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기 전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심적으로 부담되는 날이다. 이런 날은 떠나고 싶다. 괴롭고 힘들다고 머리를 짜봐야 얻을 게 없다.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영화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때가 있었다. 삶의 무게, 영화에 대한 애정이 식어 영화관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우울하고 마음이 무거운 날 ‘러브레터’를 띄울 수 있는 상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러브레터>영화는 생각만 해도 심장이 뛴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천국이 따로 없다.

<최주철의 영화로 보는 세상> 칼럼을 쓸 때 <러브레터> 2009년에 쓴 글을 다시 읽게 되었다. 요즘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은 일기를 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읽다 보면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러브레터>,〈공각기동대〉, <라쇼몽>, 〈감각의 제국>, <이웃집 토토로> 일본 극영화 중에 기억에 남는 영화다.

일본 영화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는 충무로에서 영화에 미친 동료와 술을 마실 때 한 친구가 이 영화 때문에 영화에 미치게 됐다고 해서 어떤 영화인지 궁금해 보았던 기억이 난다. 셀애니메이션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하며, 익숙하면서도 혁신적인 비주얼을 선보였던 작품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라쇼몽>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를 세계적인 감독으로 만들어준 작품.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덤불 속〉과 〈라쇼몽〉을 하나로 합쳐 1950년에 만들어진 영화다. 등장인물들이 하나의 사건을 두고 각자 기억을 달리하는 과정을 통해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를 드러낸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감각의 제국> 영화는 일본의 군국주의가 광기로 치달아가던 1936년, 오직 섹스에만 몰두하다 애인을 살해하고 성기를 절단해 사라진 아베 사다의 실제 이야기를 모델로 삼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이웃집 토토로> (My Neighbor Totoro, 1988) 시골 마을로 이사 온 자매와 신비로운 숲의 정령 토토로의 만남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그린 애니메이션. 일본의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적인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으로 동심과 사실적인 배경이 잘 어우러졌다. 경기도 사립유치원 연합회 사무처장 일을 맡으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자주 보게 되는데, 토토로도 사랑받은 캐릭터 중에 하나 일 것이다.

이와이 순지(岩井俊二)가 각본과 감독을 겸하고, 나카야마 미호(中山美穗)가 1인 2역을 맡아 열연한 영화 <러브레터>본 것은 오래전 일이다. 한국에서 개봉되기 이전에 보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서울 관객 70만 명, 전국적으로 14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이며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이전부터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작품으로 유명하다. 일본 영화의 호기심도 있었지만 입소문으로 좋은 영화라는 것을 마니아들은 익히 들어 알아 한국에서 개봉되기 이전에 이미 보았다고 한다.

연애편지를 빨간 우체통으로 주고받는 일은 지금은 거의 없다. 또한 도서관에서 도서카드 자체가 거의 사라져 도서카드가 뭔지도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빨간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며 친구들이, 애인이 언제쯤 받아 볼까, 반응이 어떨까 여러 생각에 설레는 가슴을 달래며 발길을 돌린 적이 있는 추억이 있을 것이다. 소박하고 애틋한 편지 내용과 예쁜 편지지, 편지봉투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특히 유학 시절 친구가 보낸 준 편지를 가끔 다시 읽으면서 꿈 많은 젊은 시절을 돌아보기도 한다.

순박한 집배원이 유명한 시인에게 편지를 배달해 주면서 자신의 순수한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엮어낸 영화<일 포스티노>을 본 사람은 집배원에 대한 추억이 남다를 것이다. 집배원 아저씨는 ‘체신부’라고 찍힌 모자를 눌러쓰고 커다란 가죽 가방을 어깨에 메고 땀 뻘뻘 흘리며 기쁜 소식이나 슬픈 소식을 전해 주는 반가운 손님이었다. 지금도 빨간 오토바이에 우편물을 싣고 땀 흘리는 고마운 분들을 거리에서 볼 수 있다. 컴퓨터 통신망을 이용하여 편지나 여러 정보를 주고받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체신부 찍힌 가방, 우체통, 만년필, 예쁜 편지지가 추억 속에만 남아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작성했던 도서카드를 초등학교 때 해본 적이 있다. 도서관이 전산화, 디지털화의 확산으로 기계 앞에 신분카드, 책을 놓으면 알아서 처리해줘 볼펜으로 도서카드를 작성할 필요가 없다. 물론 아직도 도서카드로 도서관을 관리하는 데도 있겠지만 영화<러브레터>처럼 앞으로 도서카드에 흔적을 남기며 마음을 전하는 일은 힘들 것 같다. 한 권의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도서카드 뒷면에 이즈키(남)이 이즈키(여)의 얼굴을 그려놓았다.

▲ 어른이 된 후지이 이츠키(여)가 학창시절, 자신을 좋아 했던 후지이 이츠키(남)로부터 받은 러브레터. 엽서 뒷 면엔 학창시절의 후지이 이츠키(여)가 그려 있다.
화면보다 먼저 바람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눈밭에 누워 있는 여자. 그녀의 약혼자였던 후지이 이츠키는 겨울산에서 조난당해 죽었다. 그 여자는 호흡을 들이마신 후 숨을 참아보고 있다. 죽음을 느껴보려는 듯이… 눈 속에서 죽을 때 그가 이랬겠구나… 차가운 눈 속에 누워서 그렇게 그가 죽을 때의 심정을 느껴보고 있다. 그렇게, 숨을 참고 눈밭에 누운 히로코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러브레터>에는 순백의 사랑, 아름다운 자연, 거리와 가로등, 눈이 덮인 빨간 우체통, 자전거, 도서관, 첫사랑, 자전거, 오켕키데스까……. 잊을 수 없는 이미지와 말이 있다. 너무나 멋진 이즈키의 집, 그 마당에서 고구마를 굽던 할아버지, 낙엽을 태우던 할아버지, 그 뜨락의 나무들…….엽서에서 볼 수 있는 그림처럼 아름답다.

오겡끼데스까 (잘 지내시나요)하고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이 생각난다. 어릴 때 친구, 군대 친구, 좋은 일로 스쳐간 사람들 모두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고 만나고 싶다. 옷깃을 파고드는 찬바람에 몸은 잔뜩 움츠리기 마련인데, 더 춥기 전에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에게 안부를 묻고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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