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삼년 전 산학교에서 처음 교사 생활을 시작할 때 그 당시 교장선생님이셨던 아침햇살이 저학년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수업에 참관을 하였다. 옆에 앉은 친구와 장난치고, 하고 싶은 말도 많고, 투닥 투닥 다투던 아이들이 하나같이 눈을 반짝이며 숨을 죽이고 아침햇살의 이야기 속으로 쑥 빠져드는 모습이 참으로 신기했다. 옛이야기에 빠져드는 아이들의 모습도 신선했지만 어른인 나도 아침햇살이 들려주는 옛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다. 옛이야기를 듣고 자란 세대가 아니라 아쉬운 생각이 들 정도로 옛이야기의 매력에 대해 각인된 한 장면이다.

올 해 1,2학년 말과글(국어)시간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옛이야기를 함께 읽었다. 세계 여러 나라 이야기이지만 너무나 놀랍게도 이야기의 구조와 주인공은 너무나도 비슷하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옛이야기는 선악 구조이지만 사실 진짜 이야기에는 주인공이 선하거나 악하거나 그런 단정적인 문장이나 내용은 없다. 다만 주인공은 안에서 올라온 의지이든 밖에서 요구하는 의지이든 집을 떠나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 어려움에 홀로 직면하고 가는 길에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물이든 도움을 받고(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용기이다. 하긴 3년을 꼬박 고생하거나 무쇠신이 세 켤레 닳아 없어지는데 누가 도움을 준다고 하면 선뜻 받지 않을까...)일이 해결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나면 자연스럽게 주인공에게 손을 들어주게 되고 어떻게 살아야지 느끼는 것은 이야기의 구조가 가진 독특한 매력이라고 생각된다. 아이들은 이 단순하고 명쾌한 이야기 구조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이야기에 푹 빠졌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앞에서 이야기한 아이들의 모습에서도 읽혀지지만 아이들의 질문에서도 느껴진다.

“그런데 그 아이는 왜 이야기를 써서 주머니에 넣었어?”
“하느님이 (아난시에게) 그런 힘든 걸 시키고 너무 한 거 아니야?”
“무쇠신인데 어떻게 바닥이 닳아?”
“3년동안 길에서 어떻게 자고 먹어?”
“야 조용히 해. 그 다음 이야기는?”

또한, 아이들과 옛이야기를 읽거나 들려주면 아이들은 주인공의 마음에 쉽게 동화되어 그 입장이 되어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하고 주인공이 당하는 어려움에 쉽게 공감을 한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중간에 아이들 눈빛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주인공에게 그런 고난을 준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한다. 그래서 옛이야기의 또 다른 매력은 주인공이다. 내가 처음 들은 옛이야기의 주인공은 일곱 살 이었다. 일곱 살 아이가 동네의 찾아든 어려움을 해결하는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처럼 대부분의 옛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린 아이이거나 특별한 능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 주인공이 여차여차 어려움을 겪고 여차여차 도움을 받아 여차여차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아이들에게는 이야기가 재미있는 또 하나의 요소처럼 느껴진다.

아이들이 수업을 시작되고 교사인 내가 의자에 앉으면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이라며 이야기 주문을 소리 내어 외친다. 오늘은 또 어떤 옛이야기가 아이들을 사로잡을지 교사도 두근거리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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