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녹음이 빛나는 일대기’ 연출가 박지현

무용하는 박지현 씨는 ‘여성과 전쟁’ 주제의 공연 계획을 상상한다. 이 여성주의 작업은 2018년 기지촌 여성들이 사는 동두천을 방문하면서 물꼬를 튼다. 여름철 수용소 안은 차갑고 습했다. 하지만 창밖에는 녹음이 우거져 너무도 푸르고 예뻤다. 그곳은 지금도 박 씨에게 인상적인 공간으로 남아있다. 기지촌 여성들의 일생을 행위로 승화시키자! 무용공연 ‘녹음이 빛나는 일대기‘는 이렇게 탄생한다.

2020 경기예술활동지원 ’부천예술찾기 미로‘ 사업으로 선정된 이 공연은 코로나 19로 인하여 급하게 작업 방향을 틀었고, 그 결과 10월 12일부터 18일까지 부천문화재단 유튜브에 영화 영상, 퍼포먼스, 전시 스케치 등으로 공개된다.

# 동두천 낙검자 수용소 여성들을 배경으로

“전쟁과 관련한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았어요. 60년대와 70년대를 차근차근 추적했지요. 제가 했던 생각은 동두천 기지촌 여성들이 수용됐었던 낙검자 수용소를 방문하면서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박 씨는 동두천에서 이혜진 작가를 만난다. 이 작가는 낙검자 수용소에서 전시회를 열었던 이력이 있었다.

낙검자 수용소는 1960년대 한국 근대사의 얼룩진 이면을 보여준다. 주한미군을 상대하던 기지촌 윤락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병 검사와 치료를 병행했던 보건기구였다. 말이 보건기구였지 공식 명칭은 성병 관리소로 강압 치료와 감금이 이어졌다고 한다.

“이 작가의 작업물에 영감을 받아 입으로 뱉고 움직임으로 표현하면서 퍼포먼스를 진행했어요. 그 후 무용공연으로 이어졌는데 이대로 끝내기가 아쉽더라구요. 그래서 경기문화재단 지원과의 연계성을 검토했고 선정된 것입니다.”

# 이름 없이 스러진 넋을 위한 조곡

“이름을 명확히 알 수 없었던 기지촌 여성들의 묘비명을 숫자로 붙였다고 해요. 10번, 11번, 이런 식으로요. 황량한 묘지에는 엉성한 푯말들이 나뒹굴고 있었다고 했어요.”

박 씨가 동두천 희망연대 최희신 씨에게 들었던 1050기나 되는 기지촌 여성들이 묻힌 상패동 공동묘지 이야기다. 공간은 부족한데 사람이 많다 보니 세워서 혹은 겹쳐서 묻었다고 했다. 장례 치를 사람이 없어서 동두천 두레방 민들레 동료들이 묻어주었다고도 했다.

“이 슬픈 이야기를 무용 작업하는데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았어요. 이런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까, 자극적이지 않게 최대한 사실적으로 풀어내려고 했고 최선을 다해 만들었으니 보시고 평가해주세요.”

# 혼신을 담은 아카이브+ 무용+ 전시

박 씨가 일곱 명 무용수를 섭외할 때 제안한 것이 있었다. 집중도와 이야기를 빛낼 욕심, 감정을 컨트럴 할 자신이 있는지를. 오케이 한 친구들을 선택했다.

“지난 3월 작품에 참여한 무용수들은 감정적 반응을 보였어요. 너무 슬퍼했고 회피했고 용감하게 과정을 맞추는 등 다양했지요.”

천천히 테이블 작업으로 무용수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감정적인 부분을 맞추면서 5월 초 몸 작업에 들어갔다. 거듭 작업한 결과로 현재 이들이 탄 배는 순항 중이다.

“유튜브는 물론이고 인스타그램 라이브 생중계도 할 거예요. 무용공연은 생산하는 즉시 사라지는 예술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보실 수 있도록 한 겁니다. 동두천 희망연대와 작품 속 여성들에게도 영상 정보를 공개하겠습니다.”

 

# 미래의 여성들 위한 사회적 방향 제시

“기지촌 하면 어둡다. 유쾌하지 않다, 가 생각나지요. 하지만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니 자세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관객들에게는 보다 정제된 서사를 전달하려고 해요. 어두운 역사 속을 살아간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앞으로 여성들을 위한 사회적 방향을 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상황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구축하기만 해도 성공한 것이라고 보니까요.”

박 씨는 부천에 산다. 그럼에도 부천 무용의 현실은 잘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부천의 첫 공연이 기쁘다. 유튜브 영상으로 관객들을 만나면 무척 반가울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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