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협동조합 모두들

 

▲ 주거협동조합 '모두들'의 식구들

작년 늦여름, 처음으로 집을 구하던 때의 추억은 썩 좋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부천에서 살기위해 한 달 동안 발품을 팔아가며 이곳저곳 알아봤다. 마음에 드는 집은 전세가격이 만만치 않았고 가격이 만만한 집은 집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세 값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서울지역 사람들이 수도권지역으로 이사하는 상황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찾아간 부동산마다 공인중개사들은 "요즘은 집주인이 전세보다 월세로 집을 내놓고 있다"며 마치 작당이라도 한 듯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열군데 남짓 돌아다니다가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정착했다.
이사하던 날, 비용을 아끼겠다고 용달차를 불렀고 짐을 우리가 옮기다시피 했다. 집안 정리를 하고 겨우 한 숨 돌릴 때 친구는 말했다. “집이 이렇게 소중한지 몰랐어”

모여라, 두더지들!

청년들은 늘 꿈꾼다. 가정으로부터 독립해 자신만의 공간을 갖길 원하고 방송은 그 꿈을 예쁘게 포장한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은행은 종자돈 1억 원 만들기 적금통장을 내놓을 정도로 1억 원은 큰 돈 이지만, 그 돈으로는 집을 살 수도 없고 웬만한 전세를 구할 수도 없다. 월세는 공과금을 제외하고도 30만원이 웃돈다.
사회초년생의 급여는 너무도 얇다. 그래서일까? 생물학적으로는 독립할 나이지만 부모에게 의존하며 함께 살게 된다. 안정된 직장인에게도 부담스러운 전세가격은 타지역에서 온 대학생과 예비취업생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하다. 월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집’문제를 문제로만 매듭짓지 않고 대안을 제시하는 협동조합이 있다. 바로 청년주거협동조합 ‘모두들(모여라두더지들)’이다.

다중이해관계 협동조합

‘모두들’의 조합원 구성은 소비자조합원, 후원자조합원, 공급자조합원이 있다.
예를 들어 조합에서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60만 원의 방이 네 칸 나뉜 집을 구하면 4~5명이 거주하게 되는데 이들이 소비자조합원이다. 소비자조합원은 매달 조합비로 공과금과 생활비, 월세를 포함한 금액을 낸다. 방 크기에 따라 조합비를 다르게 부담하며 제일 많이 내는 조합비는 31만원이다. 후원자조합원은 말 그대로 후원의 개념이다. 공급자조합원은 집을 제공하고 월세에 해당하는 수익을 올리거나 일정금액을 차입하는 형태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차입금에 대한 이자율은 연 6%다. 은행보다 높은 이자율이다. 이런 구조를 생각하기까지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모두들’은 조합원이 현재 10명으로 지난 토요일(8일) 2호점을 열었다. 
‘모두들’ 1호점에서 소비자조합원이자 거주자인 김이민경씨, 김혜민씨, 정다올씨를 만났다.
‘모두들’이라는 이름을 짓게 된 배경을 물었다.
“협동을 하거나 공생하는 동물을 찾아봤는데 멸치도 있더라고요. ‘모여라 멸치들’을 줄이면 ‘모멸들’인거에요. 두더지는 협동을 하는 동물은 아니지만 생활방식이 청년문제와 닮아서 정하게 됐어요.” 젊고 건강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대화는 즐겁다.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선택'이냐, '강요'냐

목표에 열중하고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그 노력이 스스로의 ‘선택’인지 ‘강요’인지 모를 때가 많았다. 민경씨는 이 시대의 청년들이 두더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두더지는 자기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굴을 파며 얼굴도 모르는 다른 두더지와 경쟁한다. 그래서 이유도 모르고 경쟁하는 그들이 굴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피고 함께 ‘모였으면’하는 바람이었다.

모두가 꿈꾸었던 건 '집'

민경씨는 대학 노숙모임 ‘꿈꾸는 슬리퍼’를 통해서 주거문제와 가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모임들은 대부분 대학생일 때만 가능하다. 모임활동이 이어질 수 없는 이유는 경제관념으로 볼 때 생산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민경씨는 이런 한계를 고민하기위해 모인 친구들이 집세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종종 봤다. 그래서 주거문제를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혜민씨의 주된 관심사는 ‘청소년’이다. 시설이 아닌 청소년들이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다른 친구는 신선하고 건강한 음식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그렸다. 형용사만 다를 뿐 모두가 꿈꾸었던 건 ‘집’이었다.  
민경씨는 “학교를 다니면서 다양한 친구들과 만났어요. 이 관계가 제게는 굉장히 중요했었어요. 저와 같은 지방출신들이 서울살이를 할 때 학교나 직장을 따라 정처 없이 불안하게 이동하는 삶이잖아요. 그렇게 이동하지 않고 우리가 살 곳을 선택하고, 살고 싶은 공간을 만들고 그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그런 작은 운동을 꿈꿨어요.” 
옷과 밥과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가장 기본적인 양식이다. 그런데 생활 기본양식 중 하나인 집을 ‘선택’보다는 ‘제한’받고 있다. ‘모두들’은 적어도 사는 곳만큼은 주체적으로 정하고 싶었다.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들’ 1호점이 소사동으로 이사 온 건 6개월도 채 되지 않는다. 민경씨와 혜민씨는 대학생 때 역곡역 근처에서 6년 정도 살았지만 생활권은 서울이었다고 말했다. 서울이 아닌 부천에서 협동조합을 꾸린 게 궁금했다. 
혜민씨는 “동네에 아는 분들이 생기면서 정이 들었고 함께 살던 친구들이 개인사정으로 떠나는 걸 보면서 아쉽고 서운했어요. 하지만 시작이 부천이 아니라 인천이었다면 인천에서 협동조합을 했을지도 몰라요.”라고 말했다.
주거문제는 어느 지역만이 겪고 있는 특정한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그 말에 공감을 느꼈다.   

배려하는 마음 

혈연중심의 가족끼리 생활하면서 부딪히는 게 많고 친한 친구들도 같이 살다가 원수가 되는 경우도 더러 봐왔다. 특히 청소문제로 많이 다투게 된다. 청소는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공동으로 생활하는 곳은 거실과 화장실이에요. 이곳은 돌아가면서 당번을 정해 청소하고 개인이 쓰는 방은 각자 청소해요. 빨래도 각자가 알아서 하고 있고요.” 집은 방 4개와 거실 겸 주방, 화장실로 구성돼 있고 현재 5명이 생활한다. 2주마다 조합원회의를 통해 불편사항이나 조합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결국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함께 산다는 건 배려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함께사는 즐거움
 
함께 살면서 좋았던 점을 물으니 정다올씨는 “혼자 생활하면 무기력하게 잠만 잤을 텐데 같이 사는 친구가 등산을 하고 오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어요.”라고 말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하지만 둘이서 하는 게 더 즐겁다.
김혜민씨는 “친구가 식사 때 깻잎을 잡아줬을 때”라고 말했다.
“그날 힘든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친구랑 아무 말 없이 밥을 먹고 있었는데 깻잎이 잘 안 떨어지는 거예요. 그때 친구가 깻잎을 잡아주는데 눈물이 날 뻔 했어요.” 사소한 일이지만 그때만큼은, 그리고 지금도 가끔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말했다.
집에서 요리를 해서 먹는다는 건 당연한 건데 기숙사나 자취를 하다보면 그 당연한 것들을 누리지 못할 때가 많았다. 김이민경씨는 “한 친구가 저녁 늦게 들어왔어요. 왠지 밥을 차려주고 싶어서 요리를 했는데 친구가 이런 대접은 처음 받아본다며 정말 감동하더라고요.” 그저 호의로 한 일이었는데 오히려 상대의 반응에 더 뿌듯했다. 김이민경씨는 “함께 살 때만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라며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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