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홍석 조합원 (부천시민의원 원장)
송홍석 조합원 (부천시민의원 원장)

건강하게 사는 것, 행복하게 사는 것은 우리 모두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일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살기를 소망하지만, 건강과 행복에는 불평등이 존재한다. 그것도 내 의지와 내 노력과는 무관하게 말이다. 나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것에는 내가 건강해지려고 얼마나 노력했느냐도 중요하겠지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나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이다.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제, 사회, 노동, 교육의 문제가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이에 따라 건강의 개별적 차이가 발생한다.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서 특별히 중요한 것이 있다. ‘함께 평등하게 어울려 돕고 사는’ 사회적 관계가 그것인데,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 사는 것보다 서로간에 불평등이 덜한, 더 평등한 사회에서 살아가면 더 건강해질 수 있다. 보다 평등한 관계는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만들고, 건강한 사회적 관계는 나의 건강과 안전한 삶을 만든다.

세계화로 인해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에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면서 전세계적으로 이주민 이동이 급증하고, 한국도 고령화에 따른 생산인구의 감소와 맞물려 이주민이 최근 10년사이에 3.3배가 증가하였고, 250만명의 이주민과 함께 일하고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이주노동자, 이주민이 더 이상 다른 세계에서 온 다른 이들 아닌, 우리의 이웃이 된 시대에 살고있고, 그들과 함께 건강하고, 그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함께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나와 우리 모두를 건강하게 만든다.

이주노동자가 의원에 온다는 것

한두해 전 경험한 일이다.
어느날 27세의 캄보디아 국적의 미등록남성이주노동자가 회사관리자와 함께 병원에 왔다. 한국말이 서툴러 한국말을 좀 하는 동료의 도움을 받아 3일전부터 38도의 이상의 고열과 오한, 기침, 객담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병원을 찾았을 것이다. 급성폐렴이나 독감이 의심되었고, 확진을 위한 혈액검사와 X-RAY, 인플루엔자 신속검사가 필요했다. 하지만, 건강보험을 가입할 수 없는 그에겐 부담되는 돈이었다. 검사를 거부했고 약만 달라 했다.

그는 결국 검사비의 50%를 할인하는 ‘미등록이주노동자 의료비지원제도’의 혜택을 받아 검사를 진행하였고 결국 인플루엔자 감염증으로 진단되었다.

일주일간의 격리를 위한 병가가 필요하다는 소견서로 휴식을 취하며 치료를 받았다. 그는 독소에 의한 신기능저하까지 진행되어 5일간 수액치료까지 받았고, 이후 정상 신기능으로 회복하였다. 그가 5일간 치른 의료비는 오만원이 조금 넘었고, 의원에서 부담한 지원비는 구만원이 조금 넘었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이주노동자들

장시간 고강도의 위험한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아프기 십상이지만, 병원에 들어서는 일, 검사를 진행하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특히나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엔 더 하다. 건강하지 못한 환경에서 일하는 이들이 병원에 더 오기 힘든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어느 이주노동자건강권 토론회에서 나온 이주노동자의 말이다.
“먼저,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크다. 자신의 증상을 표현하기 힘들고, 의료진이 사용하는 의학용어를 알아듣기도 힘들다. 병원에 오는 이들은 나름 언어문제를 해결한 이들이다.

그리고 병원에 올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응급이 아니고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소규모 사업장들은 사업주의 안전보건에 대한 인지도 낮기 때문에 고용주가 허락을 안해주는 경우가 많아 근무 중 외출하기가 힘들다. 또 한번의 치료과정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두세번에 걸쳐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경우엔 더욱 어렵다. 위 사례처럼 응급과 전염성 질환이 아니라면 말이다. 셋째, 의료비도 부담된다. 특히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더하다. 등록이주노동자에 비해 급여가 훨씬 적은데 뜻하지 않는 의료비의 발생은 매우 큰 부담이다. 두세번 병원에 방문해야 하는 경우엔 높은 병원비에 놀라 재방문을 포기하는 사례도 많다. 병원비가 아까워 본국에서 우편으로 약을 받아 해결하려다가 질병이 악화되기도 한다. 넷째,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 단속에 대한 두려움으로 병원을 이용해야 하지만 심리적 위축으로 포기한다. 그들은 휴일에도 익숙한 길만 이용하거나 심지어 대중교통 이용에 대한두려움도 있다. 마지막으로, 아플 때 어느 병원을 이용해야 하는지, 보건소나 도립의료원과 같은 공공병원에서는 의료비 지원이 된다는 정보도 모른다.”

이주노동자가 건강해야 지역주민도 건강해진다

세계 불평등의 심화와 국내 고령화 사회 진입으로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는 이제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필수 불가결한 구성원이 되었다. OECD 선진국을 지향한다면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포용국가를 지향한다면 이주민을 차별하고 배제해서는 안된다. 차별과 배제를 용인하는 사회는 비단 이주노동자에게만 그 영향이 국한되지 않는다. 낮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 저소득층,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그리고 어떤 소수자들, 이 모든 이웃들의 건강과 삶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이주노동자도 멸시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면 그 속에서 사는 나와 우리의 이웃들도 건강해질 수 있다.

이주노동자도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의료비 부담 때문에 적기에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하는데, 보편적인 의료보장제도를 차별없이 모든 이주노동자들에게 적용해야 한다. 중소영세사업장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미등록이주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듯이 ‘건강보험도 당연 적용’해야 한다.

둘째, 보건소나 의료원 같은 공공의료기관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한다.
미등록이주노동자들도 단속 걱정 없이 안전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유관기관과 협력해야하며, 공적 의료지원사업을 적극 홍보해야 한다.

부천시민의원에서는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료비 감면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셋째, 이주노동자 공동체는 스스로 건강을 지키는 힘이다.
‘이주민 공동체’가 활성화할 수 있도록 지자체와 지역사회는 모임 공간을 적극 지원하거나 동아리 지원사업을 펼칠 수 있다.

차별과 우열’을 가르는 사회가 아니라 ‘존중과 평등’의 관계를 만드는 지역사회로~

가장 밑바닥 이주노동자들이 일터와 사회에서 받는 차별과 멸시는 세계화된 불평등에 층층이 차별화된 위계적 노동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갑과 을의 차별은 을과 그 아래 을의 차별을 낳고 더 아래로 차별은 이전한다. 이전되는 차별의 구조를 어떻게 깨뜨릴것인가?

더 평등한 관계를 만들면, 더 존중하고 더 친밀한 관계를 만들면 사회 구성원 ‘전체’가 더 건강해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한 인식이 평등한 구조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고, 그 구조는 평등에 대한 인식을 낳는다.

우선, 더 많은 이들로 인식을 넓힐 수 있는 교육과 문화 사업을 펼쳐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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