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PTSD 출판: 위즈덤하우스 작가: 꼬마비

6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50 여일 가까이 되었다. 전자는 바이러스의 위협 앞에 노출되면서 일상이 위축되고, 늘 하던 일들을 중단당한 시간이다. 후자는 좀 긴 장마인가 싶었던 비가 쉼 없이 내릴 기간이다.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한 그날, 기후 위기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그날 이후 우리는 ‘그날’ 이전으로 과연 돌아갈 수 있을까 묻고 또 묻는다. 그러나 돌아오는 소식과 전망은 우리가 결코 그날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 한다. 불길한 예감은 어긋나는 일이 없고, 나쁜 일은 우연을 가장하여 겹쳐 온다. 돌아가지 못한다면 우리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지구의 종말이 징조는 있겠지만 종말의 시점은 불시에 찾아온다. 해서 너도나도 일상을 살다가 끝난다. 누구는 태어나면서 종말을, 첫 월급 기념으로 가족이 함께 외식을 하다가, 대기업에 취직을 하고 출근하는 전날 그리고 분명 복권 당첨금을 찾으러 가는 길에 종말을 맞을 것이다. 설령 예지력이 있어 종말을 준비해도 처음 당하는 일이니 종말은 누구한테나 낯설어야만 한다.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객들은 모두 자신들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연인과 첫 해외여행으로, 오랜 친구들과 노년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바다를 건너온 사람도 있다. 여행이 아니라 도망이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내기 골프를 치러 온 사람도 있다. 일본 대마도에 모인 군상들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한국에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국에 미사일이 떨어져 폐허가 되었다. 게다가 핵발전소에 집중된 폭격으로 한국은 곧 방사능으로 오염된 땅덩어리가 되었다. 일본에 온 여행객들은 일순간에 난민이 되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다. 더욱이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생사조차 알 수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중간에 한국으로 돌아갈 기회가 한번 있었다. 제한된 인원만 귀국할 수 있지만 또 이참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사연을 품은 사람들은 일본에 남는 것을 택한다.

이제 ‘멸망’이다. 끝이다. 허나 문제는 모든 이에게 끝이 아니다. 남겨진 사람들이 있다. 살아남아 다행이다 하며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남겨진 자들은 피부가 된 익숙한 일상과 상식을 떼어내는 형벌을 받는다. 죽음의 배를 타고 떠난 자들을 부러워할 만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고통스럽다. 드러난 살에 다른 피부가 얹히기까지 인간은 자신의 날것을 그대로 드러내고 서로 마주한다. 두려움, 욕망, 폭력 등은 얄팍한 교양으로는 덮을 수 없다. 철저히 적자생존, 약육강식이다. 남겨진 자가 살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낯설고 두렵고 상황, 기후 위기로 폭우와 폭염이 발생하는 무서운 상황에 던져진 우리들. 누구도 멸망을 말하지는 않지만 이미 몸으로, 영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해서 우리 스스로를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이웃이 더 이상 반갑지 않다. 많이 모일수록 위험이 커지니 일인용 참호를 파고 들어가 주변을 경계해야 안전하다고 믿는다. 가까이 오면, 행여 실수로라도 건드리면 상대의 심장을 향해 자동 발사할 정조준이 끝난다.

그러나 결국 서로의 심장에 총부리를 겨누며 너도 나도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알아간다. 아마도 신이 인간을 빚을 때 퍼즐 게임을 즐긴 모양이다. 홀로는 보잘것없지만 서로 맞춰줄 때 그림이 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꼬마비 작가의 만화 <PTSD>는 그 사실을 독특한 설정으로 보여준다. 험악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우리의 구원은 어디에 있을까? <PTSD>는 만화답지 않은 거친 숨결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하긴 구원을 쉽게 얻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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