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홍석 조합원 (부천의료복지협동조합 부천시민의원 원장)
송홍석 조합원 (부천의료복지협동조합 부천시민의원 원장)

'8월 14일’은 택배노동자가 택배업이 시작된지 28년만에 처음으로 얻는 ‘휴가일’이다. 과로에 지친 택배노동자들(전국택배연대노조)이 ‘제발 휴식할 권리’를 위해 CJ대한통운, 우체국, 한진, 롯데, 쿠팡 등 주요 물류회사(전국통합물류협회)에 요구하여 얻어낸 ‘택배없는 해방의 날’인 것이다. 물론, 그것은 대가 없이 쉽게 획득한 것은 아니었다.

차가운 새벽의 노동, 차가운 세상, 멎어버린 심장

3월 12일 새벽 배송을 하던 40대 쿠팡 택배노동자가 빌라 4~5층 계단에서 사망한채로 동료에 의해 발견되었다. 빌라는 엘리베이터가 없었고 5층을 계단으로 오르내려야 하는 일을 4번이나 왕복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배송물량이 너무 많아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배송할 때에도 자신의 집에 잠깐이라도 들를 시간도 없었다. 밥먹을 시간도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고 토로했다. 입사한지 4주된 비정규직노동자였던 그는 그렇게 새벽 배송 물량에 짓눌려 차가운 새벽 홀로 세상을 떠났다.

6월엔 33세의 로젠택배 노동자가, 5월과 7월엔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가 연이어 과로로 세상을 떠났다. 코로나19 재난적 상황은 회사엔 엄청난 성장을, 4명의 택배노동자에겐 주 6일 하루 15시간 노동의 살인을 남겼다.

택배노동자들의 노동과 건강

삼사십대 젊은 택배노동자의 건강, 삶과 죽음의 문제는 오롯이 그들이 처한 노동환경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른바 쿠팡맨으로 불리는 쿠팡택배노동자의 노동의 일상과 그로 인한 건강문제는 이렇다.

쿠팡맨은 주간 전담, 야간 전담으로 나뉘어져있다. 주간엔 오전8시~9시에 시작해서 11시간 노동을 한다. 야간엔 오후 10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오전 7시에 배송을 마치고 정리하면 8시에 퇴근을 한다. 신선식품 당일 배송이 생기면서 야간 전담노동이 생겼고,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아침 7시에는 배송을 완료해야 한다. 시간 압박에 어두컴컴한 밤을 달리고 또 달린다.

법적으로는 8시간 근무에 최소 1시간의 휴게시간을 가져야하나 물량 때문에 쉬라해도 쉬질 못한다. 일머리와 배송길이 서툰 신입직원이나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휴게시간을 쓰지 못한 이들이 더 많다(쿠팡노조 설문조사에 의하면, 휴게시간을 제대로 쓰는 노동자는 10명중 3명에 불과하고, 비정규직노동자는 2명에도 못미친다). 물론 밤에 쪽잠이라도 자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야간에 문을 연 식당도 없어 편의점에서 라면 등 인스턴트를 먹으면서 일한다.

회사는 엄청난 성장을 했다. 2015년 1천여명이었던 직원이 2020년 8천명으로 8배 늘었고, 1인당 물량도 2015년 대비 2017년에 3.7배가 증가했다. 노동밀도로 보면, 근무시간내 할당된 물량을 쳐내려면 2-3분에 1가구는 배송 완료해야 한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업무상 안전과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 첫째는 교통사고나 배송 중 넘어짐 사고다. 특히 비오는 날 시간에 쫓겨 운전하다보면 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야간에 박스 배송을 하다보니 전방에 장애물을 못보고 넘어져 다치는 일이 많다.

수면문제도 심각하다. 야간 배송을 전담하게 되면 생체리듬이 깨져 잠들기도 힘들고, 중간에 자주 깨는 등 수면이 질이 좋지않다. 야간 노동을 오래한다해도 적응되지 않는다. 깨어있는 시간의 생활패턴도 망가져 사회생활에도 지장을 준다. 이는 거의 모든 야간근무자가 겪는 문제다.

배송물의 무거운 중량도 요통 등 근골격계질환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고객이 한번에 25kg 이상의 배송물을 주문하고 배송하게 되는 경우 척추에 부담을 주게 된다. 

비정규직의 존재와 9단계로 세분화된 레벨제(직무성과급제)도 직무스트레스의 요인이 된다. 각 레벨에 따른 임금 차등이 있고, 분기당 배송량, 관리자 및 동료, 고객의 평가, 안전성 평가를 점수화해서 레벨 승급의 지표로 삼는다. 산재나 휴직을 하게되면 평가 점수가 삭감되면서 승급하기 힘들다. 게다가 레벨 승급 인원은 정해져 있어 치열한 상대 경쟁을 유발시키는 유해한 조직 문화다.

절대적 물량의 증가, 고밀도 장시간 노동, 생체리듬을 역행하는 야간 전담노동, 치열한 내부경쟁 조직문화 속에서 ‘과로사’는 어쩌면 예견된 사고라는 생각이 든다.

택배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은 ‘진짜’ 노동자로 ‘온전히’ 인정받았을 때 지킬 수 있다.

28년만에 처음으로 ‘획득’한 휴가는 폭증한 택배물량에 압사했던 택배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이 가져온 사회적 반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지난 4년간의 끈질긴 노동조합 활동의 결과이기도 하다.

실제 노동자로 일하지만 전형적인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자로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던 특수고용 택배노동자는 2017년 노동조합 결성을 승인받았지만, 여전히 주52시간 장시간노동의 규제도 받지 못하고 있고, 휴게시간, 연차 휴가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불안정, 고위험 노동에 상응하는 산재보험, 고용보험으로부터도 외면당하고 있다. 아파도 쉬기 힘든 정의롭지 못한 계약관계도 있다.

택배 물류회사의 사용자성을 법적으로 온전히 인정하고, 불안정한 택배노동자의 고용에 대해 고용보험가입으로 사용자 책임성을 다하는 것, 고위험 노동에 대해 산재보험 가입으로 사용자 책임성을 다하는 것, 노동시간과 휴게시간에 대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는 것,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야간배송과 로켓배송의 제한, 성과급제의 폐지로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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