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교에서는 회의를 한다. 학교 생활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을 학생들이 스스로 해결하게 한다는 꽤 그럴듯한 목적에 의거해 우리가 교육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로 잡은 자치문화를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사실 대안교육씩이나 한다면서 어른들 마음대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학생들은 그저 주어진 조건에 따르기만 한다면 그게 무슨 대안교육일까. 어쩌면 이 글을 우리 학교 학생들이 본다면 산학교 어른들도 마음대로 한다고 항변할수도 있을 것 같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학생들도 정말 자기들 마음대로 하며 살기 때문에 큰 죄책감은 들지 않는다.

아무튼 산학교 회의는 작은 산회의와 (본)산회의로 나뉘는데, 작은 산회의는 일종의 시의회나 도의회의 역할로 두세 학년 정도의 그룹 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안을 다룬다. 본 산회의는 전체가 모이는데, 굳이 비교하자면 국회의 역할을 하며 학교 전체가 함께 결정해야 할 사안들을 다룬다. 주로 여러명이 연루된 민원을 다루거나 규칙을 개정하자는 제안들이 나오는데, 얼핏 굉장히 민주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집단처럼 보이지만 이상과 실상은 괴리가 있을 때가 많다.

이번 주는 세 개의 안건이 나왔다. 첫 번째는 ‘점심시간에 야구배트를 운동장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제안이다. 산학교는 학생들이 야구를 많이 하는데, 운동장이 있지만 크기가 매우 작아서 야구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유아용 스펀지 배트와 테니스공을 사용해서 야구를 하는데, 그나마도 지나가던 사람이 맞는 경우가 생겨서 일과시간 중에는 배트 사용이 전면 금지되어 있다. 이것을 풀어달라고 야구를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제안을 한 거다. 동시에 나름 안전방안으로 운동장 한켠에 이동식 펜스를 설치해서 보행자가 공에 맞지 않도록 보호조치를 해달라고 학교에 요청을 하였다. 만약 회의에서 통과가 된다면 진지하게 펜스 설치에 대해 학생들과 의논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제안은 부결되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점심시간에 야구를 하고 싶은 아이들보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더 많아서였을 것이고, 당연히 야구를 안 하는 다른 친구들을 설득할 무언가가 있었어야 했는데 그 논리까지는 준비하지 못했나보다.

두 번째 안건은 학교 물건/시설물을 함부로 쓰는 문제였다. 교사회에서 나온 안건이고 사실 학교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나온 안건일 것이다. 늘상 이야기를 하고 교육을 해도 항상 어딘가는 망가져 있고 물건들은 바닥에, 운동장에 함부로 널부러져 있다. 증거사진(?)을 보여주면 예의 가벼운 탄성과 뒤이어 저거 누가 그랬는지 안다는 제보(?)가 줄을 잇는다. 그리고 이어 서로 니가 했네 안했네 다투며 아수라장이 되기 일쑤다.

이 회의에서 원하는 것은 학교 물건과 시설물을 잘 사용하는 것이지, 누군가를 찾아내서 망신을 주고 벌을 주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키며 1차 엄중 경고(!)로 마무리를 한다. 다음번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땐 심각하게 회의를 할거다 하면서.

마지막 안건은 청소당번을 바꿔달라는 제안이다. 산학교는 여러 학년이 섞여서 청소당번을 정하는데, 연령 통합을 추구하는 학교의 방침이기도 하고, 선배들을 보며 후배들이 좀 일머리를 배우라는 측면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후배들이 너무 말을 안 듣고 농땡이를 피운다며 반별로 따로 청소를 하자고 제안이 나온 거다.

반박 의견을 물었지만 조용하다. 다들 실제로 그런 점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거다. 근데 후배들(4~6학년)도 자기들끼리 청소를 하면 심란한 일이 벌어질거라 예상을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처럼 같이 청소를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가 나온다. 그리고 실제로 후배들의 수가 월등히 많기에 결국 청소당번을 바꾸자는 제안도 부결되었다. 부결은 되었지만 선배(7~9학년)들은 왜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하라면서 바뀌는 것이 없으면 또 제안할 거라고 엄포를 놓고 물러난다.

어찌보면 별 것 아닌 자잘한 일상의 일들. 하지만 그 속에 학교에서 배워야 할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내 의견을 남에게 정확히 전하고 남의 의견을 경청하는 일,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는 일, 그리고 내 말이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될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언행에 신경을 쓰는 일. 모두 학교라는 집단 안에서 배우는 것들이다.

한 시간 남짓의 회의 동안 별로 해결된 것도 없고 학교 생활이 더 나아진 것도 별로 없겠지만 다음 주도, 또 그 다음 주도 회의를 하며 생활을 바꾸고 관계를 개선해 나간다. 그러다 보면 백 가지 문제중 두세개는 해결하고 한두개의 문제가 새로 추가되어 조금씩 나은 학교 생활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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