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의 예술가 23

코로나19의 거센 역풍(疫風)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대한민국의 저력에 세계가 찬사를 보내고 있다. 2020년,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은 OECD 회원국 가운데 1, G20 국가 중에서는 중국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OECD는 이런 대한민국에 대해 효과적인 방역 조치로 회원국 중 2020GDP 위축이 가장 작은 국가라는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12월 들어 다시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K-방역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철저한 대한민국의 방역 능력이라면 지금의 위기도 충분히 극복해 나가리라 믿는다.

자동차, 반도체, 가전 등의 공산품뿐만 아니라 K-뷰티, K-푸드, K-패션 등 세계 속의 한류 열풍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거기다가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영화, 드라마, 팝 등 K시리즈가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문학(文學)만큼은 여전히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는 번역의 문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짐작된다. 한국어로 된 작품을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 세계 여러 나라 언어로 옮기는 일이야말로 한국문학 세계화의 밑거름이라 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는 주로 외국 작품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만 치중했을 뿐, 우리 작품을 외국어로 옮기는 작업은 그리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천의 예술가> 시리즈 이번 회의 주인공은 시조 작가이자 번역가로 우리 시조의 멋을  세계에 알리는 일에 힘쓰고 있는 우형숙 시인이다.

우형숙 시인. 30년간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다 지난 2017년 은퇴하여 현재는 시조 시인 겸 번역가로 시조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우형숙 시인. 30년간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다 지난 2017년 은퇴하여 현재는 시조 시인 겸 번역가로 시조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시조는 우리 민족 고유의 시가(詩歌)

시조는 중국의 한시, 일본의 하이쿠, 유럽의 소네트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우리 고유의 시가(詩歌)이다. 오늘날과 같은 형식이 완성된 것은 고려 말이지만, 그 연원은 신라의 향가(鄕歌)에 가 닿는다. 천년의 맥을 잇는 전통 시다. 조선 후기에는 평시조의 형식에 더하여 사설시조까지 등장하면서 반상의 구별 없이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국민 문학적 성격을 띠었다. 하지만 서구문학의 유입과 더불어 시조의 존립 자체마저 위태로웠던 시절도 있었다. 다행히 위기를 잘 넘기고 지금은 다시 우리 고유의 전통 시가로서 옛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시조는 특정한 시대의 문학 양식이 아니라,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한민족의 정신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시조는 34조의 음수율을 기본으로 하나 종장의 첫 3음절을 제외하고는 자수의 제약이 그리 엄격하지 않다. 대신 철저히 4음보율을 지킨다. 음보란 호흡의 단위를 말한다. 그러므로 시조가 4음보율이라는 것은 초장, 중장, 종장의 3행을 각각 4마디로 끊어 읽는다는 뜻이다. 시조랑 사촌 간인 가사(歌辭)는 행의 제약이 없으므로 모든 행을 4마디로 끊어 읽어야 한다.

오늘날 남아있는 시조 중에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는 고려말 우탁(禹倬)이 지은 <탄로가(嘆老歌)> 3수가 있다. “한 손에 막대 잡고 한 손에 가시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늙음을 한탄하는 노래라는 뜻의 <탄로가>는 이후 인생의 덧없음을 설파한 천고의 절창으로 수백 년 세월을 두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우형숙 시인의 번역서. 그녀는 지금껏 20여 권의 번역서를 냈다.
우형숙 시인의 번역서. 그녀는 지금껏 20여 권의 번역서를 냈다.

우형숙 시인은 누구?

산안개, 아침 창가에서등 두 권의 시조집을 펴낸 시조 시인이자, 20여 권의 번역서를 낸 번역가로서 한국현대시인협회 번역위원, 한국문인협회 시조 분과 번역팀장을 맡고 있는 우형숙 시인은 한국 시조 문학의 비조로 추앙받는 역동(易東) 우탁 선생(1262~1342)의 후손이다. 시조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00, 4회 부천 전통 시조 백일장에서 장원했던 게 시조 시인이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희 집안 족보를 보면 우탁 할아버지가 나오는데 제1대 시조 할아버지로부터 여덟 번째 할아버지가 우탁 할아버지입니다. 알게 모르게 그게 큰 작용을 한 것 같고 그래서인지 저는 자유시보다 시조가 매력 있고, 외국 시의 경우도 소네트, 오언절구, 칠언절구, 하이쿠 같은 정형시에 매력을 느낍니다. 시조는 무엇보다 ‘3612마디 45자 내외라는 틀에 이미지를 담아 깔끔하게 노래하는 게 좋습니다. 요즘 시조 시인들은 연시조사설시조를 많이 쓰는데, 저는 오히려 단시조 쓰기만 고집하는 편입니다. 시조의 매력은 단시조라고 보니까요.”

2019 부천작가회의 인문기행. 2019년 1월13일, 박두진 문학관에 다녀왔다.
2019 부천작가회의 인문기행. 2019년 1월13일, 박두진 문학관에 다녀왔다.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모교와 세종대에서 30년간 영문학과 번역학을 강의해 온 우형숙 시인은 지난 2017년 은퇴 후 본격적인 번역 작업에 몰두해 왔다. 한국현대시조선집 해돋이, 정완영 시조선집 엄마 목소리등 시조 번역집만도 벌써 10여 권이 넘는다. 지난해,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부천 시선집 60, 부천을 노래하다를 펴낸 우형숙 시인은 한국작가회의 부천지부 지부장으로서 부천 시인들의 시를 세계에 알리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 시집에는 부천의 여러 문학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시인들의 작품이 함께 실려 있는데, 이는 부천의 여러 문학 단체가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기보다는 소통하고 화합해서 다 같이 글로벌 문학인으로 발돋움하자는 우형숙 지부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쿠웨이트 대사관 초청 만찬장에서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위원들과 함께. 왼쪽 우형숙 시인부터 시계 방향으로 최순향 시조시인, 권갑하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바드르 모하마드 알아와디 주한 쿠웨이트 대사, 김민정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 이석수 시조시인.
쿠웨이트 대사관 초청 만찬장에서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위원들과 함께. 왼쪽 우형숙 시인부터 시계 방향으로 최순향 시조시인, 권갑하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바드르 모하마드 알아와디 주한 쿠웨이트 대사, 김민정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 이석수 시조시인.

시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하여

현재 국제 PEN 번역위원, 국제계관시인연합회 번역위원, 한국시조시인협회, 한국여성시조협회, 나래시조협회, 오늘의 시조시인협회, 숙대문인회 회원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우형숙 시인으로부터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몇 년 전부터 시조 단체에서 시조를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오고 있습니다. 시조가 천년이란 나이를 갖고 있는 데도 아직 유네스코에 등재되지 않은 사실이 안타까워서 시조계의 원로들을 중심으로 회원들까지 시조의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화 작업에 2018년부터 제가 초대되어서 시조를 영어로 번역해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데이비드 맥캔 전 하버드대 교수께서 제 번역시조집에 서문을 써주시는 등, 이 일을 많이 도와주고 계십니다. 맥캔 교수는 미국에서 열리는 영어시조대회에 10년 넘도록 심사를 맡고 계시는데 올해 1022일에는 <미국번역가협회>에 초대받아 우리나라 시조를 90분이나 강연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번역한 10권 정도 시조집은 국내외 대사관을 비롯하여 국제 PEN 각국 지부와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들 및 한국문인협회 해외지부 등을 통해 해외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시조가 유네스코에 등재되는 날까지 이 일을 계속할 계획입니다.”

아무쪼록 시조의 세계화라는 그녀의 목표가 하루빨리 열매를 맺어 또 하나의 K-열풍이 불어닥치기를 고대하며, 끝으로 우형숙 시인의 시조 한 수를 소개한다.

데이비드 맥캔 교수의 노력을 기리는 뜻으로 충남 보령에 세운 시조비(時調碑). 맥캔 교수의 영어 시조에 우형숙 교수의 번역 시를 함께 새겼다.
데이비드 맥캔 교수의 노력을 기리는 뜻으로 충남 보령에 세운 시조비(時調碑). 맥캔 교수의 영어 시조에 우형숙 교수의 번역 시를 함께 새겼다.

산딸기

 

양지녘 잎새 틈새

발그라이 내민 얼굴

 

풀벌레 사모하여

살그락 노래하다

 

지나던

까까동자승

시주그릇 채워주네

 

2019년 6월21일, 조계사에서 맥캔교수 초청 강연 후 부천 작가들과 함께.
2019년 6월21일, 조계사에서 맥캔교수 초청 강연 후 부천 작가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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