로 학습을 대체할만한 방안을 고심했지만 거기에는 서로의 삶이 없었다. 청소 구역을 어떻게 배분하면 좋을지, 이번 들살이에서 각자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장난과 괴롭힘의 경계는 어디쯤일지, 함께 의논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며 살아가는 것. 영어와 수학을 배우는 것 말고, 갈등과 소통, 위기와 도전은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

청소년들에게 학교와 PC방, 노래방에 갈 수 없다는 것은 오프라인 만남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래서 몇몇은 학원으로, 몇몇은 음지에서의 만남으로, 대부분은 휴대폰으로 이를 대체했다. 산학교 학생들도 다르지 않았다. 안부 전화를 돌릴 때마다 십중팔구 “휴대폰 하고 있었는데요.”라는 대답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과제는 언젠가 돌아갈 일상을 위해 우리가 여전히 연결되어 있음을,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개입할 여지를 계속 마련해가는 일이었다. 네 차례의 개학연기와 한 차례의 등교 중지를 겪는 동안 욕심을 내려놓고 학생들과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갔다. 온라인으로 서로의 안부와 하루를 나누고, 오프라인으로 면담을 하며 학생들 각각의 관심과 고민을 들었다.

어렵게 등교 개학을 한 지 한 달여. 또래와의 만남에 굶주려 있던 학생들은 한동안 쉴 틈 없이 놀았다. 마스크를 쓴 채로 한발 뛰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어린 시절의 놀이를 세상 신나게 하는 게 아닌가. 그러다 최근에는 각종 보드게임과 마피아 게임, 유튜브에서 본 새로운 놀이로 발전했다. 개학을 준비하며 놀이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법을 고심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한 휴식이 학생들의 놀이 욕구에 불을 지핀 모양이다. 물론 오랜 공백 끝에 시작된 공동체 생활에 혼란을 겪고 헤매는 학생들도 있다. 그러나 휴교 기간과 달리 그를 함께 지켜보는 다른 학생들, 부모들이 있어 안심이다.

최근 여기 저기서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을 이야기하며 학교 교육에 대한 말들이 많다. 방구석에서 배움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학교에 꼭 가야하나? 학교의 역할, 필요성은 무엇인가? 분명한 것은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던져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소통하며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이 시기를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며 슬기롭게 겪어나가야겠다.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