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 첫째 주 계획은 제8회 창원여성인권영화제에 가는 것이었다. 8월 중순에 사전 접수를 했다. 상영작은 <싸커퀸즈>, <수강신청>,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털보>, <마더 인 로>, <비하인더홀>, <K대_OO닮음_93년생.avi.>, <라라걸>, <미스비헤이비어>. 총 9편. 이 중에서 <라라걸>과 <미스비헤이비어>는 어렵지 않게 구해 볼 수 있는 영화라서 포기하고, 7편의 영화를 볼 생각이었다.

 한 때 로망이 영화제 즐기는 사람이었다. 한국여성인권영화제나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필수. 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들에 가 보는 것이 꼭 해 보고 싶은 것들 중에 하나였다. 그곳에 숙소를 마련하고 그곳의 거리를 거닐며 그곳에서 처음 상영화는 영화를 보는 것! 그 지방의 음식도 맛보며!

 적당한 숙소까지 물색해 놨건만, 영화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잠정 연기 되었다. 영화제 갈 생각에 한 보름 남짓 부풀어 있었는데 참 실망이 컸다. 하지만 마음을 급 추슬렀다. 서로를 위해 안전에 소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 잘 알고 있지만. 답답하다. 친구를 만나고 싶다. 사람을 만나고 싶다.

 어쩔 수 없으니 나홀로(집에 박혀, 혼자 하는) 원미동(나는 원미동에 사니깐) 여성인권영화제를 하기로 했다. 상영작에는 <싸커퀸즈>, <라라걸>, <미스비헤이비어>, <미쓰백>, <김복동> 총 5편을 골랐다. 전체적인 주제는 없다. 3편은 집에 서도 볼 수 있는 창원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이고, <미쓰백>은 호평을 많이 들은 터였지만 보지 못했고, <김복동>은 볼 기회가 많았지만 매번 때를 놓쳤다. <싸커퀸즈>가 코미디라고 하니 <김복동>을 먼저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번에도 <김복동>을 보지 못할 수 있겠다 싶었다. 김복동을 보겠다, 마음먹는 것, 마음이 힘들다. 

 여성인권 영화들은 여성의 트라우마 경험들을 다룬다. 강간과 성희롱, 가정 폭력, 아동 성 학대. 그리고 그 위에 이중 삼중으로 가해지는 폭력들을 파헤쳐 그 고통을 진실을 위한 싸움으로 만들어낸다. 낱낱의 싸움들이 모여 여성인권이라는 범주를 만든다.

 1991년 김학순 선생님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하고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김복동 선생님은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 증언하며 나라 안팎에서 여성 인권운동을 하였다. 그로서 ‘수모의, 짓밟힌, 유린당한’ 우리 민족의 역사가, 아니 여성의 역사가 다시 쓰여 졌다. 진실을 위한 싸움이 시작되고, 무엇이 역사의 정의가 되어야 하는지, 어떠한 대항이 필요한지 ‘모두’가 알게 되었고 새로운 정치, 운동의 지형이 만들어졌다.

 <김복동>은 담담한 영화이다. 제국주의 전쟁의, 젠더의 피해자 여성이 그 책임을 묻는 주체의 역할을 해내는 것을 차분히 보여준다. 피해자의 서사를 어떻게 보여 주는가, 이것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소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영화는 감독이 만드는 것이지만)와 더불어 영화를 수용하는 관객이라는 집단들 역시 어떻게 그 소재를 보고 싶은지가, 이것들이 함께 작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내레이터 한지민 배우의 목소리가 좋았다. <미쓰백>도 어차피 한지민 배우가 주연인 작품이고 하니, 한지민이 출연한 영화를 한 편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허스토리>를 이어보았다. <허스토리>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서사를 다루고 있다. 고통을 말하면서도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가를 담아낸다.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귀향>을 보고 실망했던 분들이 있다면, 이 두 편의 영화는 <귀향>스럽지 않으니 보셔도 좋겠다고 권하고 싶다. <귀향>은 성노예 피해자의 고통을 구현하기 위하여, 주인공을 성적 대상화하는 장면, 강간 장면을 길게 보여주어 힘들었던 분들한테 말이다. 피해자 여성을 어떻게 재현하는가는 근원적인 문제와 닿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꽃할머니>라는 좋은 그림책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권윤덕 작가의 작품이기도 하고 위안부 피해자 심달연 선생님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생각이 떠올랐다. 작가의 언어와 서사 주체의 괴리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 오래전에 이 책 서평을 쓴 적이 있는데, 다시 책을 찾아보고 싶어진다. 두 편의 영화가 나에게 실마리를 주었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도 존경스럽지만 영화를 먼저 보았을 사람들, 이런 영화를 바랐던 사람들도 존경스럽다. 보는 이, 듣는 이, 읽는 이가 없다면 서사가 존재할 수 있을까. 보는 이, 읽는 이, 듣는 이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투를 하였을 때 위드유 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존재 자체가 힘든 것이다.

 <미쓰백>은 고통의 연대를 다룬 영화이다. <김복동>과 <허스토리>가 연대들 속에 굴러가는 이야기라면 <미쓰백>은 트라우마를 가진 두 여성이 연대를 이루게 되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잔인하고 폭력적이지만 피해자들이 피해자의 위치에만 머무르지 않을 때, 시작되는 공감을 보여준다.

 5편의 나홀로 영화제를 치룰 생각이었지만 <미쓰백>까지 보고 나니 힘이 든다. 바깥에 나가 맛있는 것도 좀 먹고, 밤거리도 거닐고 하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혼자 하는 영화제를 일단 접는다.
 찾아보니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9월 10일에 시작하고 한국여성인권영화제는 12월 1일에 시작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7일에 개막한다. 아, 이들 영화제에 갈 수 있을까.

 좋은 작품을 본다는 것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다. 나는 그 작품을 보고, 동시에 그 작품이 나를 들여다본다. 내가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어떻게 느끼는지,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를 작품이 나를 본다. 다행이 내가 말하기 전까지는 그 작품이 나를 어떻게 훑고 지나가는지 남들은 모른다. 작품과 나만 안다. 남들은 내가 말해야 한다. 그래서 부끄러울 때가 종종 있다. 좋은 사람은 이 부끄러움을 솔직히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좋은 사람과 영화 보고 싶다. 계속해서 좋은 작품들을 만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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